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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양보 합의 깨라"…與 '검수완박 그룹' 판 키우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3일 서울 마포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대선 경선 후보인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3일 서울 마포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대선 경선 후보인 김두관 민주당 의원과 전국 자영업자 비상대책위원회 간담회에 참석한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의총에서 반드시 법제사법위원회 양보 합의를 파기하라.” “지도부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다음 주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법사위 양보 합의 파기’에 대한 의견을 듣기로 2일 결정하자 강성 지지층이 당원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정청래 의원 등이 의총 소집 연판장을 돌리며 당 지도부를 압박한 끝에 이를 관철하자 나온 반응이었다.

“합의를 재론하는 게 아니라 의견을 듣는 자리”라는 민주당 원내지도부의 해명에도 논란은 커졌다. 협상 파트너인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일 KBS라디오에서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깬다면 국회를 수렁으로, 진흙탕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야 합의 열흘 만에 파열음이 터져나오자 민주당에선 “송영길 체제가 강경파의 흔들기로 인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 나왔다.

강성지지층 규합 나선 ‘검수완박’ 강경파

‘법사위 양보 폐기론’을 가장 먼저 꺼낸 건 친여(親與) 성향 유튜브 채널이었지만, 이를 확산시킨 건 여당 강경파 의원들이었다. 정청래 의원은 지난달 23일 밤 유튜브 ‘시사타파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지도부 책임론’에 불을 붙였다. ‘시사타파TV’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옹호 시위를 주도한 유튜브 채널이다.

이후 황운하·김용민 등 여당 내 강경파 의원들이 차례로 법사위 양보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이 확대됐다. 정청래 의원은 윤호중 원내대표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이라고 적었고, 박주민 의원은 라디오에 출연해서 “개혁 입법도 이제 다 막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법사위 양보 합의 폐기 요구 글. 홈페이지 캡처

민주당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법사위 양보 합의 폐기 요구 글. 홈페이지 캡처

그러자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김두관 의원도 잇따라 ‘협상재고론’에 가세했다. “약속은 약속이고 합의는 합의다. 지켜야 한다”(이낙연 전 대표, 지난달 26일)는 반론도 나왔지만, 강경파에 힘이 실린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한 충청권 초선 의원은 “다시 의총이 열려도 뒤집는 건 어렵고 대선을 위해선 상식적이지도 않다”며 “그런데도 강경파가 지도부를 향한 ‘반대’ 메시지를 내는 건 지지층을 결집에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후보 못 낸 친문의 빈자리 놓고 권력다툼?

강경파의 이런 움직임은 결국 당내 주도권 싸움 차원으로 해석된다. 2012·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후보로 냈던 친문 그룹은 이번 대선 경선에선 단일 지지 후보를 내지 못했고, 86그룹 역시 각 캠프로 뿔뿔이 흩어졌다. 반면 박주민(총괄본부장)·이재정(미디어본부장)·김남국(수행실장)·민형배(전략실장) 의원 등 당내에서 가장 강성으로 분류되는 ‘검수완박’ 그룹은 일사불란하게 이 지사 캠프로 합류했다. “민주당 양대 주류였던 친문과 86그룹의 빈자리를 온라인 강성 당원들의 지지를 받는 ‘검수완박’ 그룹이 노리고 있다”(호남의 한 친문 의원)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정청래 의원이 지난 6월 '중앙위원 100%'로 결정되는 전당대회 컷오프 기준을 '권리당원 50%, 중앙위원 50%'로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장경태, 김남국, 정청래, 황운하, 이수진 의원. 오종택 기자

정청래 의원이 지난 6월 '중앙위원 100%'로 결정되는 전당대회 컷오프 기준을 '권리당원 50%, 중앙위원 50%'로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왼쪽부터 장경태, 김남국, 정청래, 황운하, 이수진 의원. 오종택 기자

특히 지난 5월 출범 이후 줄곧 쇄신론을 펴온 송영길 지도부에 대한 견제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검수완박’ 기조를 송 대표가 뒷순위로 미루자 강경파가 ‘언론재갈법’을 밀어붙이며 힘겨루기에 나섰던 연장선이란 해석이다. 강경파 의원들은 송 대표가 부동산 세제 완화를 추진할 때도 반대 입장에 섰다. 당 지도부의 한 친문 의원은 “현 지도부와 각을 세우며 대선 경선 이후 당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라고 해석했다.

당 일각에선 3선의 정청래 의원이 내년 8월 당대표 도전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의원은 앞서 지난 6월 강경파 의원들과 “전대 경선배제(컷오프)를 정하는 주체를 ‘중앙위원 100%’에서 ‘중앙위 50%·권리당원 50%’로 바꾸자”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당내 조직(중앙위원)은 약하지만 팬덤(권리당원)은 있는 정 의원이 룰을 바꿔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한국정당학회장)는 “대선을 앞두고 균열과 응집을 통해 세 싸움을 벌이는 것인데 과도할 경우 ‘원팀’ 기조가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송영길 대표가 강경파의 포퓰리즘적 주장에 휘둘리면 대표로서의 권위를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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