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봤더라…안마의자 1억치 판 남자, 유명 개그맨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22:53

업데이트 2021.08.05 09:09

웃찾사 개그맨에서 바디프랜드 직원이 된 이기수 과장이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웃찾사 개그맨에서 바디프랜드 직원이 된 이기수 과장이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개그맨 이기수씨는 2017년 어머니가 보낸 택배를 정리하던 중, 신문지를 버리려다 깜짝 놀랐다. 개그맨부터 예술가에 운동선수까지, 특이 경력자를 채용한다는 한 안마의자 회사의 구인 광고를 보고서다. “안마의자를 만드는 데서 왜 개그맨을 뽑지?”라는 의문과 함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홀리듯 회사에 전화를 걸고 이렇게 물었다. “신문 보고 전화드렸어요. 개그맨 뽑는다면서요. 어떻게 해요?”

30대 중반까지 이력서 한 번 써보지 않았던 이씨는 그렇게 회사원이 됐다. 당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잘나가던 개그 프로그램인 SBS ‘웃찾사’에 출연 중이었다.

개그맨으로선 정상급 프로그램에 자리 잡았던 그가 갑자기 왜 10년 이상 몸담은 개그계를 떠나 ‘월급쟁이’의 길을 택했을까. 이씨는 “입사 1년 전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며 “수입이 일정치 않은 개그맨 대신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여기까지, 지금부턴 가족을 위해 살자”는 다짐이었다. 그렇게 ‘바디프랜드 과장’ 명함을 내미는 그를 지난 3일 강남구 도곡동 본사에서 만났다. 그사이 그는 마흔에 5년차 직장인이 됐다.

문세윤 한 마디에 ‘도전’…경찰 2차 시험 포기하고 상경  

이씨는 어릴 때부터 개그맨을 꿈꿨다. 롤모델은 심형래와 컬투. 웃찾사 시절 컬투와 함께 무대에 섰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뿌듯하다. 막연하게 품고 있던 그의 꿈에 불을 지핀 건 개그맨 문세윤이었다. 말년 병장 시절, 친한 후임병을 따라 외출을 나갔다가 만난 후임병의 절친 문세윤에게 “팬이에요”라고 말을 꺼낸 뒤, 이렇게 덧붙였다. “내 꿈도 개그맨이었는데.” 그런 이씨를 향한 문세윤 씨의 한마디. “안 늦었어요, 하세요.”

개그맨에 바로 도전했나.
“군 제대하고 얼마 후에 위암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3개월간 집 밖에도 안 나오고 공부해서 경찰공무원 1차 시험에 합격했다. 그런데 가족 몰래 지원했던 KBS 공채에서도 1차 합격을 했다. 1800명 중 300명에 든 거다. 공교롭게도 2차 시험 날짜가 겹쳤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 80만원 들고 상경했는데, KBS에선 탈락했다.”  
2016년 SBS 웃찾사에 출연한 이기수 과장(오른쪽). 손민혁(왼쪽)과 함께 짠 코너 '부담스런 거래'는 1년간 방송됐다. 사진 SBS 방송 캡처

2016년 SBS 웃찾사에 출연한 이기수 과장(오른쪽). 손민혁(왼쪽)과 함께 짠 코너 '부담스런 거래'는 1년간 방송됐다. 사진 SBS 방송 캡처

