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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않게 해달라” 청와대 찾아간 HMM 노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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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글로벌 해운업계가 최대 호황기를 맞고 있지만 국내 최대 해운회사 HMM(옛 현대상선)은 되레 그 호황 때문에 노사가 갈등을 겪고 있다. “직원들의 오랜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라”며 노동조합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25% 임금 인상을 주장한다. 하지만 회사측은 “회사 정상화 작업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며 5.5% 인상안으로 맞선다.

HMM 사상 최대 호황의 그늘 #노조 “오래 희생, 임금 25% 올려라” #산은이 최대주주라 대통령에 요구 #사측은 “정상화 멀었다, 5.5%만” #산은도 “공적자금 회수 안된 상태”

5일 HMM 노사에 따르면 노조는 임금 인상의 근거로 유례없이 좋은 실적을 들고 있다. HMM은 1분기에만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9809억원)을 뛰어넘는 1조193억원의 이익을 냈다. 분기 기준 사상 최대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는 2분기에는 더 많은 1조2512억원의 영업이익을 예상한다.

HMM 실적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HMM 실적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HMM 선원들로 이뤄진 해원연합노조(해원노조) 전정근 위원장은 “그동안 회사를 위해 희생한 직원들에게 실적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며 “해외 해운사들이 HMM 선원들을 타깃으로 영입에 나서고 있어 우수 인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쟁사 수준으로 임금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지난달 중순 스위스 해운사 MSC가 사상 처음으로 한국인 선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내기도 했다. 2만3000TEU급(6m길이의 컨테이너 2만4000개를 실을 수 있는 크기) 컨테이너선의 해기사를 뽑겠다는 내용이었다. HMM 관계자는 “그 크기의 컨테이너선 운항 경험이 있는 곳은 한국서 HMM밖에 없다”며 “제시한 임금이 HMM의 두 배 정도 된 거로 안다”고 전했다.

김진만 HMM 육상노조 위원장과 전 해원노조 위원장은 지난 4일 청와대를 찾아 “파업을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대통령께 보내는 서신’도 전달했다. “선원들은 교대자가 없어 1년 넘게 승선하다 보니 배우자의 출산 순간도 함께하지 못한다”며 “선원들은 수출의 99.7%를 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사람이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와대를 찾은 이유에 대해 전 위원장은 “회사 측과 임금 협상을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회사 운영 권한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 측이 외부 컨설팅 업체에 의뢰한 결과 11.8%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HMM 해원·육상노조(사무직 직원 중심) 노조원은 각각 6년, 8년간 임금이 동결됐다. 지난해는 중앙노동위원회 중재로 2.8% 인상됐다. 평균 연봉은 약 6900만원으로 현대글로비스, 팬오션 등 다른 해운사보다도 약 2000만원 낮다. 회사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하려 했지만,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지분율 24.9%)이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은행은 HMM의 최대주주이긴 하지만 임단협은 회사와 노조가 하는 것이란 입장이다. 산은 관계자는 “조 단위의 공적자금이 회수되지 않은 상태에서 노조의 25% 인상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며 “노사가 먼저 현실적인 안을 가져오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그는 “해운업이 호황인 만큼 어느 정도의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며, 타당한 수준의 인상안에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해원노조는 11일 4차 교섭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중노위에 쟁의 조정을 신청하기로 했다. 앞서 육상 노조는 지난달 30일 중노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했다. 19일까지 중노위 조정에 실패하면 조합원 찬반 투표로 파업 여부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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