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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 칼럼

위태위태해 보이는 윤석열과 이준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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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주 120시간’ ‘대구 민란’에 이어 그제는 ‘부정식품’ 발언으로 난타당하고 있다. 그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식품 안전 기준을 너무 높여 버리면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의 이번 실언은 이 정도의 역풍에 그친 게 다행이다. 프리드먼에겐 훨씬 극단적인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은 극보수 경제학자 #중도 노리면서 인용하는 건 모순 #공약 미처 못 따진 5년 전 대선 #이번엔 공약 검증 제대로 해야

프리드먼은 고리대금업의 자유를 옹호했다. 고금리를 제한하면 가난한 사람들만 희생된다는 것이다. 매춘 합법화도 주장했다. 생계를 꾸릴 기술이 없고 자기 의지로 성매매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마리화나 합법화도 요구했다. 암시장 가격이 치솟으면 밀매 대금을 마련하려는 범죄가 많아져 사회적 비효율이 커진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가격을 낮추는 불법 이민도 ‘필요악’이라 여겼다. 따라서 한국에서 프리드먼을 인용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표현 순화와 되새김질이 필요하다.

더 근본적인 의문은 윤 전 총장이 왜 프리드먼을 인용했냐는 것이다. 그는 한동안 중도와 탈진보를 아우르는 빅 텐트를 치겠다며 전국을 돌았다. 국민의힘에 깜짝 입당하면서도 “당 밖의 중도층을 끌어오겠다”고 했다. 경제에서 중도를 품겠다면 입에 올려선 안 될 인물이 프리드먼이다. 좌파 후보가 중도층을 향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설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프리드먼은 하이에크와 더불어 가장 오른쪽의 경제학자다. 자유 경쟁 및 철저한 시장주의자다.

“설명이 자세하다 보니 오해를 불렀다.” 어제 윤 전 총장은 “앞으로 유의하겠다”며 뒤늦게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일시적인 대증요법일 뿐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믿기 힘들다. 프리드먼이라는 인용 대상을 잘못 골랐고, 논리 전개의 방향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다. 차라리 중도층을 끌어안으려면 상대적으로 온건한 케인스나 폴 새뮤엘슨을 인용하는 게 더 어울린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도 위태위태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그 상징적 단면이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 덥석 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에 합의한 것이다. 이 대표는 “송 대표가 ‘소득 하위 80% 선별하는 데 행정비용이 많이 든다’고 해 합의해 주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너무 나이브하다. 보편적 복지 진영은 선별적 복지를 제압하기 위해 보통 두 가지의 밑밥을 깐다. 하나는 선별에 필요한 행정비용이고, 또 하나는 비(非) 수혜층의 불만이나 수치심을 과대포장한다. 하지만 한국은 IT 선진국이고 빅 데이터도 풍부하다. 실제로 이번 재난지원금은 8조6000억원인 반면 소득 88% 이하를 선별하는 데 드는 행정비용은 42억원에 불과하다. 뒤집어 말하면 42억원을 들여 9772억원의 세금을 아끼는 셈이다. 이 대표가 이런 현실을 몰랐다면 송 대표의 ‘행정비용’ 노림수에 넘어간 것이다.

그의 철학과 가치도 위태롭게 흔들린다. 코로나 와중에 자산이 늘어난 부유층을 지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 이 대표는 지원금 대신 실제 영업제한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 대한 충분한 보상으로 협상 항목을 못 박았어야 했다. 아무리 눈앞에 표가 어른거려도, 국회 의석에서 밀린다 해도 보수 정당 대표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마지노선이었다.

국민의힘 후보들이 기본소득에 맞서 ‘부(負)의 소득세’를 앞 다투어 꺼내 드는 것 역시 위험한 도박이다. 프리드먼의 이 학설은 그 반대급부로 기초생활수급·최저임금·노령연금 등 기존의 모든 복지제도를 싹 없애는 것이다. 당연히 복지 관련 행정과 기관까지 모두 폐지된다. 이런 쓴 약을 감당할 수 있을까.

프리드먼의 또 다른 기둥은 ‘준칙(準則)’이다. 그는 소득세율·면제기준 등을 딱 정해 놓고 절대 정치권의 자의적인 재량에 흔들려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에도 준칙이 없는 게 아니다. 그중 하나가 지난해 10월 5일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이다. 하지만 국회는 이를 넘겨받은 뒤 한 번도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 정치권 전체가 재정중독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준칙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문재인 시즌2’를 합창하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친문 표를 의식한 것이다. 부동산 실패나 자영업 재앙을 전환시킬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 반대편의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지금은 윤희숙·유승민 후보 정도만 논리 구조를 갖춘 경제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 대표와 윤 전 총장조차 주변에 제대로 된 참모가 없는지 설익은 이슈들을 불쑥불쑥 내던지고 있다. ‘중도 표를 잡는다’며 위태로운 스텝을 밟고 있다.

지난 대선은 탄핵 열풍에 휩쓸려 소득주도 성장이나 부동산 공약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미처 짚어보지도 못했다. 문재인 후보는 추가 질문을 받으면 “이미 설명드렸지 않습니까” “자세한 건 우리 정책본부장과 이야기하세요”라며 넘어갔다. 그 결과가 지금의 쓰라린 현실이다. 이번엔 그나마 대선 공약을 한 번 따져볼 여유라도 생겼다는 게 다행이다. 이제라도 후보 검증은 신상털기를 넘어 정책 공약에 제대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