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꼼수가 빚은 비극…원자탄 투하, 그리고 한반도 분할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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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폭의 폭발 장면이다. [사진 미국원자유산재단]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폭의 폭발 장면이다. [사진 미국원자유산재단]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의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를 투하했다. 인류가 사용해선 안 될 반인륜적 무기를 사용한 것이다. 당시 히로시마 전체 인구의 30%인 7만여 명이 즉사했다. 부상자 중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를 합치면 20만여 명에 이르며, 이 중 한국인 사망자는 3만여 명에 달했다. 사흘 후 미국은 나가사키에 팻맨을 또다시 투하했다.

한국인 3만 명, 일본인 20만 명 숨진 비극…일왕은 ‘아시아 안정’ 거론
가해자 일본에 면죄부 줘 ‘무조건 항복’ 규정한 카이로 선언과 배치
자국 희생 줄이고 전쟁 빨리 끝내려고 소련군 불러들인 미국의 선택
결과적으로 한반도 분단 초래…독일처럼 항복 끌어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일왕은 일본 전역에 조서를 방송했다.

“일찍이 미·영 두 나라에 전쟁을 선포한 이유 역시 실로 제국의 자존과 아시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기에 나온 것이라 타국의 주권을 배척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은 애초 짐의 뜻이 아니었다. (중략) 적은 새롭게 잔학스러운 폭탄을 사용해 잇따라 무고한 이를 살상, 그 참상이 참으로 측량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교전을 계속코자 함은 결국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인류의 문명조차 파괴할 것이다. (중략) 짐은 제국과 더불어 처음부터 끝까지 아시아의 해방에 협력한 여러 맹방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가해자로서의 반성이 보이지 않는다. ‘잔학스러운 폭탄’ 때문에 제국의 자존과 아시아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은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 일본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됐다. 1879년 오키나와 강제합병에서부터 청일전쟁과 타이완 강제합병, 러일전쟁과 조선 강제합병, 만주사변, 제2차 중일전쟁, 그리고 진주만 습격 이후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이 다른 나라를 침범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자존과 아시아의 안정을 위한 주장이었다.

이는 카이로 선언의 내용과 전면으로 배치된다. 카이로 선언은 일본의 전쟁과 점령은 ‘폭력과 탐욕으로 약탈’한 것임을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선에 자유와 독립을 주어야 하는 이유로 ‘조선 사람들이 노예 상태에 있다는 점’을 들었다. 이렇게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규정한 카이로 선언과 다른 일본 왕의 성명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첫 번째 꼼수-소련군 개입 요청

미국은 원자탄을 꼭 써야만 했을까. 문제는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과 미국의 잔머리로부터 시작됐다. 또한 일본 대신 한반도가 분할 점령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전범국가인 독일이 분할됐는데, 왜 아시아에서는 한반도와 베트남이 분단돼야 했는가. 한국과 베트남이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전범국가였나.

18세기 이후 유럽 제국은 아시아의 많은 국가를 식민지화하고 약탈과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은 아시아 제국을 유럽 제국주의로부터 구하겠다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명분을 갖고 동남아시아 곳곳을 점령했다. 실제로 중일전쟁 이후 미국의 금수조치에 따라 일본은 동남아시아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필요했다. 동남아시아 독립운동가 중 일부는 일본군의 진격이 유럽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낼 기회라고 믿기도 했다. 이 점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나 현재 일본의 보통국가화에 대해 한국·중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에서의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잔머리를 굴렸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에 승리하고 전세가 역전되면서 일본과의 전쟁을 빨리 끝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영국과 중국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래서 카이로에 처칠과 장제스(蔣介石)를 불러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태평양의 섬들에서 발생했다. 생각보다 일본의 저항은 강했다. 그뿐 아니라 독일군은 손을 들고 순순히 항복했지만, 일본군은 항복을 하지 않고 자결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적군들 앞에서 미군은 큰 피해를 보았고, 독일의 항복을 받을 때와 같이 일본의 본토를 점령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이에 미국이 생각한 꼼수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소련군을 개입시키는 것이었다. 만약 소련군이 개입한다면 일본 최강의 관동군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한반도를 통해 일본 본토에 미군과 함께 진입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면 미국으로서는 미군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면서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련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 개입할 처지가 못 됐다. 유럽의 전쟁에서 가장 큰 전쟁터는 서유럽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게다가 독일과 전투를 벌인 지역은 소련의 가장 중요한 산업지대였다. 이 지역의 재건이 전후 가장 큰 과제였다. 소련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에 나오는 장면처럼 소련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소련군이 참전하고 북한 지역을 점령한 직후에 일어났던 약탈과 파괴 행위는 유럽에서의 전쟁에서 지친 소련군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꼼수-원자탄 사용

그렇다고 동북아시아의 보물을 보고만 있을 스탈린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숙원인 만주와 한반도의 부동항과 자원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였다. 일본의 일부까지도 점령할 수도 있었다. 미국의 참전 요구에도 끝까지 기다리고 있던 스탈린은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보이가 떨어진 지 이틀 만에 전격적으로 만주와 한반도로 진격을 명령했다. 일본이 빠르게 항복하면 만주와 한반도를 모두 놓칠 수 있었다.

실상 미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소련군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의 항복을 받기 위해 미국 정부가 원자탄 사용을 승인했다는 가설도 있다. 소련의 참전을 요청한 루스벨트 대통령 사후 그의 후계자였던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의 참전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이 항복을 빠르게 결정한 데는 ‘잔학스러운’ 폭탄보다 일왕의 표현에도 있듯 소련군의 점령으로 인한 ‘민족의 멸망’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소련군은 일본군과 친일파에 절대 관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원자탄 사용은 항복하는 대신 ‘옥쇄’하라고 했던 일본에 항복의 빌미를 주었고,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와 일본의 일부를 점령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범국가 대신 한국이 분할되고 만 것이다. 유럽과는 달리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거의 전적으로 이끌었던 미국으로서는 승리를 소련과 나눠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아울러 일본에는 면죄부를 줬으며, 곧 이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미국은 또다시 큰 비용을 써야만 했다. 만약 미국이 당시 독일과의 전쟁과 유사하게 정공법을 사용했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

과거 비극을 성찰하지 못한 일본

76년 전의 비극을 성찰하지 못한 일본은 미국의 권유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했고, 2011년 후쿠시마 사태와 같은 또 다른 피해를 보게 됐다. 일본이 저지른 불의의 전쟁, 거기에 동참한 사람들을 처벌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과연 지금 역사의 책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여기에는 전범들을 애국자로 둔갑시킨 또 다른 꼼수가 자리 잡고 있다.

또다시 돌아오는 8월 15일 광복절을 앞두고 우리 역시 과거의 역사를 성찰해 보자. 유엔은 한 달 전, 식민지를 경험했던 한국을 선진국 대열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서구 제국이 했던 것과 같은 잔머리를 굴려서는 안 된다. 우리와 같은 경험을 했던 많은 개발도상국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군자대로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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