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ㆍ뉴욕ㆍ런던에 베로나까지, 일류 무대가 그를 부른다

중앙일보

입력

베이스 박종민이 지난달 이탈리아 베로나 축제에서 오페라 '아이다'에 출연했다. [사진 에투알클래식]

베이스 박종민이 지난달 이탈리아 베로나 축제에서 오페라 '아이다'에 출연했다. [사진 에투알클래식]

오디션을 보고나서 극장 문을 열고 나오기 전에 캐스팅 전화를 받는 성악가. 베이스 박종민(36)이 그런 경우다.

이탈리아 베로나 축제 데뷔한 베이스 박종민 #세계 유수의 오페라 무대에 연이어 출연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가 다음 목표"

“201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제임스 레바인 지휘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베르디 ‘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 중 하나를 부르고 극장 문을 나서기 전에 ‘함께 공연하자’는 전화를 받았다.”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2012년 런던 로열 오페라의 오디션을 보고서도 그 자리에서 바로 캐스팅됐다”고 했다.

그렇게 세계 오페라의 핵심 무대에 서며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밀라노 라스칼라, 런던 로열 오페라, 모스크바 볼쇼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BBC 프롬스다. 함께 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빈필하모닉, 런던심포니, NHK교향악단,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한 무대에 섰다.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1위의 이력은 이런 무대 경험에 비하면 단조로울 정도다.

박종민이 세계 톱 무대의 경력을 하나 더 보탰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로나 페스티벌에 데뷔했다. 1913년 시작한 베로나 페스티벌은 이탈리아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손꼽힌다. 무엇보다 규모가 압도적이다. 객석은 1만 5000석으로 실내 오페라 무대의 7~8배 수준이다.

박종민은 베르디의 대표작 ‘아이다’에서 제사장 람피스 역을 맡았다. 오페라의 맨 처음을 여는 비중 있는 역할이다.“얼마나 유명한 축제인지 알고 있었고, 데뷔인데도 주역으로 캐스팅돼서 기뻤다.” 박종민은 “뉴욕이나 런던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충분히 즐기며 공연했다”고 말했다.

유럽 오페라 극장들은 꽤 오래 전부터 박종민을 알아봤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이던 그가 오스트리아 벨베데레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였다. “1차 무대가 끝났는데 대기실에 ‘23번 참가자는 라스칼라 극장의 캐스팅 담당자와 만나러 가시오’라고 쓰여있었다.” 그가 학교 졸업 전 라스칼라 극장의 아카데미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된 이야기다. 이후 독일 함부르크 오페라단과 오스트리아의 빈 국립 오페라에서 전속 가수로 활동했다.

묵직하고 카리스마 있는 베이스인데, 박종민의 소리는 자연스럽다. 어둡고 낮은 음역대를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해 음악을 살려낸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수련회에서 가요를 따라부르던 학생이었는데, 뒤늦게 노래를 시작해 세계 최정상의 꿈을 꿨다.” 어린 시절 목표, 즉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라스칼라와 메트로폴리탄 데뷔를 모두 이뤘다. “이제는 바그너 오페라로 독일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고 했다.

가장 낮은 음역의 박종민이 오페라에서 맡는 역은 주로 왕, 신, 제사장 등이다. 테너ㆍ바리톤처럼 무대에서 집중 조명을 받는 역할은 아무래도 드물다. 아쉬움은 없을까. “아니다. 베이스여서 행복하다. 아내가 소프라노인데, 참 힘든 인생인 것 같다. 고음 하나에 인생을 걸어야 하고, 늘 관심의 한가운데 있다. 베이스의 노래는 무거운 말들이고, 문학적이며 생각할 거리가 많다. 나의 역할을 사랑한다.”

박종민은 올 11~12월 생상스 ‘삼손과 데릴라’에 아비메레크 역으로 베를린 국립 오페라에 데뷔하고, 밀라노ㆍ빈에서 ‘돈 조반니’ ‘가면 무도회’ 등에 출연한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