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강혜련의 휴먼임팩트

인맥 만능 사회의 함정

중앙일보

입력 2021.08.0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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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디지털 기술의 획기적 발전은 사람 간의 연결도 이제는 인터넷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그 범위가 거침없이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 사람은 직접 만나서 밥 먹고 이야기 나누며 친분 쌓기를 선호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네트워킹 많이 하는 집단일수록
‘누가 소개했는지’로 상대 판단
진입장벽 높은 전문직 사람들
인맥의 ‘지대추구 함정’ 경계해야

사람 간 관계는 대개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처럼 자주 대화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강한 유대관계, 그리고 가끔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는 지인들끼리의 약한 유대관계다. 그런데 미국의 사회학자 그래노베터 교수는 정보에서 서로 겹치지 않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약한 유대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과 느슨한 인맥을 쌓는 네트워킹이 사회생활의 성공적 요인으로 각인되면서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개인적 친분을 쌓으면 무엇보다도 그들의 인맥을 공유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필요한 사람을 소개받으면 새로 찾거나 검증하는데 들이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인류는 오랜 진화과정에서 서로 협력하고 친절을 베푸는 생활양식을 습득해왔다. 하지만 간혹 친절의 가면을 쓴 이기주의자(또는 사기꾼)의 덫에 걸려들 수 있다. 최근 가짜 수산업자와 친분을 맺어 낭패를 당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관한 뉴스는 상당히 충격적이며 인맥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특별검사까지 사기 전과 잡범에게 무장해제당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그 가짜 수산업자의 인맥에 등장하는 유력 정치인과 언론인의 이름에 현혹되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약한 유대관계에 익숙하여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습관적 관계 맺기의 함정을 돌아보게 한다.

우선 특별검사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은 경력과 배경이 일천한 가짜 수산업자를 어떻게 믿고 관계를 맺게 되었을까. 네트워크 연구를 참고하면 가짜 수산업자와 유력 인사의 관계는 둘만이 아닌 믿을 만한 제3의 인물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가 사기를 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형성된다. 네트워킹을 많이 하는 집단일수록 사람 관계에서 ‘지름길’을 택한다. 만나는 상대를 꼼꼼히 체크하기보다는 ‘누가 소개했는지’, ‘그가 누구를 아는지’를 판단의 잣대로 삼기에 함정에 빠지기 쉽다.

휴먼임팩트 8/5

휴먼임팩트 8/5

약한 유대관계로 만들어진 인맥은 신분 상승을 비롯한 사회적 이동 기회의 통로 역할을 한다. 자신의 역량으로는 얻을 수 없던 정보, 권위, 품격 같은 자원에 인맥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이 경우 지위가 열세인 사람이 지위가 우세한 상대방과 관계를 시작하는 단서가 선물이다. 선물 제공을 통해 호의를 베풀고 자신을 친절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인류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마르셀 모스는 그의 대표적 저서 『증여론』을 통해 선물의 상호주의 호혜성을 주기·받기·답례의 삼각구조로 설명하였다. 우선 상대가 선물을 주고 내가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다. 일단 내가 받으면 마지막 고리로 연결된다. 즉 뭔가 내가 되돌려주어 답례해야 상호주의가 완성된다.

그런데 만일 호혜성 원칙이 무시되고 한쪽의 일방적 선물 공세로 상대방이 과잉수혜자가 되면 둘의 동맹 관계는 지속 보장된다. 이번에 가짜 수산업자에게서 평범치 않은 선물을 거부하지 않고 받은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기에 사기꾼이 자랑삼아 떠벌이는 과시용 인맥형성에 일조한 것이다.

인맥 쌓기는 사회적 자본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만 동시에 불건전한 관행에 매우 취약한 측면이 있다.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은 자녀들을 위한 ‘스펙 품앗이’나 각종 청탁의 채널은 바로 ‘집단화된 개인적 연줄’의 산물이다. 정부의 주요 보직도 권력층의 인맥으로 결정되고 백신 부족 사태로 곳곳에서 예약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의사 인맥을 동원해 백신을 맞는 일이 벌어진다.

노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소유한 사실만으로 정당한 몫 이상을 차지하면 ‘지대추구’ 행위로 본다. 지대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 조건은 공급은 제한적인데 수요는 계속 높아지는 것이다. 특정 영역의 신분과 지위를 가진 사람은 제한적이고 이들과 연줄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진입장벽이 높은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의 인맥관리가 지대추구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다 같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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