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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폐지한다던 경호처 오히려 역대급으로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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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왼쪽 끝은 부인인 안현미 씨.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은 대통령 경호실이 공개채용을 시작한 1988년 이후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경호처장까지 올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19일 오후 청와대에서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왼쪽 끝은 부인인 안현미 씨. 유연상 신임 경호처장은 대통령 경호실이 공개채용을 시작한 1988년 이후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경호처장까지 올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그제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경호인력과 방호인력을 65명 증원하는 내용의 ‘대통령 경호처와 그 소속 기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이 통과됐다. 문 대통령의 양산 사저를 담당할 요원들이다. 청와대 경호처는 앞서 2019년에도 96명 늘렸다. 이로써 현 정부 출범 때 532명이었던 경호처 정원은 693명으로 30%(161명) 늘어나게 됐다.

그제 65명 증원…이 정부 161명 늘어 #의경 폐지한다고 경호처 늘려야 했나

1990년대 이래 가장 매머드급이다. 김영삼 대통령 말기에 550명이었던 경호실 정원은 노무현 대통령 때 524명이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차관급 경호처로 낮추고, 증원도 하지 않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경호 수요가 많았는데도 인원을 유지했다. 그랬던 경호처 정원이 현 정부에서 대폭 늘어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화문 대통령’이 되겠다며 “우리도 권력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경호실을 경찰청 산하 ‘대통령 경호국’으로 위상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약속했다. 권위주의 시대엔 권부(權府)였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면교사도 있었다. 지나친 경호 논리가 ‘구중심처(九重深處) 청와대’를 만든다는 비판론을 의식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이 그제 “경호 지원 인력 중 사저 방호 인력이 증원된 것은 의무경찰 폐지로 인해 의경이 담당하던 업무가 경호처로 이관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청와대가 굳이 서면 브리핑한 건 이를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론 이 정부에서 경호처는 차관급으로 바뀌었을 뿐 몸집은 역대급으로 키운 셈이 됐다.

경호처는 “정부 방침이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의경 폐지로 공백이 생긴 데 대해 해당 기관이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마치 자신들과 무관한 결정인 양했다. 경호처 소속의, 평생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116명(방호인력 기준)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해당 기관이 담당한다는 논리면 의경이 경찰 소속이니 경찰이 맡는 게 맞다. 경찰이 경호처의 의사와 무관하게 넘겼다고 주장하려는 것인가. 누가 믿겠나. 고도의 경호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외곽 경호는 13만2000여 명의 인력풀을 가진 경찰(의무경찰 5000여 명 포함)이 담당하는 게 타당하다.

따지고 보면 논란을 부른 문 대통령의 사저 마련과정도 비슷하다. 문 대통령은 경호 논리 때문에 지산마을에다 경호 부지까지 포함해 새로 6005.8㎡(1817평)의 부지를 마련해야 했다. 이 덕분에 경호처도 최대급 경호 부지(단독 명의 기준, 3295.9㎡, 997평)를 확보할 수 있었다.

정부의 실패 중에 조직의 비공식 목표가 공식 목표를 대체하는 ‘내부성(internality)’의 문제란 게 있다. 경호처가 대통령 경호를 명목으로 증원이나 예산 확보를 한 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