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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술값 시비로 폭력 행사한 취객, 강도일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39) 

취객의 난동 과정에서 업주나 종업원이 폭행당하고 때로 주점의 물건이 파손되는 경우, 피해가 상당하거나 취객의 죄질이 불량하다면 수사 기관에서 이를 강도상해죄로 엄하게 처리하기도 한다.[사진 flickr]

취객의 난동 과정에서 업주나 종업원이 폭행당하고 때로 주점의 물건이 파손되는 경우, 피해가 상당하거나 취객의 죄질이 불량하다면 수사 기관에서 이를 강도상해죄로 엄하게 처리하기도 한다.[사진 flickr]

사회적 거리 두기로 밤 10시 이후 주점이 문을 닫으면서 보기 어려워졌지만, 새벽까지 영업하는 곳에서 취객과 점주 간의 술값 시비는 종종 있던 일입니다. 몸싸움까지 이어지거나 취객의 난동 과정에서 업주나 종업원이 폭행당하고 때로 주점의 물건이 파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로 인한 피해가 상당하거나 취객의 죄질이 불량한 경우, 수사 기관에서 강도상해죄로 이를 엄하게 처리하기도 하는데요, 최근 이에 대해 의미가 있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습니다. 사실관계부터 보겠습니다.

공사 현장의 일용직 근로자인 A 씨는 여러 주점과 노래방에서 술을 마신 후 새벽 2시경 또 다른 주점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맥주를 마신 A 씨는 종업원에게 15만9000원의 술값 지급을 요구받았고, A 씨는 수중에 있던 현금 2만2000원만 낸 뒤 나가려 했습니다. 결국 A 씨를 막으려는 주점의 사장과 종업원, A 씨 사이에 술값 시비가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삿대질이 오가고 말다툼이 이어지다 사장이 A 씨의 가슴을 밀치는 몸싸움이 벌어졌습니다. A 씨는 나머지 술값을 지급하기 위해 본인의 체크카드로 결제를 시도했지만, 잔액 부족으로 실패했습니다. 종업원은 계좌 이체를 해도 된다 했지만, A 씨는 ‘이체를 할 줄 모른다’며 술값 지급을 거부했지요. 이후 A 씨와 사장과의 말다툼은 더욱 심해졌고, 사장은 계산대 위에 있던 손전등을 들어 A 씨의 얼굴에 비치는가 하면 손전등으로 A 씨 팔이나 몸통을 툭툭 치우거나 꾹꾹 눌렀습니다. A 씨는 팔을 휘저으며 뿌리쳤습니다.

끝내 A 씨가 사장을 피해 출입문으로 나가려 하자, 사장이 뒤에서 A 씨의 옷을 잡아당겼습니다. 이때 화가 폭발한 A 씨는 뒤돌아서면서 머리채를 잡고 넘어뜨린 후 주먹으로 사장의 얼굴을 때리면서 “네가 나를 무시해”라고 말하고 거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A 씨는 심지어 이를 만류하는 종업원까지 주먹으로 때렸고, 종업원이 주점 밖으로 피신하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사장의 머리를 수차례 발로 차는 등 폭행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사장은 실신해 쓰러졌습니다. 그 이후 종업원이 주점으로 다시 돌아와 A 씨를 만류하자, A 씨는 주먹으로 또다시 종업원을 때렸고, 종업원이 주점 밖으로 도망가자 A 씨는 따라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쓰러져 있던 사장의 머리와 몸통을 수차례 발로 찼습니다. 근처에 있던 우산꽂이를 집어 들어 사장을 향해 내리친 후 사장의 머리를 수회 걷어찼습니다. 종업원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에 의해 A 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는데, 경찰관들이 주점에 도착했을 때 A 씨는 주점 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 일로 사장은 전치 4주, 종업원은 전치 3주의 상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검사는 A 씨를 구속하고 강도상해로 기소했습니다. 강도는 폭행으로 타인의 재물을 강탈하는 범죄인데, A 씨는 남은 주대인 13만7000원의 채무를 면하기 위한 강도로 범행 과정에서 사장과 종업원에게 중한 상해를 입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상해죄의 경우 법정형의 상한이 7년 이하로 피해자들과 합의가 되면 집행유예가 가능해 실형을 면할 수 있겠지만, 강도상해죄는 법정형의 하한이 7년 이상으로서 피해자와 합의를 한다 해도 집행유예가 사실상 불가능한 중한 범죄입니다. 문제는 A 씨가 강도인지 여부입니다. 13만7000원의 미지급 술값 때문에 강도로 몰려 몇 년을 교도소에서 옥살이할 수도 있는 A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는데요.

1심 법원은 강도상해를 인정해 5년의 징역형을, 2심 법원 또한 강도상해를 인정하되 다만 형을 일부 감형해 3년 6개월의 형을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1, 2심 법원은 비록 술값을 면하는 것이 A 씨가 사장과 종업원을 폭행한 주된 목적은 아니었더라도 사장을 폭행함으로써 술값을 면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A 씨에게 적어도 미필적으로 강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봤습니다. 결국 A 씨는 대법원까지 상고했고, 대법원에서는 1심, 2심 판단이 잘못되었다면서 A 씨의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대법원 2021. 6. 30. 선고 2020도4539 강도상해).

대법원은 A 씨에게 강도상해죄가 성립한다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강도상해죄가 성립하려면 먼저 강도죄의 성립이 인정되어야 하고, 강도죄가 성립하려면 불법영득 또는 불법이득의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대법원은 채무자를 폭행하여 채무를 면탈하는 강도죄에서의 불법이득 의사는 특히 신중하고 면밀하게 심리 판단돼야 한다고 보았고, 그러한 취지에서 이 사건에서 A가 술값 채무를 면할 불법이득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주인과 종업원이 술값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보복성 폭행을 가했다고 강도상해의 무거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사진 pxhere]

주인과 종업원이 술값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보복성 폭행을 가했다고 강도상해의 무거운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사진 pxhere]

당시 상황을 다시 보겠습니다. 주점에서 난동을 피우던 A 씨를 피해 종업원은 주점 밖으로 피신했고, 사장이 주점 바닥에 쓰러져 저항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A 씨가 술값 채무를 면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현장을 즉시 이탈해 도망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A 씨는 반대로 종업원을 쫓아 주점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사장을 폭행하고 경찰관이 출동할 때까지 주점 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점에 주목했는데요. 만약 A 씨가 실제로 강도를 해 미지급 술값을 면할 목적이 주된 것이었다면 재차 주점으로 다시 들어올 리가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또 미지급 술값 13만7000원은 일용직 근로자로서 일정 소득이 있는 A 씨에게 큰 금액이 아니었고, 실제로 A 씨는 주점에 오기 전에는 다른 노래방이나 주점에서 수회에 걸쳐 별다른 문제 없이 술값을 결제했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미지급 술값을 면하기 위해 폭행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A 씨가 술값 지급 문제로 사장과 실랑이를 하던 중 사장이 자신의 얼굴에 손전등을 들이대고, 손전등으로 자신의 몸을 미는 등 행위를 하자 흥분한 상태였고, 사장이 주점을 나가려는 자신의 옷을 잡아당기자 격분해 폭행하며 이를 말리는 직원까지 폭행했습니다. A 씨는 주인과 종업원이 술값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보복성 폭행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A 씨를 강도로 보고 강도상해의 무거운 책임을 묻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사장과 종업원을 무참히 폭행한 A 씨의 죄는 일반상해죄로라도 엄히 처벌받아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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