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노트북을 열며

모가디슈, 그리고 올림픽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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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혜란 기자 중앙일보 국제팀장
강혜란 국제팀장

강혜란 국제팀장

한국영화로 올해 첫 관객 100만명을 돌파한 ‘모가디슈’(감독 류승완)를 지난 주말 봤다. 1990년 소말리아 내전 사태 때 수도 모가디슈에서 생사의 기로를 함께 한 남북 외교관들의 탈출 실화를 다뤘다. 도쿄올림픽 기간이라선지, 복고풍 소품 가운데 호돌이 마스코트가 유독 눈에 띄었다. 영화에선 88 서울올림픽 때 소말리아 선수단의 입장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외교 선물로 활용하는 장면도 나온다. 당시만 해도 남북이 유엔 가입을 놓고 그렇게 아프리카 표심 확보 경쟁을 벌였는데, 30년 만에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노트북을 열며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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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정치가 무관하다지만 올림픽만큼 당대의 국제정치 현황을 일러주는 이벤트도 없다. 도쿄올림픽에선 경기 후 망명을 희망한 벨라루스 육상 선수 덕에 루카셴코 독재정권의 실상이 새삼 조명됐다. “돌멩이를 맞으며 훈련했다”는 아프가니스탄 사이클 여자 선수들은 탈레반의 세력 확장 후 더욱 위태로워지는 아프간 상황을 보여준다. 시리아 출신 형제가 한 명은 시리아대표팀으로, 한 명은 난민대표팀으로 출전한 것도, 끝나지 않은 10년 내전을 되돌아보게 했다. 사실상 ‘실패 국가’ ‘해적 국가’ 로 전락한 소말리아는 2명의 대표단으로 구색만 갖췄다.

남북의 올림픽 참가 역사 역시 당대 지정학에 휘둘려왔다. 북한의 하계올림픽 공식 첫 참가가 멕시코시티였다가 뮌헨으로 미뤄진 데도 한국 측 로비가 작용한 건 유명하다. 88올림픽에 얼굴도 내밀지 않았던 북한은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남북 화해 무드였던 2000, 2004, 2006(동계) 올림픽 땐 선수단 동시 입장으로 호응했다. 불과 3년 전 평창 올림픽 때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꾸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번 도쿄 올림픽에선 북한 불참을 실감도 못 하는 분위기니 남북관계의 롤러코스터가 새삼스럽다. 공식적으론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불참한 북한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땐 어떻게 나올지 관전 포인트다.

“우린 오로지 여기 내전에서 생존해 빠져나가자고 모인 겁니다. 오케이?” 영화 속 한신성 대사(김윤석)는 이렇게 말하며 북의 손을 잡았고 살아남은 뒤엔 멀어져 갔다. ‘내전’을 ‘냉전’으로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격변기를 남과 북이 이렇게 헤쳐왔다. 이젠 우열 경쟁이 무의미할 정도로 국력 차가 커졌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남북간 통신선을 복원하고 대화 손짓이 나오는 것을 보면 각자의 다급함이 또 어떤 ‘올림픽용 이벤트’를 만들지 알 수 없다. 다만 오륜기를 목표로 뛰는 선수들의 땀이 헛되지 않기만 바란다. 언제 손잡고 언제 눈 흘겨야 하는지,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생존’이 목표인 개인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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