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벽화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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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아빠, 여기 봐요. 소가 있어요.” 1879년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 8세 소녀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딸 마리아의 말에 고개를 든 마르셀리노 산스 데 사우투올라는 동굴 벽면과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들소와 사슴 등 다양한 동물들의 그림을 목격했다. 2만5000년 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인류 최초의 벽화 중 하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벽에 그린 그림, 즉 벽화는 태생적으로 다중을 대상으로 하는 메시지 전달 매개체라는 점에서 스케치북이나 캔버스 속의 사적 예술품과 차원을 달리한다. 현생 인류의 먼 조상들이 그린 알타미라나 프랑스 쇼뱅 등의 동굴벽화들은 동물숭배, 풍요 기원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종교와 계급의 생성 이후 벽화는 한층 거대해지고 화려해졌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등 기독교 경전에 기반을 둔 걸작들이 서양의 성당과 벽을 수놓았다. 700년간의 지역 군주 면면을 무려 102m짜리 벽에 새겨넣은 독일 드레스덴의 ‘군주의 행렬’ 벽화는 지배층의 위세를 과시한 상징적 대작이다. 동양에서도 둔황 막고굴의 천불동(千佛洞)을 아름답게 채색한 불화들, 불교와 도교, 또는 미지의 사후 세계에 대한 선망을 생생하게 표현한 고구려 고분벽화 같은 걸작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탈종교, 탈계급 사회가 도래하면서 벽화는 한층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1920년대 멕시코 벽화운동이나 쿠바의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체 게바라의 모습은 선전·선동 수단으로서의 벽화를 대변한다. 불량 청소년들의 낙서 정도로 취급받던 미국의 그라피티(Graffiti)는 장 미셸 바스티아와 키스 해링의 등장 이후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면서 예술 영역으로 편입됐다. 도시 재생에 벽화가 유용하게 사용된 경우도 늘고 있다.

하지만 대가(大家)에게는 수만 년의 발전상이 눈에 차지 않았나 보다. 파블로 피카소는 “알타미라 이후의 모든 예술은 퇴보”라고 일갈했다. 적어도 2021년 여름 서울 중심부에 등장한 이른바 ‘쥴리 벽화’에는 적용할 수 있는 발언인 듯하다. 그 조악한, 인권침해와 명예훼손의 결정체를 벽화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별론(別論)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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