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출마 선언을 하는 국민의힘 대선주자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두고 ‘엄근진’(엄격·근엄·진지)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판사 출신인 데다 그간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의원들의 날 선 질의에 동요 없이 답변하는 모습이 대중에게 알려져서다.
2017년 감사원장 인사청문회에선 최 전 원장을 둘러싼 각종 미담이 알려지면서 여당 의원이 “미담 제조기”(박홍근 민주당 의원)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범생이’ 이미지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최 전 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알고 보면 유쾌한 사람”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 전 원장은 경남 진해에서 4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인 최영섭 전 예비역 해군대령은 6·25 전쟁에서 해군의 첫 승전고를 울린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한 전쟁 영웅이다. 지난달 8일 숙환으로 별세했는데, 최 전 원장에게 “대한민국을 밝혀라”는 자필 유언을 남겼다. 최 전 원장은 주변에서 존경하는 인물을 물을 때면 “아버지”라고 답하곤 했는데, 최 대령은 자서전에서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한소리 하자 재형이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회고했다.
최 전 원장은 이후 부친이 예편하면서 가족들과 서울 회현동에 잠시 자리를 잡았고, 서울 중구의 남산 초등학교, 강동구의 한영 중학교를 거쳐 경기고에 입학했다. 최 전 원장의 죽마고우인 강명훈 변호사는 “단지 공부만 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기타도 열심히 치고, 축구를 할 땐 매번 골키퍼를 맡았다. 다른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어서 다들 재형이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최 전 원장 삶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가족이다. 아내 이소연씨는 부친 친구의 소개로 만나 1983년 3월 결혼했다. 최 전 원장이 27살, 이씨가 23살 때였다. 최 전 원장은 결혼 전인 1982년 이씨와 함께 서울 동교동 집을 찾았는데 당시 모습이 사진에 남아 있다. 최 전 원장과 가까운 한 지인은 “온 가족의 시선이 집중돼 다소 긴장한듯 수줍은 모습의 아내 이소연씨와, 이를 아는지 모르는 지 태평하게 웃으며 책을 꺼내 읽는 최 전 원장의 모습이 관전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최 전 원장의 가족은 ‘애국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명절 때 가족 모임이나 식사를 할 때면 부친 최 대령의 주도로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는 게 집안 전통이다. 최 전 원장은 육군 법무관 출신으로 다른 형제 셋도 육해공군에서 장교로 복무해 병역 명문가로 불린다.
최 전 원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두 딸을 키우다 2000년과 2006년 두 아들을 입양했다. 당시 부부는 한국입양홍보회 사이트에 두 아이의 입양 성장일기를 올렸는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훈육에 대한 고민을 고스란히 담았다. 당시 부부가 올린 글의 한 대목이다.
“진호(둘째 아들)가 친구의 엄마에게 ‘저는 엄마 배에서 안 나왔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유치원 선생님에게 혹시라도 기회가 되면 진호에게 ‘가족이 되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말씀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최 전 원장의 장남 영진씨는 이경 전 민주당 부대변인이 '아이 입양을 더는 언급하지 말라'는 취지로 최 전 원장을 공격하자, 지난달 20일 페이스북에 “입양 전에는 고아라는 점이 부끄럽고 속상했지만, 아빠와 제가 부딪히고 이겨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다”는 반박 글을 올렸다.
최 전 원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키워드가 봉사다. 기독교 신자인 최 전 원장은 그동안 국내와 필리핀 등에서 여러 차례 봉사 활동을 했다. 캠프 관계자는 “해외 봉사 때 최 전 원장이 바람개비를 만들어 현지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바람개비 할아버지’라고 불리며 인기가 많았다”고 전했다. 최 전 원장은 국민의힘 입당 뒤 첫 일정으로 부산을 방문해 김미애 의원, 아내와 함께 쓰레기를 줍는 봉사활동을 했다.
최 전 원장의 취미는 탁구다. 탁구의 재미에 빠진 뒤 일과 뒤 틈틈이 연습하며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최근엔 페이스북에 수준급 탁구 실력을 공개하기도 했다. 캠프 관계자는 “지금도 아내와 아침에 탁구 연습을 하는 게 최 전 원장의 낙”이라고 전했다. 탁구를 하기 전엔 테니스도 했다.
최 전 원장의 후원회장은 50년 지기 강명훈 변호사가 맡았다. 소아마비로 거동이 자유롭지 않은 강 변호사를 고등학생 시절 최 전 원장이 2년간 업고 등·하교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명훈아. 50여년 함께 살아오면서 내게 많은 힘이 돼 주었는데, 제일 힘들 때 앞장서 주었구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