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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임신했는데, 불에 집 다 타고…" 몽골가족 잔인한 여름

중앙일보

입력

텔뭉(가운데)씨가 이준모 목사(왼쪽)에게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텔뭉(가운데)씨가 이준모 목사(왼쪽)에게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집에 불이…아이 엄마가 임신했는데…갈 데가 없데요.”

지난달 28일 이준모 목사는 한국외국인노동센터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센터 직원은 화재로 집을 잃은 몽골인 가족의 사정을 전하며 이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인천에서 사회적기업인 계양구 재활용센터를 꾸려온 이 목사는 최근 비슷한 상황에 부닥친 다른 몽골인 가족을 구조한 적 있었다. 센터에서 이를 기억하고 SOS 신호를 보낸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이 목사가 “한번 만나보겠다”고 하자 센터 직원은 그제야 안도했다고 한다.

풍운의 꿈 품고 한국 온 몽골인 부부

텔뭉 가족이 살던 인천 남동구의 가정집은 뜻밖의 화재로 모든 집기류가 소실됐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텔뭉 가족이 살던 인천 남동구의 가정집은 뜻밖의 화재로 모든 집기류가 소실됐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이 목사가 몽골인 텔뭉(33)씨 가족을 만나 전해 들은 사정은 이랬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살던 텔뭉 부부는 지난 2016년 한국 땅을 밟았다. 몇 차례 한국에 다녀간 경험이 있던 남편이 한국행을 제안했고, 사회복지사를 꿈꾸던 부인 소소르바람(32)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남편이 일자리를 구해 부인의 대학원 생활을 지원하는 게 부부의 계획이었다.

비전문 취업(E9) 비자인 남편은 경북 경주의 지게차 조립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유학생 비자(D2)인 부인은 대학원 진학을 위해 어학원에 들어갔다. 이후 부인이 수도권 한 대학원에 합격하고 남편이 인천 남동공단에서 새 일자리를 구하면서 부부는 인천 남동구에 둥지를 틀었다. 둘째 아이까지 태어나는 겹경사에 부부가 웃는 날이 늘었다고 한다.

코로나19와 화마가 앗아간 일상

 지난달 24일 단란했던 가정에 불행이 닥쳤다. 몽골에 있던 남편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랐던 텔뭉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고 한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심한 터라 이국의 손자는 고국으로 가지 못했다. 대신 집에서 촛불을 켰다. “할머니의 넋이라도 기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양초를 많이 켜둔 게 화근이었다. 지난달 25일 밤 양초에서 불이 시작됐고 순식간에 온 집안으로 번졌다. 불은 온갖 집기류를 태우고 옆집까지 덮친 뒤에야 잡혔다. 연이은 악재에 텔뭉 가족은 하루아침에 ‘일상’을 잃었다.

 텔뭉 가족이 살던 인천 남동구의 가정집은 뜻밖의 화재로 모든 집기류가 소실됐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텔뭉 가족이 살던 인천 남동구의 가정집은 뜻밖의 화재로 모든 집기류가 소실됐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이준모 목사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인천 계양구에 임시거처를 구했지만 텔뭉가족은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했다. 살림을 모든 잃은 상황에서 화재로 이웃집이 입은 피해를 보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상액은 약 1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모 목사는 “소소르바람이 현재 셋째를 임신 중이라 더 걱정”이라면서 “부부의 비자 만료일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전까지 보금자리, 보상 등 문제가 해결되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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