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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현장 전전…” 은행 사칭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은 건설노동자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전화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전화 이미지. 사진 픽사베이

“○○ 은행입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준다는 안내를 하려고 전화드렸어요.”

지난해 7월 카드 청구대금에 쪼들렸던 이모(56)씨는 은행이라며 걸려온 ‘솔깃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씨는 “신용등급을 높이려면 가상계좌에 돈을 넣어야 한다”는 설명에 따라 3700만원을 보냈다. 그러나 이는 보이스피싱 사기였다.

이씨는 “돈을 보낸다고 카드론(장기카드대출)까지 받았기 때문에 그 이자를 감당하느라 1년 넘게 빌린 돈을 갚고 있다”며 “이 더운 날 건설현장을 전전하고 있다. 사람 죽어 나간다. 완벽하게 짜인 범행 시나리오에 내가 속을 줄은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중국에 콜센터 두고 32억 챙긴 보이스피싱 조직 적발 

A씨 등 범죄 조직도.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A씨 등 범죄 조직도.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4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이씨 돈을 가로챈 일당은 중국에 콜센터를 두고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인 범죄 조직이었다. 확인된 조직원 숫자만 32명에 이른다.

총책 A씨(38) 등 일당 대부분은 충청 지역 선·후배 사이라고 한다. 원래 이들은 대포폰을 보이스피싱 조직 등에 제공하는 일을 하다가 직접 보이스피싱을 하기로 마음먹고 조직을 만든 뒤 중국으로 건너가 범행에 나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중국 청도에 일명 ‘심박스’ 등을 설치한 콜센터를 차렸다. 심박스는 유심칩 다수를 동시에 장착할 수 있는 기기다. 070 등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010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국내에 남은 일당도 모텔 등에서 심박스를 놓고 운영·관리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보이스피싱에 뛰어든 이들은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89명에게 적게는 100만원부터 많게는 1억2600만원까지 모두 32억원을 뜯어낸 혐의(범죄단체조직,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등)를 받는다.

A씨 일당은 대출회사 등에 대출 여부를 문의한 이력이 있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가지고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대출을 받아줄 테니 수수료만 내면 된다”(저금리 대환대출)고 하거나 “검찰인데 계좌에 있는 돈이 불법자금으로 사용됐다”(수사기관 사칭)고 말하는 식으로 피해자를 속인 것으로 파악됐다. 하루 평균 300통 이상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수사기관인 척 연기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출입국 어려워지면서 범행 중단”

전화번호 변작 중계소 등을 운영·관리한 일당.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전화번호 변작 중계소 등을 운영·관리한 일당.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이들의 범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현지 상황이 나빠지면서 멈추게 됐다. A씨는 부총책 등과 함께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조직원들을 관리하고, 심박스와 대포폰 등 범행에 필요한 기기를 유지·관리해왔다. 그러나 방역 강화로 출입국이 어려워지자 7개월여 만에 범행을 중단하고 하나둘 귀국한 뒤 숨어지냈다.

A씨 등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경찰은 지난 4월부터 수사에 착수해 국내에 들어온 이들을 붙잡았다. 그 가운데 A씨 등 주요 피의자 10명을 구속하고 2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용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수사3계장은 “범죄조직 와해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피해복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수사 기관이라며 전화로 현금을 요구하거나, 거리에서 누구를 만나 현금을 전달하라고 하면 100% 사기이니 즉시 전화를 끊고 112에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경찰이 안내하는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 및 대응 방법

①경찰·검찰 등 수사기관과 금융기관은 현금을 요구하지 않고, 대출상환도 반드시 지정된 계좌로만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한다.

②명의도용·대포통장 등 범죄에 연루됐다며 수사기관이 전화로 현금을 요구하거나, 거리에서 누군가를 만나 현금을 전달하라고 하면 100% 사기다.

③위와 같은 사례를 접하면 즉시 전화를 끊고 112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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