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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수해 보고서 발표 전 민감한 규정 변경? "정부 책임 회피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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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8일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 마을과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8일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주변 마을과 도로가 물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해 8월 발생한 대규모 수해의 책임 회피 차원에서 댐 관리 규정을 바꿨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3일 환경부·행정안전부·국토교통부가 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 결과를 약 1년 만에 발표했는데, 그 전에 미리 민감한 규정을 개정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은 4일 "한국수자원공사가 지난해 장마철 수해 원인 조사용역 보고서를 마무리하기 직전 '댐 관리 규정'을 개정해 홍수 피해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49시간 수위 넘겼는데…"규정 준수했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홍수 직전 용담댐은 약 249시간, 합천댐은 34시간, 섬진강댐은 21시간 동안 홍수기 제한 수위를 넘겨 운영했다. 홍수기 제한 수위는 홍수에 대비해 평상시 가득 채운 수위보다 낮게 제한하는 선이다. 하지만 댐 하류 수해 원인 조사협의회가 발표한 조사용역 보고서엔 지난해 수해 당시 댐 관리 규정상 홍수기 제한 수위, 계획 방류량 등이 지켜졌다고 적혀 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들 댐에서 수위를 초과했음에도 규정이 지켜졌다고 명시된 건 올 들어 개정된 조항 덕분이라는 게 김 의원실 설명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댐 관리 규정은 지난 6월 9일 환경부 승인을 받아 바뀌었다. 환경부는 당시 홍수 피해 지역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수해 원인 설명회를 진행했다.

개정 전 규정의 홍수 조절 조항은 '댐 수위를 홍수기 제한 수위 이하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변경 후 이 조항은 '기상청 강우 예보량을 반영하여 홍수기 제한 수위 이하로 저하될 때까지 방류를 지속하여야 한다'고 바뀌었다. 이에 따르면 댐 수위가 일시적으로 수위를 넘는 건 괜찮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보조 여수로 안 썼는데…보고서엔 '누락'"

피해가 가장 컸던 섬진강댐에서 보조 여수로(물이 넘칠 때 여분의 물을 빼내기 위해서 만든 물길)가 활용되지 않았다는 의견이 누락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다른 댐에 비해 홍수조절용량이 적은 섬진강댐은 2015년 보조 여수로를 설치해 용량을 늘렸다. 이 때 섬진강댐의 상시 만수위가 191.5m에서 196.5m로 5m 높아졌다. 김웅 의원은 "전문가들이 홍수 직전 보조 여수로가 활용되지 않았다는 걸 지적했지만 환경부 최종보고서엔 (이 내용이) 언급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집중호우 당시 섬진강댐 하류의 대규모 수해 원인은 섬진강댐의 홍수조절용량 부족과 하천 관리 부실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온누리센터 앞에서 지난달 26일 피해 주민들이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집중호우 당시 섬진강댐 하류의 대규모 수해 원인은 섬진강댐의 홍수조절용량 부족과 하천 관리 부실이라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 온누리센터 앞에서 지난달 26일 피해 주민들이 항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책임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비중은 '모호'

정부는 3일 진행된 지난해 수해 후속 조치 브리핑에서 집중호우와 '인재'(人災)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책임을 일부 인정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책임 비중에 대해서는 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환경부·국토부·지자체 등 유관기관의 책임 비중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지역별로 다르다. 책임 비중은 분쟁조정절차를 거치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섬진강댐, 용담·대청댐, 합천·남강댐 하류의 피해 가구는 8356가구에 달한다. 피해액은 3725억원이다. 피해 지역 주민들은 정부 차원의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구례, 합천, 청주 주민들이 환경분쟁조정 신청에 먼저 나섰고, 나머지 14개 피해 시·군은 조정 신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웅 의원은 "최종 보고서의 종합 결론에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해야 나중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심의, 검토를 하더라도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가능하다. 두루뭉술한 결론으로는 보상이 어려울 수 있다"면서 "댐 운영, 관리의 주체인 환경부, 국가물관리위원회, 수자원공사에 대한 책임 여부를 명확히 따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환경부 "보고서엔 고치기 전 규정 적용"

환경부는 김 의원실 문제 제기에 대해 "지난 6월 댐 관리 규정이 개정된 건 맞다. 하지만 조사 보고서에선 예전 규정을 적용한 만큼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댐에 폭우가 내리는 동안 홍수위 제한 수위를 조금 넘을 수 있다. 일부 댐에서 홍수 직전 수위가 높았던 건 사실이지만, 댐 관리 규정을 어겼다고 보기엔 어려운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댐 관리 규정을 개정한 건 지난해 수해 때문에 여러 규정을 정비하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었다"며 "홍수위 제한 수위를 넘겨도 되는 예외조항을 없애는 등 오히려 수위를 제대로 지키라는 메시지를 강화한 개정"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섬진강댐 보조 여수로 관련 누락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홍수 발생 전인 7월 27일부터 보조 여수로를 이용해 최대 초당 600t의 예비 방류를 실시했다. 가뭄 가능성 등을 고려하느라 최대치를 사용하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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