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상 우상혁도 펜싱 오상욱도, 이 남자의 뒷바라지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11:40

업데이트 2021.08.04 11:58

2013년 장학금 수여식에서 이건표 회장(왼쪽 첫번째)이 학생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장학생이었던 오상욱(왼쪽 세번째), 우상혁(왼쪽 네번째) 선수가 무대에 서있다. [운사모 제공]

2013년 장학금 수여식에서 이건표 회장(왼쪽 첫번째)이 학생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장학생이었던 오상욱(왼쪽 세번째), 우상혁(왼쪽 네번째) 선수가 무대에 서있다. [운사모 제공]

"경기 전에 '다 내려놓고 후련하게 뛰고 온다'더니 신기록을 세웠네요. 이건 기적입니다"

높이뛰기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운 순간, 이건표(69) 운사모(운동을 사랑하는 모임) 회장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13년 전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체육 유망주를 후원하는 단체 운사모를 만들었다. 우상혁 선수도 학창 시절부터 10여년간 이 단체의 후원을 받아왔다.

운사모는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리스트도 배출했다. 지난달 28일 남자 펜싱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오상욱(25·성남시청) 선수도 학생 때부터 운사모의 후원을 받았다. 이 회장은 "힘든 훈련을 딛고 올림픽에서 뛰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운동화 살 돈 없어 포기하는 학생들 보고 '운사모' 결성

2013년 학생 펜싱 선수 시절 오상욱 선수 모습. [운사모 제공]

2013년 학생 펜싱 선수 시절 오상욱 선수 모습. [운사모 제공]

학생 선수들과 이 회장의 인연은 대전교육청에서 재직하던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체육교사였던 그는 교육청에서 체육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 때 이씨는 경제적인 이유로 운동을 포기하는 학생 선수를 가까이서 지켜봤다.

한국 신기록을 쓴 우상혁 선수와의 인연도 이때 맺었다. 이 회장은 "2006년 쯤에 교육청으로 우상혁 선수의 아버지가 직접 찾아왔다"며 "나를 붙잡고 '우리 아들이 운동을 잘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는데, 부모가 교육청에 찾아와 도움을 구한 건 처음봤다"고 말했다.

절박한 마음을 느낀 이 회장은 충남 지역에서 선수를 지도하던 윤종형 코치를 소개해줬다. 우상혁 선수가 국가대표로 선발될 때까지 옆에서 도운 윤 코치와의 인연이 이 회장을 통해 시작된 것이다. 윤 코치는 우상혁 선수가 실업팀에 갔을 때도 함께 하며 호흡을 맞췄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이 회장은 이들을 돕기 위해 2009년 '운사모'를 창립했다. 이 회장은 "운동화 살 돈도 없어서 운동을 그만두는 뛰어난 학생이 많았다"며 "운동이라도 할 수 있게 돕자는 생각으로 지인 서너명을 모아 후원단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도움 받던 우상혁·오상욱도 이젠 후원 회원으로

도쿄올림픽 남자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 2m35를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지난 2일 올림픽선수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참석자들과 교환한 다양한 핀들을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남자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 2m35를 세우며 4위를 차지한 우상혁이 지난 2일 올림픽선수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참석자들과 교환한 다양한 핀들을 보여주며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운사모는 체육 유망주에게 매달 2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한다. 서너명으로 시작한 운사모 회원 수는 현재 473명으로 늘었다. 창립 당시에는 체육 교사나 지도자 등이 주로 가입했지만, 지금은 일반 시민의 참여도 많이 늘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까지 54명의 학생 선수를 지원했다. 지급한 장학금 총액은 3억2000만원이 넘는다.

후원을 받은 학생 선수가 성인이 되어 후원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10여년간 후원을 받은 우상혁·오상욱 선수도 운사모의 회원이다. 이 회장은 "두 선수가 자기가 받은 만큼 후배에게 돌려주고 싶다며 운사모에 가입했다"며 "도움을 받던 선수가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의 비인기종목 선수 더 돕고싶어"

2009년 운사모를 창립한 이건표(69) 회장. [운사모 제공]

2009년 운사모를 창립한 이건표(69) 회장. [운사모 제공]

이 회장은 비인기 종목에서 활약하는 선수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 회장은 "축구·야구 같은 인기 종목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도전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비인기 종목을 선택한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다"고 말했다.

교단에서 은퇴한 후 농사를 짓고 있는 이 회장은 여전히 운사모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 회장은 "회원이 500명 가까이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가 많다"며 "운사모와 함께하는 분을 더 늘려서 더 많은 선수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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