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메달 따도 일본에 졌다고 “배신자”…애국주의 지나친 중국 소분홍 세대

중앙일보

입력 2021.08.04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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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가 팀을 망쳤다. 모두에게 미안하다.”

탁구 선수 “팀 망쳐 미안” 사과까지
IOC “비방·악플 법적 대응 검토”

지난달 26일 도쿄 올림픽 탁구 혼합복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중국의 류시원(30) 선수가 시상식 뒤 밝힌 소감이다. 그는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에 머문 것을 자책하며 눈물로 사과까지 했다. 특히 일본팀에 진 것을 두고 중국의 일부 네티즌은 “국가에 먹칠을 했다” “배신자”라는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일 BBC방송은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중국 선수들이 그 어느 때보다 우승 압박을 크게 받고 있다”며 중국을 휩쓰는 ‘과잉 애국주의’를 조명했다. 이에 따르면 일부 중국 네티즌은 금메달을 놓친 자국 선수를 ‘반애국자’로 몰며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 탁구 혼합복식에서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일본 미즈타니 준 선수에게도 “죽어라” “꺼져버려” 등의 악플을 쏟아냈다.

문제는 승패만이 아니다.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에 출전한 양첸(21)은 금메달을 따고도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불매운동 중인 나이키 제품의 사진을 SNS에 올린 일이 다시 문제가 됐다. 나이키는 중국 인권 탄압을 문제 삼아 신장위구르산 면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네티즌들은 “중국을 대표하는 운동선수로서 나이키 불매운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그에게 훈계했다.

대만과의 결승에서 패해 은메달을 딴 배드민턴 남자 복식팀, 사격 여자 10m 공기소총에서 결선에 오르지 못한 왕루야오(23)도 공격 대상이 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선수에 대한 비방·악플 사례에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메달 순위 (3일 오후 10시 기준)

메달 순위 (3일 오후 10시 기준)

BBC는 “민족주의 열풍이 중국을 휩쓸면서 올림픽 메달은 영광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며 “이런 분노의 중심에 ‘소분홍(小粉紅·Little Pink) 세대’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분홍 세대는 중화 애국주의 교육을 받은 2030세대의 과잉 민족주의자를 가리킨다. 고학력자가 많고 한류에도 익숙한 이들은 국가와 민족에 과도한 팬덤 성향을 보인다.

네덜란드 라이덴대 아시아센터의 플로리안 슈나이더 소장은 “그들에게 올림픽 메달 순위는 국가의 자존심이자 실시간 국가 순위”라고 말했다.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메달을 놓치는 건 ‘반역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의 조너선 하시드 박사는 “민족주의 정서 악용은 호랑이 등에 오르는 것과 같다”며 “통제도, 내리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중화 패권을 위해 애국주의를 이용했지만, 분노가 커지면 오히려 통제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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