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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할머니와 29세 간호사 '방호복 화투'…끝내 코로나 이겼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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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삼육서울병원의 이수련(29) 간호사는 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쑥스러운 듯 “당연한 일인데, 기사가 나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는 최근 화제가 된 ‘방호복 차림의 화투 사진’ 속 주인공이다.

삼육서울병원 이수련 간호사 인터뷰

사진에는 전신 방호복에 마스크, 고글, 장갑 등을 착용한 의료진과 맞은 편에서 돋보기 안경을 쓰고 화투패를 고르는 백발 할머니가 등장한다.

대한간호협회 주최 '코로나19 현장스토리 2차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90대 할머니과 화투를 활용한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간호협회 제공 [출처: 중앙일보] '방호복 화투 사진' 주인공은 7년차 간호사 "할머니 기운 차리게 하려고"

대한간호협회 주최 '코로나19 현장스토리 2차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90대 할머니과 화투를 활용한 그림 맞추기 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간호협회 제공 [출처: 중앙일보] '방호복 화투 사진' 주인공은 7년차 간호사 "할머니 기운 차리게 하려고"

이 사진은 1년 전인 지난해 8월 1일 삼육서울병원 음압병상에서 찍힌 것이다. 고령의 환자는 당시 요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돼 이 병원으로 이송된 93세 박모 할머니다. 고열이 있었고 기운이 뚝 떨어진 상태로 옮겨져 병동 의료진 모두 우려가 컸다고 한다. 이수련 간호사는 통화에서 “고열에 폐렴 기가 있었다”며 “워낙 고령이라, 갑자기 할머니 상태가 악화될까봐 걱정이 컸다”고 전했다. 할머니가 떨어질까봐 또 침대를 꺼려 바닥에 매트리스와 이불을 깔고 지내게 도왔다. 중증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내가 왜 여기 있느냐”고 반복해 물을 때마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알렸지만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웠다고도 말했다.

격리 병실에서 오랜 시간을 적적하고 힘들게 보낼 할머니가 걱정돼 10여명의 간호사가 머리를 맞댔다. 그때 재활 병동에서 파견 나온 양소연(33) 간호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치매 환자를 돌본 경험이 많은 양 간호사는 화투를 이용한 꽃 그림 맞추기와 그림 도안 색칠하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양 간호사는 “치매에 보호자도 없이 홀로 병실에 계시는 게 위험해 보였다”며 “입원 이튿날부터 놀이 시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수련 간호사는 “격리 병상에서 환자가 말을 나눌 사람은 간호사밖에 없지 않느냐”며 “낮에 졸면 밤에 못 주무실까 염려돼 할머니를 깨우고 달래 기운을 차리게 하는 방법이 없을지 궁리한 결과였다”라고 회상했다. 할머니의 식사를 챙기고, 기저귀를 가는 것처럼 그림 치료도 빼놓지 않는 일과로 꼬박 이어갔다. 할머니는 그림 그리기 내내 졸기도 했지만, 간호사들은 그림 치료를 멈추지 않았다. 방호복을 입고 병실에 들어가면 할머니 식사를 챙기고 기저귀를 갈고 놀이 하기까지 1시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두꺼운 방호복 차림에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이 간호사는 “이미 방호복에 익숙해졌던 시기라 오래 입어도 부담이 크지 않았다”며 “해드릴 건 다하고 나오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는 “감염될까 두렵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환자들이 안심하게 배려하고 또 잘 치료받아 퇴원하도록 돌봐주는 것밖에 없다”라고도 했다.

가족들을 볼 때면 기운이 솟는 할머니를 위해 영상통화를 종종 주선했다. 할머니는 딸과 손녀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했다. “곧 퇴원하니 기운 차리고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가족의 위로와 의료진 간호에 할머니는 빠르게 기운을 차려갔다. 증상이 호전된 할머니는 입원 보름 만에 ‘음성’ 판정을 받고 병원 문을 나섰다. 이 간호사는 “입원 환자 중 3명이 숨졌다.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유리창 너머로 가족들과 이별하는 광경이 코로나 병동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순간이었다”며 “할머니가 잘 치료받고 무사히 퇴원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당시 음압병동 다른 간호사가 유리창 너머로 찍은 것으로, 올해 대한간호협회가 공모한 ‘제2차 간호사 현장 수기·사진전’에 출품됐다고 한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지난 4~7월 출품작을 신청받았고 현재 심사 중”이라며 “병원내 게시판에 올려진 걸 누군가 공유하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트위터에서 1만명 이상이 공유했다. 사진을 공유한 이들은 “안쓰럽고 고맙고 의료진들 모두 잘 버텨줘 감사하다” “앉아있을 시간도 없을뿐더러 바람이 안 통해 땀이 줄줄 흐르고 어지러울 텐데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한 네티즌은 “방호복을 갈아입고 화장실에 갈 시간이 없어 물을 아예 안 마신다는 현실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노력과 엄청난 배려”라고 썼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2일 이 사진을 공유해 “방호복을 입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고요히 할머니를 응시하는 의료진의 모습에 경외심을 느낀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은 ‘돌봄과 연대’인 것 같다”고 적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두터운 방호복을 입고 숨쉬기 힘들고 땀이 비 오듯 하는데도 환자를 정성껏 위로하고 돌보는 광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호사의 모습”이라며 “코로나에 지친 모든 국민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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