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발언 땐 캐나다 2년 징역 처벌도…한국은 '무법 지대'

중앙일보

입력 2021.08.03 05:00

업데이트 2021.08.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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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코로나19 혐오범죄법'에 서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관련한 인종차별적 언어 사용을 줄이기 위한 법안이다. 미국 애틀랜타의 한 마사지숍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6명이 백인 남성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지 2개월 만이었다.
#2. 스코틀랜드 의회는 지난 4월 '혐오범죄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 3월 극우 단체가 '무슬림 처벌의 날'(Punish A Muslim) 전단을 돌린 걸 계기로 의회가 직접 나선 법안이다. 당시 전단에는 여성의 히잡을 잡아당기면 25점, 모스크에 불을 내면 1000점을 획득할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지난 3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벌어진 시위. 시위 참가자들은 아시아계 미국인과 태평양 섬 주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1일(현지 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벌어진 시위. 시위 참가자들은 아시아계 미국인과 태평양 섬 주민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를 멈추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혐오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난민 유입 증가, 코로나19 팬더믹 등은 전 세계적 혐오를 부추긴다. 세계 각국은 갈수록 독해지는 혐오 표현, 이를 넘어선 혐오 범죄와 맞닥뜨리고 있다. 유럽, 북미 등에선 아시아계를 향한 무차별 폭력이 꾸준히 이어진다. 그러자 선진국들은 속속 차별과 증오를 막기 위한 구체적 행동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게 '반(反) 혐오' 법안이다.

<‘혐오 팬데믹’ 한국을 삼키다> 5회
"침묵은 공범" 처벌 강화 나선다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혐오방지법

혐오 범죄 늘수록 법은 세진다

원래 반 혐오 법안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유럽 대부분 국가는 세계인권선언을 바탕으로 한 혐오표현 금지 법안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가입조건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캐나다·뉴질랜드·일본 등도 차별적인 증오 발언을 금지하는 별도 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혐오방지법'은 인종·성별·종교 등에 대한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게 공통된 골자다.

해외주요국 혐오 방지 방안.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해외주요국 혐오 방지 방안.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극단적 범죄가 이어지면서 법의 수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보호 대상을 대폭 넓히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식이다. 지난 3월 아시아계 마사지숍 총격을 겪은 미국 의회는 '코로나19 혐오범죄법' 제정에 나섰다. 코로나19 유행 후 아시아계 노약자를 겨냥한 '묻지마 폭행'이 끊이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수정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지만, 364 대 62(하원 표결)의 압도적 찬성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에 서명한 바이든 대통령은 "(혐오 표현에 대한) 침묵은 공범"이라고 강조했다.

뉴질랜드는 2019년 백인 우월주의자의 테러로 51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그러자 지난 6월 증오발언법의 징역(3개월→3년), 벌금(7000뉴질랜드달러→5만 뉴질랜드달러) 규정을 상향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호 대상엔 트랜스젠더 등을 추가하기로 했다.

캐나다 역시 혐오 표현과 혐오 범죄에 대한 새로운 법안을 지난 6월 발의했다. 그리고 형법상 '증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규정을 추가할 계획이다. 모두 실질적으로 혐오를 막기 위한 노력이다.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1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 '지금당장'에서 청년진보당, 진보당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제11차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목요행동 '지금당장'에서 청년진보당, 진보당 인권위원회 관계자들이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독일, 가장 강한 혐오금지법 시행

현재 법으로 혐오 표현을 가장 폭넓게 규제하는 국가는 어딜까. 캐나다에선 고의성 있는 혐오 표현을 쓴 사람은 징역 2년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 최초의 차별금지법으로 꼽히는 캐나다 인권법은 결혼 여부, 전과, 성적 지향, 고용 형태 등 차별 행위를 폭넓게 보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홀로코스트' 경험이 있는 독일도 사실상 대부분의 혐오 표현을 법으로 금지한다. 특히 인종적·신체적·정신적 특성에 근거한 모욕죄까지 적용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반면 일본에선 법적 강제성이 없어 실질적 예방 효과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 정부 차원서 2016년 차별금지법이 제정됐지만 처벌 규정이 없다. 2019년 가나가와현(神奈川県) 가와사키시(川崎市)가 최대 50만엔(약 507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했을 뿐이다. 지난 5월 성소수자를 법상 보호 대상에 넣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일본 혐한시위에서 항의 발언하는 재일교포 3세 최강이자(48)씨. 지난해 최씨는 일본 도쿄변호사회로부터 사회인권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일본 혐한시위에서 항의 발언하는 재일교포 3세 최강이자(48)씨. 지난해 최씨는 일본 도쿄변호사회로부터 사회인권상을 받았다. 연합뉴스

한국의 반 혐오 논의는 상대적으로 크게 뒤처져있다. 혐오 표현, 혐오 범죄를 딱 집어 막을 법도 없다. 이 때문에 외국 사례를 참고해 서둘러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대안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여러 선진국에서 차별금지법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막고 있지만 한국은 없다"며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으로 혐오 규제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찬성 변호사(포항공대 인권자문)는 "타인의 생명과 안전, 재산 침해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는 혐오 표현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과 상충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혐오표현으로 볼지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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