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안산 선수처럼 오래 기른 머리 자르겠다는 딸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15:00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8)

우여곡절 끝에 열린 도쿄 올림픽.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이 무더위와 코로나 걱정을 잊게 만든다. [사진 unsplash]

우여곡절 끝에 열린 도쿄 올림픽. 어려운 상황 속에서 경기에 임하고 있는 선수들이 무더위와 코로나 걱정을 잊게 만든다. [사진 unsplash]

연일 35도가 넘는 날씨, 마스크 속 얼굴은 늘 땀에 젖어 있다. 해 떨어지면 좀 나아지려나 싶지만, 요 몇 주는 아침부터 밤까지 덥고 습한 공기가 달라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씻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선풍기만으로도 여름을 견딜 수 있었는데, 날씨 탓인지 나이 탓인지 온몸에 열감이 느껴지기 일쑤라 자연스레 에어컨 리모컨을 집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가족은 올해만의 특별한 피서법을 찾았다. 에어컨의 도움으로 온도가 떨어진 거실에 모여 앉아 올림픽 경기 시청하기! 거리 두기 4단계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이것만큼 안전하고 즐거운 시간이 어디 있을까.

개막 전에는 지금 이 상황에 올림픽을 진행하는 게 맞는 것인지 갸웃했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선수들의 단련된 움직임과 열정 가득한 눈망울을 지켜보며 브라운관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스포츠만 한 드라마가 없다.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기운으로 팀원과 자신을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예상치 못한 에너지가 펼쳐지고 승패가 달라지기도 한다(물론 그동안 쌓아왔던 노력의 시간은 선수의 몸에 새겨져 있지만 말이다).

일본 도쿄 아리아키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대한민국 대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표승주 선수가 공격을 하고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Q

일본 도쿄 아리아키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대한민국 대 세르비아의 경기에서 표승주 선수가 공격을 하고있다.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Q

일본을 꺾고 8강에 오른 한국 여자배구팀의 경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세트 스코어 2 대 2, 마지막 한 세트에서 14점인 일본에 2점 뒤진 우리 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스테파노 리바리니 감독의 이야기처럼 ‘모든 선수가 자매처럼 뭉쳐 아주 특별한 힘’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허벅지 핏줄이 터졌지만 30득점을 내며 팀을 이끌었던 김연경 선수, 공이 어디에 떨어지든 몸을 날리며 막아내던 염혜선 선수, 강력한 스파이크와 리시브가 든든했던 김희진과 박정아 선수 등 ‘한마음으로 원팀’의 에너지를 끌어올린 한국팀은 결국 역전승을 거두었다. 경기 후 서로를 끌어안고 환호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여름의 더위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펜싱 여자 사브르 단체전도 빠뜨릴 수 없다. 김지연, 윤지수, 최수연, 서지연, 이 4명의 선수는 4강전에서 만난 이탈리아를 꺾고 동메달을 땄는데, 그 과정 역시 드라마였다. 경기 중반까지 15 대 26으로 무려 11점 차로 뒤처진 상황. 보고 있지만, 메달은 어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잠깐 주방에 가 있는 동안 딸 아이의 목소리가 계속 들렸다. “엄마, 올라가는데! 엄마, 이길 수 있겠어! 엄마, 빨리 와 봐! 동점이야!” 45 대 42로 점수를 뒤집어내는 역전극을 펼친 선수들의 모습에 입을 벌리며 손뼉을 쳐 댔다.

8강에 올라간 여자 핸드볼팀의 앙골라전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11 대 15로 어렵게 경기를 펼쳐가던 한국 팀은 23 대 22로 승기를 잡았지만, 다시 역전을 당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한국팀! 경기 종료 11초를 남겨두고 강은혜가 동점 골을 성공시켰고,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승리의 드라마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에서 패한 김우진 선수는 경기 후 인터뷰를 통해 최선을 다한 선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열광할 수 있다. 내가 쏜 화살이고,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냐.”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로 박수를 전하고 싶어졌다.

높이뛰기에서 4위를 차지한 우상혁 선수의 환한 미소를 보는 순간, 승패와 상관없이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즐겁게 계속 도전하면 못 이길 게 없다”는 그의 인터뷰를 들으며 다시 한번 ‘그렇지’ 고개를 끄떡였다. “10년은 더 운동할 생각이다. 2024년 파리올림픽에 꼭 출전해 그때는 누가 봐도 ‘성공’으로 판정하는 완벽한 동작으로 바벨을 들겠다”고 말한 역도의 김수현 선수, “성적으로 보답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첫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라고 소감을 전한 탁구의 신유빈 선수에게도 큰 격려를 보내고 싶다. 멋진 도전의 순간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큰 감동과 기쁨을 얻었으니 우리가 고맙다고 말이다.

지금까지의 올림픽 경기를 지켜보며 우리 가족에게 최고 스타로 등극한 선수는 역시 안산이다. 올림픽 3관왕을 이뤘다는 것도 특별하지만, 경기 내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설화가 한국에서 펼쳐지는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경기에만 집중했다는 점이 무엇보다 대단했다. 개인전 금메달을 따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는데, 마지막 슛오프 한 발까지 집중하며 최선을 다한 안산 선수는 말 그대로 최고의 금메달리스트다.

“쫄지 말고 대충 쏴”란 말에 꽂힌 우리 딸은 오랫동안 기른 머리를 안산 선수처럼 커트하겠다고 선언했고, 그녀의 SNS를 팔로우하며 덕질을 시작했다. 코로나로 답답하고, 더위로 지친 이 여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쁨’을 전해준 올림픽 출전 선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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