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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 예술 톡

퀴어와 미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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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라거 갤러리 대표

홍콩에서 발행하는 미술 잡지의 에디터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국 퀴어 미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를 칭하는 LGBT의 동의어인 퀴어(queer)와 관련된 미술 창작 활동을 지칭해왔던 퀴어 미술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성 소수자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예술을 퀴어 미술이라 해야 할지, 작가의 아이덴티티와는 상관없이 성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룬 미술로 이야기해야 할지 혼동스럽다는 나의 말에 홍콩의 에디터는 동의한다.

나는 유럽의 미술계에서 20년 가까이 경력을 쌓으며 수많은 작가들을 만나왔지만, 이들의 성 정체성과 이들이 창작하는 예술의 관계를 ‘퀴어’의 범주 안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간혹 퀴어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이 확연히 드러난다 할지라도 이들의 작품은 결국 여타 다른 작가들의 창작물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라는 보다 넓은 범주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1972). 수영하는 자신과 11살 연하의 동성 연인을 그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1972). 수영하는 자신과 11살 연하의 동성 연인을 그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나는 홍콩 에디터의 질문을 계기로 내가 19세기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성 소수자들의 인권을 획득하기 위해 수많은 투쟁을 거쳐 가치관의 변화를 끌어낸 유럽이라는 토양에서 살아왔기에 퀴어 예술가들을 대하는 마음이 보다 열려 있음을 깨달았다.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의 가치를 최우선시하고 타인과 다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서양 문화에서 퀴어에 대한 인식은 혈연 중심 문화와 유교·기독교 등의 종교적인 가치관이 더해진 한국 상황과는 상이하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성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는 나라에 따라서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과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 분야에서의 진보는 소프트하지만 강한 영향력을 만들어왔다.

예술가들은 때로는 매우 확고한 표현 방식으로, 때로는 복잡한 상징과 은유로써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노력하였다. 2017년 영국을 대표하는 테이트 미술관에서는 ‘퀴어 브리티시 아트 1867~1967’라는 제목의 전시로 시각 예술로서 젠더에 대한 질문들을 이슈화했던 퀴어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퀴어’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운 이 전시 제목은 영국의 영화 감독 데렉 자르멘이 “퀴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자유를 의미한다” 라고 말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전시에서 관람객들은 19세기를 대표하는 존 싱어 서전트 (1856년생)와 20세기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 (1937년생) 등의 작품을 통해 각 작가들이 살았던 사회와 시대의 가치관의 변화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퀴어 미술을 말하기 전에 퀴어와 이들의 자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은 어디쯤 왔을까 먼저 곰곰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