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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대적 특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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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주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장주영 내셔널팀 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택이 아빠는 아들의 바둑대회 우승상금(5000만원)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에 빠진다. 이웃들은 한마디씩 조언하고 나선다. 덕선이 아빠는 “요샌 금리가 떨어져서 15%밖에 안 하지만…그래도 목돈은 은행에 넣어두는 게 안전하다”고 한다. 선이 엄마는 “생돈을 뭐하러 은행에 처박아 놓냐. 강남 은마아파트를 사라”고 거든다.

딴 세상 이야기처럼 들린다. 예금에 차곡차곡 두 자릿수 이자가 붙고, 어쩌다 생긴 목돈으로 강남 아파트도 산다니. 당시는 ‘3저(저유가·저금리·원화가치 약세) 호황’을 타고 경제가 급성장한 시기다. 1988년 경제성장률은 12%를 찍었으며, 당시 기사에 따르면 은마아파트(101㎡)의 매매가는 6500만원이다. 내집 마련이 언감생심인 지금 세대엔 ‘시대적 특혜’로 느껴질 만도 하다.

최근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후보자였던 김현아 전 의원은 ‘시대적 특혜’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그는 지난달 27일 인사청문회에서 다주택(4채) 보유에 대해 “제 연배상 지금보다 내 집 마련이 쉬웠으며 일종의 시대적 특혜를 입었다”고 대답했다. 택지개발과 주택공급을 책임지는 공기업의 수장이 되기에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여론 악화에 김 후보자는 지난 1일 자진 사퇴했다.

성실과 노력에 약간의 운이 더해지면 내 집 마련이 가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꼭 경제 성장 둔화 때문만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 탓이 더 크다. 정부는 도시재생과 임대주택 등 수요억제 정책을 펼치다 지난해 8·4 대책으로 부랴부랴 주택공급에 나섰다. 그러나 부지 인근 주민의 반발로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그 사이 집값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부동산 정책 담당자의 징계와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40대 가장이라고 소개한 글쓴이는 절규한다.

“돌이켜보면 무리하게 대출받아 아파트를 살 수도 있었다. ‘부동산 자신 있다’ ‘지금 사면 후회할 것’이라는 자신만만한 정부의 이야기를 믿었다. 3억원짜리 전세가 내년에 5억5000만원이 된다고 한다. 답도 없고 해결책도 없고 희망도 없는 문제로 부부가 싸운다.”

정부 말만 믿었던 무주택자들은 시대적 특혜는 고사하고 시대적 시련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