첫 도전에선 고배를 마셨지만, 공무원의 길은 택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2005년, 대학로 극단에 입단했다. 본격적으로 개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였다. 생활비를 아끼느라 고시원에 살면서 매일 공연장에서 홍보와 공연, 청소까지 도맡았다. 당시 3년 가까이 같이 살면서 함께 일한 동생이 김기리다. 기회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는 듯했다. 극단 공연에서 눈에 띄어 김기리와 함께 SBS 특채로 뽑혔다. 2006년 ‘개그1’에 데뷔했는데 13주 만에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상실감이 컸겠다.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개그1 마지막 녹화를 본 PD의 제안으로 ‘웃찾사’ 코너를 짰는데 방송까지 못 갔다. 2009년에 또 웃찾사에서 기회가 왔고, ‘이상해’ 코너가 10개월간 꽤 인기를 끌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을 때다. 모두가 ‘신인상은 이기수다’라고 했는데 시상식 2개월 앞두고 방송이 폐지됐다. 그때 많은 개그맨이 실업자가 됐다. 1년 만에 MBN 공채 1기에 합격했는데 거기서도 ‘개그공화국’이 11개월 만에 폐지됐다. 다른 데서도 주연만 맡으면 폐지되고 KBS 폭소클럽 녹화했는데 또 폐지되고. 잘 된다 싶을 때 오래 못 가서 망하더라.”
다른 곳에 취직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
“개그맨 할 때 해외공연을 다니면서 알게 된 여행가이드 형님한테 연락이 왔다. ‘뭐하냐’길래 ‘논다’고 했더니 ‘도와주겠다’더라. 그 한마디 믿고 비행기 티켓만 들고 캄보디아로 갔다. 2년간 나름 잘 나가는 가이드였다. 관광객들은 개그맨이 가이드하니까 좋아해주시고, 월 2000만원까지도 벌었다. 그때 정신수양도 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여유 있고 행복하게 사는 캄보디아인들을 보면서 ‘물질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고.”

'월 2000만원' 가이드에서 또 웃찾사로…'라방'으로 1억 매출   

웃찾사 개그맨에서 바디프랜드 직원이 된 이기수 과장이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웃찾사 개그맨에서 바디프랜드 직원이 된 이기수 과장이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캄보디아 생활을 마치고 스페인 가이드를 준비하러 한국에 돌아왔을 때였다. ‘레전드 매치’로 다시 방영 중이던 웃찾사에서 러브콜이 왔다. 2015년 ‘부담스런 거래’ 코너를 들고 다시 TV 앞에 섰다. 그렇게 다시 방송에 자리 잡는듯했지만, 이듬해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직장인이 됐다.

그런데, 출근 첫날, 팀장 눈치가 이상했다. 다음날 바로 면담을 신청해 “어디 정해놓고 뽑은 거냐, 아니면 뽑아놓고 어디에 쓸지 고민하는 거냐”고 물었다. “솔직히 후자다”라고 고백한 팀장에게 “제 살길 제가 알아서 찾겠습니다”라며 “어영부영하다 나가지 않겠습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다음날 내놓은 게 ‘프랜드TV’ 계획서였다.

프랜드TV가 뭔가.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동영상 플랫폼에서 제품과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거였다. 2017년 가을엔 홈페이지에서 안마의자를 1만원부터 파는 경매 이벤트도 진행했다. 지금은 대세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드물었던 라이브커머스였다. 2019년 그립이나 보고(VOGO) 등에서도 라이브커머스를 했는데 흑역사가 됐다. 시청자 두 명 놓고 혼자 한 시간 동안 방송하고, 6개월 동안 안마의자 1대 겨우 팔고…. 작년 5월 네이버 쇼핑라이브가 나오면서 단일 방송에서 54대, 1억 넘게 매출이 터졌다. 후배 개그맨(박민영 대리)도 영입했다. 라이브커머스 전담팀을 만들어 더 많은 개그맨을 영입할 예정이다. ”
스타 개그맨들 보면 부럽지 않나.
“늘 스스로 하는 생각이 ‘주제 파악을 잘하라’는 거다. 잘하는 일을 해야 한다. 난 웃기게 생겨서 웃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아니고, 잡다한 지식이 좀 있는 편이라 말 개그를 잘한다.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해보니 개그맨보다 잘 맞는 것 같다. 지금이 딱 좋다. 올해엔 승진도 하고, 용돈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늘고, 몇 년 전 분양받은 아파트에도 최근 입주했다. 행복하다.”
앞으로 꿈은.
“50살 넘어서 굳이 수익활동을 안 해도 괜찮다면 연기를 해보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연기라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부모도 되고 아픈 일, 힘든 일 겪어보니 감정이 풍부해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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