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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용현의 한반도평화워치

어쩌다 ‘당나라 군대’라 불리게 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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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군대 

한반도평화워치

한반도평화워치

서기 755년 당나라는 ‘안사의 난’으로 근 10년간 초토화되었다. 이후 주변국의 침략·반란이 이어졌다. 심지어 소금장수였던 황소가 난을 일으켜 수도 장안을 점령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기도 했다. 결국 지방 절도사 주전충의 난으로 290년 만에 멸망했다. 이 과정에서 당나라 군대는 무능하고, 기강도 없고, 지휘 체계가 무너진 ‘오합지졸 군대’의 대명사가 되었다. 우리 군은 어떤가?

적이 없는 군대 되면서 정신무장과 기강 무너지고 #정치권의 인사 개입, 줄세우기로 군 지휘체계 와해돼 #주적 명시, 정치의 군 개입 막아 국민 안전 지켜야

최근 90%가 넘는 청해부대원이 코로나에 감염되면서 함정마저 버리고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피가래를 뱉으면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승조원이 속출했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국가가 우릴 버렸다.” 어느 부대원의 절규다. 청해부대는 건군 이래 최초로 해외에 파견된 전투 함정이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이역만리 아프리카 해역에서 해적으로부터 우리 상선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왔다. 이들을 국가가 버린 것이다. 얼마 전에는 나라를 지키다 적의 기습 공격에 46명의 전우를 잃은 천안함 생존 장병들을 ‘패잔병’ 운운하면서 그들 또한 버렸다.

장병 급식 문제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황금기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우리 장병들을 거지 취급했다. 코로나 초기 정부가 중국 유학생에게 보낸 고급 도시락과 비교되면서 자괴감마저 든다.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군대·군인들에게 국민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 달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군대 하극상 4배나 증가

경계 실패도 이어졌다. 2019년 6월 15일 북한 어선이 아무런 제재 없이 삼척항에 들어와 우리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군과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해상판 ‘노크 귀순’이 있었다. 진해·제주 해군기지, 수방사 방공부대의 경계가 뚫렸고, 태안 지역에 중국인 밀입국 사건이 세 번이나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최전방 월책 귀순, 올해 2월 동해안 헤엄 귀순에 이르기까지 20개월 동안 10번의 경계 실패가 이어졌다. 두 달에 한 번꼴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경계 실패 모두가 적 특수부대원이 아니라, 순수 민간인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군 여중사가 성추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사시 목숨 걸고 함께 싸워야 할 전우로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을 당했다. 기강 해이의 전형이다.

하극상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병사가 중대장(여군)을 야전삽으로 폭행하는 막장 하극상이 있었다. 그 직전에는 육군 부사관 4명이 술을 마시고 장교 숙소를 찾아가 상관을 집단 강제 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병대에서는 상병이 상관인 하사를 폭행해 실형이 선고됐다. 군내 하극상은 2015년 63건에서 2020년 242건으로 5년 사이 4배나 증가했다. 이러니 만나는 국민마다 “어쩌다 당나라 군대가 되었냐”고 묻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랑스러운 강군이었는데 왜 이런 말을 듣게 되었는가?

청와대 행정관이 참모총장 불러내

첫째, 적이 없는 군대가 되면서 정신 무장과 기강이 무너졌다. 현 정부 들어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군인에게 적은 사격할 때 표적과 같다. 사격할 때 표적이 없으면 어떨까? 사격을 못 하든지, 허공에 대충 쏘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적이 없는 군대는 표적·목표가 없으니 집중할 수 없고, 정신 무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훈련과 대비태세가 소홀해지면서 기강도 무너진다. 연속된 경계 실패의 근본 원인이 여기에 있다.

둘째, 정치권의 인사 개입, 자기편 줄 세우기로 군의 지휘체계가 와해하고 무능한 군대로 전락했다. 공정성·균형인사라는 미명 아래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한 기존 인사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특정 군, 특정 출신을 배제하고 진영 논리에 매몰된 편 가르기로 군대를 분열시켰다.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의 수장인 참모총장을 불러내 장군 인사를 논의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알려지면서 진급하려면 직속 상관에게 충성하느니 청와대 행정관 뒷다리라도 잡는 게 더 낫다는 말이 나돌았다. 오죽하면 적만 바라봐야 할 최전방 사단장이 철거한 GP 철조망으로 선물을 만들어 여당 국회의원에게 주었겠는가? 지휘체계가 무너진 무능한 군대가 될 수밖에 없다.

