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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다" 박상영, '옥상 펜싱클럽'이 만든 메달

중앙일보

입력

펜싱 국가대표 박상영(26·울산시청)은 이름만큼이나 "할 수 있다"라는 자기 암시로 유명하다. 2016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남긴 명장면 덕이다.

직접 설치한 옥상 간이 피스트에서 고교 시절 동료와 훈련하는 박상영 [박상영 인스타그램 캡처]

직접 설치한 옥상 간이 피스트에서 고교 시절 동료와 훈련하는 박상영 [박상영 인스타그램 캡처]

경기 막바지 크게 뒤져 패색이 짙은 순간, 박상영이 "할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거듭 되뇌며 절박하게 주문을 거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포착됐다. 그가 그 후 기적같은 역전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할 수 있다"는 리우올림픽 최고 명대사 중 하나로 기억됐다.

5년 후 열린 도쿄올림픽. 박상영은 또 한 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개인전에서는 8강에서 탈락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 독보적으로 활약해 동료들과 함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유독 많이 울고 힘들었다"던 그의 의미 있는 성취였다.

박상영은 귀국 후에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긴 글을 올려 힘들었던 올림픽 준비 과정을 털어놓았다. 마땅히 훈련할 곳이 없어 집 옥상에 간이 피스트를 만들어 놓고 남몰래 땀을 흘려야 했던 사연이다.

박상영은 "도쿄올림픽 개막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봉사 활동(예술·체육요원 특기 활용 공익복무)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들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열심히 훈련할 때, 나는 경남체육고등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올림픽 준비를 병행해야 했다. 많이 불안 했지만 상황이 그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던 와중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올림픽이 두 달 정도 앞으로 다가온 시기에 경남체고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학생들은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체육관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박상영은 "학생들이 2주간 자가격리를 했는데, 올림픽을 앞둔 내게 2주의 공백은 정말 긴 기간이었다. 조급함도 많이 느꼈고, 부정적인 생각이 커져갔다. 그래서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 옥상에 나만의 펜싱장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스트와 판정 기계는 소속팀 울산시청 훈련장에 쓰지 않고 방치돼 있던 제품을 빌려왔다. 천막 가게에서 가림막을 사와 피스트 위에 직접 설치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남자 에페 단체전 동메달을 딴 뒤 피스트에 누워 환호하는 박상영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 에페 단체전 동메달을 딴 뒤 피스트에 누워 환호하는 박상영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기서 끝이 아니다. 펜싱은 혼자 할 수 없는 운동이다. 훈련 파트너도 필요했다. 박상영은 "지금은 운동을 그만뒀지만, 고등학교 때 같이 펜싱을 했던 선·후배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들이 흔쾌히 수락해줬다. 표현은 많이 못했지만 정말 고마웠다"고 썼다.

박상영은 그렇게 완성된 '옥상 펜싱클럽'에서 맹훈련에 돌입했다. 그는 "오전 6시에 일어나 줄넘기 2단 뛰기와 체력운동, 명상을 했다. 오전에는 레슨을 받고 보강 운동을 했고, 오후에는 본격적인 펜싱 훈련을 했다. 야외 펜싱은 처음 해봐서 피부도 많이 타고 무릎도 많이 아팠다. 새들의 배설물이 떨어질 때면 화가 나기도 했다"고 그 시기를 돌이켰다.

노력의 대가는 달콤했다. 박상영은 무사히 올림픽에 나갔고, 리우 대회에 이어 또 다시 값진 메달을 수확했다. 그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고, 나만의 '발버둥'은 나름대로 성공한 것 같다. 그 시기는 평생 잊지 못할 나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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