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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지긋지긋한 10년…남편과 이혼하려는데 증거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배인구의 이상가족(115) 

재판은 증거 싸움이다. 서류로 작성된 문서나 증인이 대표적인 증거다. [사진 pinterest]

재판은 증거 싸움이다. 서류로 작성된 문서나 증인이 대표적인 증거다. [사진 pinterest]

결혼한 지 10년이 지났어요. 아직 아이는 어리지만 저는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저를 바꾸는 것이 훨씬 빠르다는 말을 새기면서 제가 참으면 가정은 유지될 거라 믿었습니다. 남편은 아이 챙겨서 학교 보내랴 출근 준비하랴 정신없는 저를 한 번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과음한 다음 날이면 일어나 출근하기 바쁘고, 그러지 않은 날은 밤새 컴퓨터 앞만 지키다가 언제 자는 줄도 모르는 생활을 합니다. 일어나 아이 밥상 한 번 봐준 적이 없고, 일찍 퇴근해 아이를 데리고 온 적도 없습니다. 아이가 아파도 제 몫이었고, 아이와 자전거 타기도 오롯이 제 몫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직장만 겨우 다녔고, 오래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빠가 돌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남편과 같이 있어도 외롭습니다. 부탁도 하고, 싸워도 보다가 딱 1년만 참아보자고 정했는데 나아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는 남편은 저랑 왜 사는 것일까요. 남편이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 소송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재판은 증거 싸움이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하죠? 저의 주장에 대해 남편이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요.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사례자의 말처럼 재판은 증거 싸움입니다. 서류로 작성된 문서나 증인이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예전 이혼사건에서는 잘못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각서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정보를 다 알고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종이문서는 구식이라서 그런지 각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대신 경찰에 신고한 기록, 경찰이 출동한 기록이 증거로 많이 제출됩니다. 그래서 이런 증거를 제출하기 위해 폭행이 없었는데도 거짓 신고를 했다거나 또는 폭행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민사사건이나 형사사건에서는 증인신청도 많이 하지만 가사사건에서는 증인신청을 채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현장에 있었던 증인, 부정행위를 목격한 증인이 아니라 거의 일방 당사자로부터 그런 사실을 들었던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을 제일 잘 아는 3자인 자녀들이 부부 일방의 편에 서서 유리한 진술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닙니다. 사례자는 부부관계가 해소되더라도 부모 자식 관계는 유지되길 바라기 때문에 자녀들의 진술을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마지막까지 고민합니다.

결국 당사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라는 신빙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라 예전에는 일기가 자주 증거로 제출되기도 했습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프로그램 중 과거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있더군요. 지나간 사건의 진실이 어떤 것이라고 현재의 우리가 평가하는 중요 자료가 주인공의 일기, 수기라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날짜가 조작된 것이 아니라면 대체로 그 내용은 진실일거라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계부 한 켠에 빽빽하게 적힌 배우자의 언행과 그로 인한 본인의 깊은 슬픔, 좌절, 분노만큼 생생한 진실이 또 어디 있겠어요.

당사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라는 신빙성을 인정받기 위해 증거를 제출할 때 일기가 자주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당사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진실이라는 신빙성을 인정받기 위해 증거를 제출할 때 일기가 자주 증거로 채택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그런데 또 이런 것을 비웃 듯이 일기장 내용을 조작한 경우도 보았습니다. 준비서면에서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 일기장에 적혀 있는 것이죠. 손으로 적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최근에 작성되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내담자와 상담하면서 이런 말을 했더니 그럼 날짜조작을 할 수 없는 디지털로 작성된 블로그는 어떠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머지 않아 블록체인 기술로 구현된 일기장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농담을 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진실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가사재판에는 가사조사라는 제도가 있어서 가사조사관이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을 조사해 재판장에게 보고하는데 가사조사관이 작성한 조사보고서는 증거로 사용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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