셋째, 국가 안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한민국 외교장관이 중국에 가서 ‘3불 선언’을 했다. 사드를 추가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사드 배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안전과 한·미 동맹 전력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권적 조치다. 현재 1개 포대가 배치되어 있지만, 남한 전역을 방어하려면 최소 3개 포대가 있어야 한다. 이를 안 하겠다면 우리 국민의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말인가?

또 9·19 군사합의는 허망한 평화를 내세워 대한민국을 무장 해제시킨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신뢰와 검증이 보장되지 않은 군사 합의가 성공한 예가 없을뿐더러, 오히려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불러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일 지소미아 파기는 반일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로 인해 한·일 관계는 물론, 한·미·일 군사협력 체계가 와해됐다. 한반도 전쟁 억지력에 치명적 우려가 제기됐다. 이렇듯 국가 안보를 진영·정치 논리로 접근하다 보니 국민의 군대가 아닌 정권의 군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지난 5년간 우리 군대는 ‘당나라 군대’라는 비아냥을 받고 있다. 하루빨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현장 지휘관의 권한·책임 보장해야

먼저, 우리 군에 ‘적’을 되돌려 줘야 한다. 그래야 적이 있는 실전적 훈련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집중력 발휘와 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군대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MZ 세대와 선진국 위상에 맞는 급식·피복·장비 등 병영 복지의 획기적 개선으로 사기를 뒷받침해야 한다.

둘째, 정치권의 군 인사 개입과 자기편 줄 세우기가 차단되어야 한다. 지휘 계통에 의한 인사 추천권과 장관·참모총장의 인사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지휘체계를 재확립하는 게 시급하다. 현장 지휘관의 선 조치·후 보고 등 권한과 책임을 보장함으로써 부대 지휘권도 확립해야 한다.

셋째, 정권 유지에 매몰된 정권 안보를 중단해야 한다. 매년 금은보화 조공을 갖다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백성의 어린 딸들을 공녀로 갖다 바치면서 왕권을 유지해 왔던 고려·조선 시대가 아니다. 정권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안전을 방치·희생시키는 정권 안보가 더는 지속하여서는 안 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안보의 주인은 국민이다. 오직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국가 안보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6·25전쟁 이후 우리는 자주국방의 기치 아래 강군 육성을 위해 절치부심해 왔다. 그 결과 70년 동안 북한의 무력 적화 통일을 억제·차단하고 평화를 지켜냄으로써, 세계 10대 경제 대국 성장을 뒷받침해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한군이 감히 도발하지 못하도록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도발 시에는 단호한 응징으로 우리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믿음직한 군대였다. 하루빨리 존중받는 군대, 군대다운 군대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강군에서 오합지졸로 전락한 당나라 군대

측천무후

측천무후

중국 역사상 최고의 강군이었던 당나라 군대가 몰락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핵심은 3가지다.

첫째, 당 태종·고종에 이어 측천무후(사진)가 등장하면서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엘리트 군부를 와해시켰다. 당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무천진 군벌, 일명 관롱집단 내에서 군의 인재를 충당해 왔다. 관롱집단은 문무를 겸비한 당나라 군대의 핵심축이었다. 측천무후는 관롱집단을 왕권 위협의 적폐 세력으로 몰아 와해시켰다. 군의 엘리트 집단이 약화되면서 당나라 군대는 삽시간에 무너졌다.

둘째, 정치 세력에 의한 군대의 정치화다. 측천무후가 등용한 문벌 귀족들의 무인 천대와 자기편 줄 세우기가 이어졌다. 능력·전문성이 아니라 권력과의 연줄과 뇌물 액수가 군대의 진급과 보직을 결정했다. 재상이었던 희대의 간신 이임보는 자신과 경쟁이 될 만한 군의 인재는 모두 좌천시키고, 자기 ‘애완견들’을 중용했다.

무능한 간부들이 속출했고 직속 상관보다 권력에 줄을 대면서 지휘 체계도 무너졌다. 심지어 변방을 지키는 절도사(사령관)에 이민족 출신 무관을 등용함으로써 자기 권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의 싹을 잘랐다.

셋째,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군대가 되었다. 귀족들의 병역 기피가 늘어나고 부병제(징병제)가 무너지면서 모병제 전환으로 군대의 질이 급락했다. 이민족 용병과 강도·폭행 등 전과자가 군대에 몰려들면서 충성심은 없고, 주민 약탈에 앞장섰다. 무인들이 천시되고 왕실 조정은 군대를 방치하면서 버려진 군대가 되고 말았다. 나라를 지키는데 그 누구도 희생하지 않았다. 결국 군대는 오합지졸로 변했고, 당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가가 군대를 버린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