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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언론사징벌법 25일 처리? 악몽이다

중앙일보

입력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여당 25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일방처리 예고 #내년 대선 비판적 보도 줄고 정파적 보도 늘어나는 악영향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중인 KBS노동조합의 허성권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1.8.2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쟁점 조항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투쟁 릴레이 시위 중인 KBS노동조합의 허성권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1.8.2 임현동 기자

1.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진짜로 본회의장에서 통과될 모양입니다. 박완주 민주당정책위의장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8월25일 본회의에서 국회법에 따라..필요하면 다수결 원칙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정안은 지난달 27일 법안소위를 통과했습니다. 해당 상임위(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16명 가운데 8명이 민주당이고, 1명이 청와대 대변인 출신 김의겸 열린민주당의원이기에 과반찬성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25일 본회의 역시 민주당이 과반이상이기에 국회법상 다수결 처리에 문제 없습니다.

2. 설마 했는데..진짜로 처리하려나 봅니다. 밀어붙이는 모양새를 보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한마디로 정치입법입니다. 여권에선 ‘언론개혁법’이라 하고 야권에선 ‘언론재갈법’이라고 부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완전히 해석이 다릅니다. 언론계에선 흔히 ‘언론사징벌법’이라 부릅니다.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배상을 언론사에 강요한다는 점에서..

3. 언론계 반발은 상당합니다.
지난 27일 법안소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었을 때 거의 모든 언론단체가 반대성명을 냈습니다. 신문사 발행인(오너와 사장) 모임인 한국신문협회가 반대한 건 당연합니다. 기자모임인 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진보성향 전국언론노조, 중진기자모임 관훈클럽까지 반대했습니다. 특히 가장 오래된 기자모임으로, 제한된 중견기자만의 회원제 클럽으로 운영되는 관훈클럽이 공식성명을 낸 것은 1957년 창립이후 처음이랍니다.

4. 언론인들의 집단이기주의라고 몰아붙일 사안이 아닙니다. 법안 자체가 너무 무리입니다.
첫째, 이미 가짜뉴스 등에 대한 언론사의 책임을 묻는 여러가지 법이 있습니다. 기존의 법이 부족하다면..공론화를 통해 고치면 됩니다. 대선 앞두고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건 너무 정파적입니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허위 보도’가 너무 애매하고 광범합니다. 누구나 자신에 불리한 보도는 ‘허위’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하면..소송이 남발되고 보도는 위축됩니다.
셋째, 과실이나 고의에 대한 입증책임을 언론사에 요구한 것은 민사법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손해배상 입증책임은 청구권자에게 있습니다. 언론은 강제수사권한이 없습니다. 명백한 증거를 내놓기보다 먼저 의혹을 제기합니다. 특히 정치적인 경우..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견제합니다.
넷째, 언론사가 기자 개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건..기자 입장에서 악몽입니다. 징벌적 배상이라 수억원에 이를 수 있는데..현장취재기자가 부담할 가능성이 있다면..당연히 그런 취재는 꺼려할 겁니다.

5. 그간의 과정도 납득이 안됩니다. 처음엔 ‘유투버나 1인 미디어 등 무책임한 가짜뉴스 남발을 막는 취지’라고 했습니다. 기존의 언론사들은 대상이 아닌듯이.그러다가 마지막에 뒤집어졌습니다. 유투버 등은 빠지고 기존 신문방송사와 인터넷언론사가 적용대상이 됐습니다.
그리곤 9월 정기국회부터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자리를 야당에게 넘기기로 합의하면서 부랴부랴 입법을 서둘렀습니다. 속 보입니다.

6. 그 과정에서 여당의 뻔한 거짓말도 드러났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27일 법안소위 속기록이 1일 야당에 의해 공개됐습니다.
여당에선 ‘충분히 협의했다’고 했는데..주요대목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전문위원들이 이견을 보였음이 확인됐습니다. 언론에 징벌을 적용하는 사례가 선진국가엔 없다, 기존의 법에 따른 형사처벌(명예훼손)이 가능하기에 징벌배상은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 언론기능을 제약할 수 있다..등등 반론이 나왔지만..모두 무시당했습니다.

7. 정말로 25일 법안이 통과된다면..당장 내년 대선이 걱정됩니다.
여권의 유력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일 ‘징벌적 손해배상 5배도 약하다. 언론사를 망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은 얼마전‘백제 발언’과 관련해 시사주간지 기자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악의적인 가짜뉴스라는 이유입니다.

8. 대선이 가까워지면 이런 일들이 더 잦아질 겁니다. 만약 언론사징벌법이 현실화된다면 언론사와 기자들은 심각하게 위축될 겁니다. 반대로 유투버와 1인 미디어들은 활개치겠죠. 정파성은 더 강해질 겁니다.
아무리 미디어환경이 급변하고 있다지만..기존 언론사들의 손발을 묶어버린다면..결국 ‘사이버 레커’(Cyber Wrecker)들의 요란한 질주만 남을 수 있습니다. 여당은 징벌법을 25일 일방처리하기보다 공론화 과정을 더 거치길 바랍니다.
〈칼럼니스트〉
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