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안혜리의 시선

재갈을 물려도, 우리는 계속 쓸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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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5일 본회의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언론법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5일 본회의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언론법 주요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지난 6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집에서 느긋하게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데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온갖 저급한 욕설로 도배한 이메일이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칼럼을 쓸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겪는 일이지만 이날은 좀 의아했다. 딱히 '좌표'가 찍힐만한 칼럼이 당일 지면에 나가지도 않았거니와, 욕설에 간간이 섞여 있는 내용도 이상했다. 돈을 준비하라느니, 당당한데 왜 지웠느냐느니 온통 알 수 없는 암호문 같은 소리였다. 잠시 어리둥절하다 이 소동의 배경을 찾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본인 SNS에 또 나를 향해 '좌표'를 찍은 거였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광주의 카페 사장 사례를 비롯해 조국의 무차별적인 좌표 찍기야 워낙 유명하지만 이날의 조국 SNS 포스팅은 선을 넘었다. 조국 딸 조민씨가 국립중앙의료원(NMC) 인턴에 지원했고 복지부는 비슷한 시기 매우 이례적으로 NMC의 피부과 레지던트 정원을 늘렸다는 요지의 지난 1월 내가 쓴 칼럼과 관련, 명백한 허위사실을 올렸기 때문이다. 복지부의 반론권 보장 차원에서 칼럼에 담기지 않은 복지부의 입장을 나중에 한 줄 반영했을 뿐인데도 조국은 "언론중재위가 이 칼럼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발표했다"고 허위사실을 올린 후 "미국 동포분들은 미주 중앙일보를 확보할 수 있다면 제보해달라"고 했다. 전날 한 변호사가 "미국 연방 법원에선 천문학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고 운운한 포스팅을 조국이 공유했기에 그의 지지자들은 조국이 올린 허위사실을 토대로 조국이 곧 미국 연방 법원에 중앙일보와 기자를 제소해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다고 믿어 욕설과 조롱 이메일을 쏟아낸 것이다.
조국은 본인의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아니면 댓글을 모두 막아놓았다. 할 수 없이 페이스북 메신저로 "명백한 허위사실이 담긴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두 번이나 요청했다. 하지만 조국은 이를 모두 무시했고, 그 사이 '고발뉴스' 같은 어용 매체들은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없이 조국의 허위사실 포스팅을 단순 중계해 기자와 중앙일보의 명예를 훼손하는 기사를 또 쏟아냈다. 포털 등에 달린 인격 살인적인 악플은 기자가 읽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최근 이 정권 지지자들의 '양념'은 이렇게 업무용 이메일 계정을 직접 집단적으로 공격하고 어용 매체가 가세하는 식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언론인에 대한 괴롭힘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시민단체를 내세워 고소·고발을 남발해 기자를 끊임없이 귀찮게 하고 실제 업무에 차질을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웬만한 맷집이 아니면 이런 디지털 각목으로 휘두르는 린치와 경찰서에 들락거리며 조사받아야 하는 압박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나 역시 참다못해 결국 회사 법무팀을 통해 허위사실이 담긴 SNS 포스팅을 24시간 이내에 내리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조국은 내용증명을 전달받자마자 슬그머니 허위 사실이 담긴 포스팅을 삭제했다. 명백한 허위사실을 올려 기자의 명예를 훼손하고 지지자들의 이메일 폭탄으로 업무 방해와 집단 괴롭힘을 유도한 데 대한 사과는 물론 없었다. 아직도 조국 지지자들의 관련 이메일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SNS 포스팅은 내렸지만 조국 입장에선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고 자신을 비판한 기자의 신뢰 깎아내리기와 집단 괴롭힘이라는 목적을 다 이룬 셈이다. 비단 조국뿐만 아니라 웬만한 작은 미디어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SNS 인플루언서나 유튜버들은 사실상 1인 미디어 노릇을 하면서도 언론의 사회적 책임은커녕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처럼 허위사실조차 아무 거리낌 없이 유포한다.
개인적 고통을 구구절절 쓴 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5일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하겠다고 나선 일명 '언론통제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미 이런 식의 교묘한 언론인 괴롭히기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의 자기 검열로 비판의 날이 무뎌져 가는 와중에 위헌적 요소가 다분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한 '언론통제법'까지 도입하면 언론의 비판 기능이 얼마나 위축될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조국, SNS로 허위사실 유포
1인 미디어 놔두고 언론만 통제
기자 괴롭혀도 결국 기록한다

정권 말 숨기고 싶은 치부가 많아서인지 정부 부처뿐 아니라 관련 국회 상임위 전문위원까지 우려를 제기하는 법안을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법안소위에서 단독 강행 처리하더니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기어이 밀어붙인다고 한다. 조국의 허위사실 유포처럼 정작 '가짜 뉴스' 근원지인 1인 미디어 규제는 쏙 빼고 기존 언론에 대한 규제만 강화하는 이유, 민주당도 알고 우리도 안다. 그런데 민주당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아무리 재갈을 물려도 진짜 언론은 결국 쓰고야 만다는 사실 말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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