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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퍼스펙티브

경제원리·상황·역사 ‘3무시’가 빚은 시장의 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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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임대차보호법은 왜 실패했나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급기야 국민을 상대로 한 겁박까지 나왔다. 경찰청장까지 대동한 홍남기 부총리의 ‘7·28 부동산 담화’. 뜬금없이 ‘공유지의 비극’까지 들고나온 이 날 담화는 더는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참담한 고백에 지나지 않았다. 26번의 대책으로 땜질해오던 부동산 정책이 파산에 이르렀음을 자인한 꼴이다.

오만과 무능 뒤섞인 엉성한 입법 #“집의 노예에서 해방” 환호하더니 #임대차 시장 ‘아노미’로 몰아넣어 #뼈아픈 패착 이유 제대로 짚어야

현 정부 부동산 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가 시행 1년을 맞은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선의로 포장된 이념, 오만에 가려진 무능이 뒤섞여 참사를 빚었다. 지난해 7월 30일,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등을 담은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여당 지도부는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다. “국민이 집의 노예에서 해방된 날”(윤호중 당시 법사위원장), “투기 근절의 날”(김태년 당시 원내대표)이라며 호기를 부렸다.

이들의 오만을 시장은 전세대란으로 응징했다. 새 임대차법 시행 직전인 작년 7월 4억9922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달 6억3483만원으로 1년만에 27.2%나 뛰었다(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관변 통계도 마찬가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새 임대차법 도입 직전인 작년 6월 중순부터 올해 6월 중순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0.26% 상승했다. 법 개정 직전 1년 동안 2.18%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높다. 새 임대차법으로 촉발된 전세 불안은 집값까지 밀어 올리며 부동산 시장을 ‘염천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책의 순기능만 강조한다. 임대차 갱신율이 높아졌고, 임차인 거주 기간도 늘었다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전형적인 확증 편향이다. 고통은 새로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만의 몫이 아니다. 갱신청구권을 써서 당장의 고비를 넘긴 세입자도 아득하게 오른 전셋값에 다음 이사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새 임대차법은 앞으로 정책 수립에서 참고할 반면교사라 할 만하다. 정치 앞에서 경제 원리와 시장 상황이 무시됐다. 이념 앞에서 한국 주택시장의 특수한 역사성이 무시됐다. 그 결과는 망가진 시장과 시장 참가자들의 고통이다.

퍼스펙티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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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경제 원리 무시

정부·여당은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한 혼란이 일시적일 것으로 봤다.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 슬기롭게 마음을 모으면 몇 개월 뒤 전셋값이 안정을 찾을 것”이라는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대표적이다. 친정부 논객들의 지원 사격도 한몫했다. 이들은 “공급이 줄겠지만, 계약갱신청구권으로 눌러앉는 세입자 때문에 그만큼 수요도 줄어 균형을 찾을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과연 맞는 이야기일까.

임대차 시장도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공급 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수요-공급이 기계적으로 균형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다. 특정한 시점에서는 수요자(임차인)와 공급자(임대인) 사이 힘의 불균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유동성이 넘치고 집값이 오르는 시기에는 현실적으로 공급자가 우월한 위치에 있다. 억지로 균형을 맞출 경우, 공급자(임대인)는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책을 찾는다. 자식들을 분가시켜 세입자의 갱신청구권을 회피하는 방법은 그중 하나다. 임대 시장에 내놓는 대신 증여를 해버리거나, 전세를 반전세, 혹은 월세로 돌리는 방법도 있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의하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를 낀 거래 비중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7%포인트(28%→35%)나 늘었다.

새 임대차법은 시장 참여자들의 ‘행동경제학적 특성’을 간과했다.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협상 카드’에 세입자가 대응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마땅치 않다. 교육·직장 등의 이유로 생활 근거지를 바꾸기 쉽지 않은 세입자들은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 통계에서도 갱신 계약 중 63.4%만 갱신 요구권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마련됐지만 상당수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 것이다. 경제 원리에 대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 법의 취지마저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결과를 빚은 것이다.

