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현기의 시시각각

‘고마워요 사토’와 ‘마린’의 차이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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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현기 기자 중앙일보 도쿄 총국장 兼 순회특파원
김현기 순회특파원

김현기 순회특파원

내 책상 위 기념패 중 가장 윗부분에 ★ 표시가 5개 그려져 있는 게 있다. 10년 전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고락을 함께한 타사 도쿄 특파원들이 만들어 준 것이다. ★ 5개에는 의미가 있다. 후쿠시마 취재 과정에서 내 몸의 5개 세포에서 염색체 변형이 일어난 것을 뜻한다. 당시 특파원 대부분은 염색체 변형이 몇 개씩은 있었다. 일종의 방사능 피해자인 셈인데, 특파원 모두 그걸 훈장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임 기념패에 염색체 변형 숫자만큼 별을 새겨줬다. ‘덕분에’ 난 매년 원자력병원에서 다양한 방사능 관련 정밀검사를 받는다. 최장 30년간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조롱도 일본이 대상이면 명해설?
후쿠시마산 배제 꼭 밝혀야 했나
‘하나 되는 올림픽’ 의미 되새겨야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도쿄에서 4년 넘게 후쿠시마 등 여러 원산지 식자재를 가리지 않고 섭취했다는 이유로 난 원자력병원의 좋은 ‘샘플’이 됐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후쿠시마산 음식물은 내 몸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다. 10년간의 관찰 결과다. 후쿠시마산 음식물의 안전기준을 믿는 증거가 바로 내 몸이다.

그래서 이번 도쿄 올림픽의 ‘후쿠시마 도시락’ 공방은 더욱 불편했다. 한국은 올림픽선수촌 인근 호텔에 별도의 급식 지원센터를 차렸다. 대부분의 식자재를 한국에서 공수했다. 이를 한국의 상당수 언론은 “후쿠시마산 먹을라… 하루 400개 도시락 배달 작전”이란 식으로 해석하고 보도했다. 그러자 일본은 “이렇게까지 하면 모욕”(겐바 전 외상), “후쿠시마의 마음을 짓밟는 언동”(사토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이라고 반발했다.

사태가 커지자 대한체육회와 한국 언론 대다수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 그렇게 운영해 왔는데 일본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미국도 별도의 급식 지원센터를 마련했는데, 일본이 한국만 비난하는 건 이중적 잣대”라고 역공을 취한다. 사실만 놓고 보면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핵심은 다른 데 있다. 한국은 급식 지원센터에서 후쿠시마 및 인근 8개 현의 식자재를 배제했다. 다른 일본 식자재도 세슘 측정기로 방사능 검사를 했다. 한국이 유일했다. 나아가 그런 사실을 ‘자랑’인 양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대한체육회는 출국 전 공식 회견에서 대놓고 그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과학적 근거 제시는 없었다. ‘4+1’년 노심초사하며 올림픽을 준비한 보통 일본 국민들은 그런 한국을 거침없다고 부러워할까, 재를 뿌렸다고 생각할까. 나머지 205개 국가 선수들도 그렇다. 그들 국가는 자국 선수 안전을 걱정하지 않는 것일까. 선수들도 방사능 걱정을 전혀 안 해 후쿠시마산이 포함된 선수촌 음식을 묵묵히 먹고 있는 것일까.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후쿠시마 복숭아는 맛있었다. 너무 많이 먹어 살쪘다”는 미국 소프트볼 에릭슨 감독처럼 하라는 말도 아니다. 급식 지원센터가 꼭 필요했다면 설치하되 ‘세계가 하나 된다’는 올림픽 정신을 생각해서라도 미국처럼 그저 “컨디션 유지를 위한 식단 조절”이라고 쿨하게 얘기했으면 됐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기 힘든 요인 중 하나가 양국 언론이라는 점은 이번 올림픽에서도 확인됐다. 한국·일본 가릴 것 없이 상대국에 대한 곁가지 보도, 흠잡기 보도로 흘렀다. SNS의 일부 누리꾼,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허접한 매체의 기사까지 동원해 상대국 때리기에 나섰다. 이쯤 되면 친일, 반일을 떠나 자질의 문제다.

끝으로 ‘후쿠시마 식자재’ 공방에서 불거졌던 ‘이중적 잣대’ 관련 생각 한 가지. MBC는 이번에 루마니아 선수 마리우스 마린이 자책골을 넣자 ‘고마워요, 마린’이란 자막을 써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한·일전 야구시합을 떠올려 보자. 당시 MBC 해설자는 타구를 놓친 외야수 사토를 향해 “고마워요, 사토”를 연발했다. 그런데 당시는 모두 “기억에 남을 어록”이라고 극찬했다. 조롱의 표현도 일본이 그 대상이 되면 ‘명해설’이 되는, 바로 그런 걸 우린 이중적 잣대라 불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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