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 읽기

K-방역에서 궁금한 것들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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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흔히들 한국어는 표기와 발음이 일치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버스’ ‘돈가스’라고 쓰지만 소리 내어 발음할 때에는 다들 ‘뻐스’ ‘돈까스’라고 말한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그런 불일치를 의식하지도 못한다.

만원 지하철은 어떻게 괜찮나
왜 수천만 명에게 용돈을 주나
‘짧고 굵게’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러다 어떤 특정한 단어에 이르러 불쑥 위화감을 느끼고 만다. 왜 ‘짜장면’이라고 말하는 음식을 ‘자장면’이라고 쓰라고 하는 거냐, 하고. 그럴 때 국립국어원 같은 기관은 동네북이 된다. 결국 짜장면은 복수 표준어가 됐지만.

나도 자장면이 뭐냐, 짜장면이지, 하고 불만을 터뜨리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설명을 접하고 불만의 수위는 상당히 낮아졌다. 외래어 표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그 원칙들이 ‘짜장면’에서 서로 충돌했다. 국립국어원은 그 상황에서 자신들이 어떤 가치를 우선하는지 충실히 해명했고,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 결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전염병 대응에도 여러 원칙이 있으며, 그 원칙들은 많은 지점에서 첨예하게 맞부딪힌다. ‘값싸고 질 좋은 물건’처럼, ‘철저하되 편안한 방역’도 애초에 무리한 요구이리라. 당국의 고충을 십분 이해한다. 헬스장에서 틀 수 있는 노래의 박자 같은 지침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따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로감이 쌓이면서 스멀스멀 위화감이 올라온다. 이제 나는 아래 의문들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싶다. 제대로 된 설명을 들으면 좀 더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원칙을, 철학을 듣고 싶다. 이유를 이해하면 언뜻 부조리해 보이는 정책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첫째, 지하철은 아침저녁으로 미어져 나가는데 왜 택시 승객 수는 규제하는가. 그리고 이용자들이 띄엄띄엄 앉아 모니터를 쳐다보는 PC방이 왜 식당보다 더 세게 철퇴를 맞는가. 혹시 지하철과 식당은 손대기 부담스럽고 택시와 PC방은 만만해서인 건 아닌가. 방역 수칙이 대상에 따라 강약이 달라진다고 느끼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가.

둘째, 왜 수천만 명에게 25만 원을 주는 건가. 25만 명에게 수천만 원을 줘야 하지 않나. 지금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쓰면 코로나 사태 피해 업종이 아니라 수혜 업종으로 돈이 더 흘러가는 거 아닌가. 피해 업종을 파악하는 게 어렵나? 2년 전 납세 실적으로 금방 알 수 있지 않나. 나라가 장사를 막은 노래방과 유흥주점 주인들에게는 미안하지도 않은가.

셋째, 이 상황을 왜 ‘짧고 굵게’ 해결해야 하는가. 버티기 힘들어 뵈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데, 짧고 굵게 마치려다 사회 어느 구석이 부러지거나 부서지는 건 아닌가.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차라리 낫지 않나. 혹시 다른 사안은 보지 못한 채 오로지 ‘확진자 수를 줄여야 한다’는 도그마에 갇힌 건 아닌가.

전염병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의 고통을 넘기기 쉽고, 경제 전문가들은 환자와 의료진의 고통을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 모른다. 양쪽의 고통 모두 엄연한 실존이기에, 총체적 고통을 고민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새로 생긴 방역기획관이 그런 자리인 줄 알았는데 그냥 연락관이라고 한다. 그러면 ‘짧고 굵게’는 무엇을 근거로 어디서 낸 전략인가.

지난해 한국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이 3079명이다. 그 하나하나가 가슴 아픈 비극이었다. 이 죽음들을 막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동차 운행을 금지하면 된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주장을 펼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치러야 할 사회적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비정한 산수라고 욕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고통의 철학이라고 부르련다. 지난해 한국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숨진 사람은 917명이다. 교통사고와 달리 바이러스는 전파된다. 더 위험하다. 그러나 그걸 어느 선에서 막을 것인가에 대한 엄혹한 고민은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기쁨의 철학도 필요하다. 때로 그것은 위생적으로 완전무결한 상태를 의미하진 않는다. 한때 방역 당국이 결혼식에 친족만 49명까지 참석할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세상에 친구 없이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만원 지하철이 어쩔 수 없다면, 결혼식장에 대해서도 보다 관대해져야 하지 않을까.

확진자가 매일 수만 명씩 나오는 영국에서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유럽축구선수권대회를 관람했다. 그게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삶에 결혼식 피로연과 축구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컨트롤 타워가 어떤 고통과 기쁨의 철학을 지니고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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