② 시장 상황 무시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기 전, 전세 시장은 이미 불안했다. 법 통과를 앞둔 지난해 7월 말 서울의 전셋값은 56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한 상태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된 집값 상승에다 저금리 금융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택 공급마저 줄어들 것이라는 불안감까지 가세했다. 민간 부동산 조사업체들은 2021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30% 이상 적어질 것으로 예상한 상황이었다. 감소 추세는 2022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입주 물량 증가를 자신했다. 분양가 상한제나 세금 문제 등으로 민간 사업자들이 분양 일정을 늦추기 시작한 점을 간과했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임대차법 강행은 달아오르기 시작한 시장에 휘발유를 끼얹은 셈이 됐다. 무리한 임대차법 시행이 걷잡을 수 없는 전세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문가의 경고는 무시됐다. 여당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입법은 속도가 생명”이라며 일방 처리를 서둘렀다. 부작용 경계 목소리는 반개혁 세력의 저항쯤으로 간주했다.

임대차법 강행 직전 발표된 부동산 대책도 방향이 맞지 않았다. 재건축 실거주 2년 의무화를 내용으로 하는 6·17 대책과 등록임대주택사업자 철회 정책 등은 전세 불안을 부추기는 악수가 됐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전세 시장이 달아오르는 상태에서 여당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면서 임대차보호법의 부작용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③ 역사적 특수성 무시

새 임대차법 이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

새 임대차법 이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

임대차보호법의 롤 모델은 유럽 국가, 그중에서도 독일이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의 세입자 권리 보장이 우리보다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독일은 세입자에게 사실상 무제한 임대 계약 갱신권을 부여하고, 임대료도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독일은 역사적 경험이 다르다. 그 과정에서 형성된 집에 대한 욕구·관념에서도 차이가 있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빠른 주택 공급을 위해 민간임대사업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각종 세금 혜택을 주고, 그 대신 강력한 세입자 주거권 보호 장치를 제도화했다. 이런 정책이 효과를 거두면서 대다수 독일인은 굳이 집을 살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40%대에 불과한 자가 보유율이 그 단면이다. 그러나 이런 독일마저 세계적 유동성 확장 국면에서 집값과 임대료 급상승이라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농업 국가에서 도시 국가로 급속하게 변신한 한국은 제대로 된 세입자 보호책을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급속한 도시화가 주거 문제를 키웠지만, 임차인 보호 장치는 미흡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 주거 수요자들은 ‘내 집 마련’이라는 자구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됐다. 사회·역사적 특성을 무시한 우격다짐 세입자 보호 장치는 시장의 다른 축인 주택 소유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기존 소유자뿐만 아니라 잠재적 ‘내 집 희망자’인 세입자들마저 위기로 몰아놓고 말았다. 월세·반전세 전환 속도를 높여 한국인들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왔던 전세 제도의 소멸에 박차를 가하고 말았다.

정책은 결과로만 평가받는다

무리한 임대차법이 부작용을 낳고 있지만 이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수혜자들이 반발하는 등 더 큰 시장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시장 안정을 유도하는 보완책을 찾는 게 현재로는 최선이다.

전문가들의 대안은 다양하다. “의무계약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되, 계약갱신 가능 기간을 4년에서 6~8년으로 늘리자”(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집 주인의 실거주를 세입자가 아니라 정부가 확인하는 등 법적 보완이 필요”(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위원), “임대차법을 단기간 임대료가 급등하는 등 시장 상황이 불안한 곳에만 선별적으로 적용하자”(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 “의무임대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되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폐지하자”(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임대차법 부작용이 명확해지자 정부·여당에서도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규 계약에도 임대료 상한제를 적용하자는 등 꺼내 든 약은 더 독해졌다. 친문 지지세력만 의식할 뿐 정책 실패 원인에 대한 성찰은 없다. 하지만 잘못 접어든 길에서 속도를 내면 낼수록 목적지는 더 멀어질 뿐이다. “어떤 정책에 대한 판단은 그것이 가져온 결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정의로운 정책인지, 악의가 깔린 정책일지 생각하는 건 가장 큰 실수다.” 집권세력이 끔찍이 싫어하는 극단적 자유시장론자 밀턴 프리드먼의 말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새겨들을만한 경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