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메달이면 어때"…金 못따면 죄인되던 그 한국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05:00

역도 김수현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낸 팬. 사진 김수현 인스타그램 스토리 캡처

역도 김수현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낸 팬. 사진 김수현 인스타그램 스토리 캡처

“메달과 그 색으로는 잠재력을 평가할 순 없어요. 이미 잠재력을 보여줬어요!” “크고 빛나는 도전이었기에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웠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역도 여자 76㎏급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 등으로 동메달을 놓친 뒤 눈물을 보인 김수현(26) 선수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 같은 팬들의 격려 메시지가 넘쳐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본인 탓 하지 말고 창피해하지도 말아라. 우리에게는 당신이 금메달”이라는 응원 메시지를 김 선수에게 보냈다. 김 선수는 팬들의 메시지를 SNS에 하나하나 공유하면서 “감사하다”고 적었다.

메달 아니면 어때, 달라진 올림픽 관전 문화 

육상 국가대표 우상혁이 1일 오후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 경기에서 4위 2.35 한국신기록을 달성한 뒤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육상 국가대표 우상혁이 1일 오후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 경기에서 4위 2.35 한국신기록을 달성한 뒤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1등이 아니면 주목하지 않던 올림픽 관전 문화가 달라지고 있다. 은메달을 따면 선수가 비난받던 과거와는 이별하고, 도전 그 자체에 의의를 두고 대회를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다.

흐름이 이렇다 보니 이전과 달리 ‘노메달’인 선수도 관심 대상이 된다. SNS 등 온라인에서는 “선수 SNS를 찾아가 응원 메시지를 남겨서 힘이 되자”며 독려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 35㎝를 넘어 4위를 기록한 우상혁(25) 선수다. 우 선수는 3위 선수와 2㎝ 차이로 메달을 놓쳤다. 그러나 그에게는 질책보다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우 선수가 “높이 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남긴 SNS 소감에는 “내 마음속 금메달이다” “국가대표 해줘서 감사하다” “이번 올림픽 최고의 선수다”와 같은 댓글이 줄이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우상혁 선수의 SNS를 팔로우해야 한다. 그래야 후원도 늘고 광고도 붙게 된다”는 제안도 나왔다. 25년 만에 한국 신기록을 세우는 기량을 뽐냈지만, 올림픽 메달 포상금이나 연금, 군 제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우 선수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에서다. 이 글에는 “나도 (팔로우) 완료했다”는 인증과 호응이 뒤따랐다.

‘노메달’ 비난 안녕…질책 아닌 응원 쏟아지는 까닭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7인제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국 럭비 사상 첫 올림픽 출전했다. 뉴시스

2020 도쿄 올림픽 남자 7인제 럭비 대표팀이 지난달 2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이들은 한국 럭비 사상 첫 올림픽 출전했다. 뉴시스

대중의 관심은 인기 종목 선수나 어린 선수들에게만 쏠리지 않는다. 남자 요트 하지민(32) 선수나 ‘아름다운 꼴찌’ 럭비 대표팀 등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도 응원이 잇따른다. 이들에겐 “올림픽 정신 그 자체” “파리올림픽에서 만나요” “출전 자체가 자랑스럽다”와 같은 선플이 수백 개 달렸다. 효자 종목으로 꼽혔던 유도·레슬링·태권도 등이 부진한 성적이라고 해서 이를 꾸짖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도 아니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한국 올림픽 메달 순위에 신경 쓰지 않는 이도 적지 않다. 메달 색깔이나 경기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든 결과다. 올림픽 주요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본다는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메달 소식이 기쁜 건 맞지만, 순위나 성적보다는 선수들의 감동적인 스토리를 보는 것이 더 즐겁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에 대해 국민이 올림픽 성적을 국가 명운이나 국격과 동일시하던 민족주의적 경향이 과거보다 옅어지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분석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의 성공과 개인의 성공은 다른 것이고, 스포츠를 통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젊은 세대에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라며 “1등을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생각보다는 저마다 입장에서 자신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올림픽 관전 문화가 바뀐 거 같다.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메달 지상주의’를 탈피한 관전 문화가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윤수 단국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대중이 ‘금메달’이라는 표현보다는 ‘메달’이라고 하는 등 성적 지상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높게 평가하고 스포츠를 즐기는 방향으로 관전 문화가 바뀌고 있다”며 “승자를 인정하고 패자를 위로하는 문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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