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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상현의 이코노믹스

성과 추구하는 경영자라면 여성인재로 눈 돌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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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인력 다양성과 여성인재 활용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차기 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차기 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

‘자기만의 방’과 ‘돈’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과 픽션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꼽은 두 가지다. 이듬해인 1929년에 낸 책 제목도 『자기만의 방』이다. 자신만의 전문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독립된 물리적·시간적·정신적 공간과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성별을 넘어 당연하지만 한 세기 전에는 이례적인 주장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여성에 고용 기회 #고객 니즈 분석 등 높은 감수성 요구 #한국 진출 다국적기업들 여성 주목 #국내기업서 놓친 인재 뽑아 성과 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여성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경제력’을 가질 가능성이 남성보다 낮다. 하루 24시간 중 여성이 쓰는 가사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길다. 여성의 수입과 경제적 지위 역시 남성과 격차가 크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올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지수는 68%다. 이 지표는 정치적 권력, 경제적 참여와 기회, 교육기회와 건강 등으로 구성되며, 이 같은 성 격차가 사라지려면 135.6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여성고용 현황은 여성에게 주어진 방의 실상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상급관리자 비율은 2020년에 29%를 보였다(캐털리스트, 2021). 여성관리자의 일은 행정과 같은 지원업무에 주로 분포한다. 최고경영자나 관리자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인 경영관리와 운영, 손익과 관련된 영업·마케팅·연구개발 분야에는 적게 분포하고 있다. 상위 직책으로 갈수록 여성이 적어지는 리더십 파이프라인의 누수 현상도 심각하다. 아시아에서는 인도·한국·일본이 가장 낮은 여성고용 지표를 보인다.

여성 관리자·임원 비율, 모두 한 자릿수

이코노믹스 8/3

이코노믹스 8/3

한국의 경우 상장기업 여성 관리자와 임원 비율은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친다. 전망 좋은 고층으로 갈수록 여성의 방은 드물어지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서구 국가보다 늦었지만 2006년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를 도입한 이래 여성 관리자 비율이 10%에서 20% 수준으로 2배 향상됐다. 하지만 여성의 사회진출 본격화가 오래되지 않은 점, 연공서열적 인사 관행과 남성중심 기업문화, 여성들의 전공 분포 등을 고려할 때 가시적 개선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기업은 경제적 이익이 있어야 기민하게 움직인다. 여성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데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여성고용이 기업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기회를 부여하고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매우 중요 과제이지만,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현실적 동기가 필요하다. 당장 내년 8월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상장기업은 특정 성(性)만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수 없다. 여성 활용 확대가 기업에 이익이 된다면 기업은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다. 법도 준수하고 기업에도 이익이 되는 일거양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외국계, 여성인재 뽑아 ‘코리아 프리미엄’

최근 기업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는 단서가 될 연구가 나왔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국내기업에서 고용되지 못한 능력 있는 여성 관리자를 적극적으로 고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실증연구다. 한국의 남성 선호 문화와 여성차별로 인해 특히 중견 여성 관리자가 노동시장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여성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더 많이 도입하고 고용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세계적인 학술지에 보고됐다(Administrative Science Quarterly, 2019). 국내 기업이 남성 위주의 기업경영을 하고 있을 때 노동시장에서 차별받고 있는 여성을 보다 많이 고용해 경영에 활용함으로써 초과이익을 내는 ‘코리아 프리미엄’을 외자계 기업이 누리고 있다.

여성고용 확대에 대해 성차별 철폐라는 규범으로만 접근할 경우, 기업은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거나 면피성 겉치레만 하고 실제로는 회피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향이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여성 임원을 앞세워 기업 이미지 홍보에 활용하는, 포장만 여성친화 기업이 되는 것이다. 기업이 진정성을 갖고 여성고용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여성고용과 실제 기업성과 간에 긍정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현실적 동기가 될 것이다. 이 연구는 그 증거를 보여준다.

데이터 업무 많아 여성의 역할 공간 확대

여성고용, 통념에 대한 질문과 진실

여성고용, 통념에 대한 질문과 진실

나아가 살펴봐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산업의 큰 흐름이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기 시대에는 일의 대상이 ‘데이터’인 경우가 많아진다. 데이터 사이언스와 분석 능력이 주목받는 이유다. 농업혁명·산업혁명·정보혁명을 거치면서 경제활동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보다 많이 활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근력보다는 기계장치와 자동화 설비, 로봇의 활용이 많아지고 있다.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근력이 약한 여성이 경제활동에서 남성과 대등해질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이 개선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시장의 변화다. 고객의 니즈는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시장은 세분되고 있다. 인간의 감정을 읽어내고 정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주도면밀하게 시장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파악하는 고도의 능력이 요구한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는 여성에게 더 큰 기회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건설업은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문화와 노동을 요구하는 산업이지만, 최근 고도의 감수성을 요구하는 설계와 디자인에서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스템’ 분야에선 뽑고 싶어도 여성 드물어

한국 여성들의 전반적 고등교육 수준은 이미 남성을 앞질렀지만, 기업이 요구하는 과학·기술·엔지니어링·수학과 같은 소위 스템(STEM) 분야는 여성 전공자가 적다. 이들 분야에 여성 전공자들이 많아야 기업이 ‘뽑고 싶어도 뽑을 수 없는 상황’이 개선된다. 산업 변화에 맞는 좋은 일자리 기회를 보다 많이 갖기 위해서는 여성의 이공계 진출이 확대돼야 한다.

시장질서의 원칙을 벗어난 효율적 경영은 어렵다. 『차별의 경제학』으로 유명한 게리 베커 교수는 노동시장에서 능력과 관계없는 차별을 하는 기업은 스스로 비싼 비용을 지불하거나 경쟁에서 도태됨으로써 시장이 균형을 이룬다고 했다. 능력과 일할 의욕이 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기업은 인적자본 손실을 본다. 기업의 리더는 고용상 차별을 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성과를 추구하는 경영자라면 여성인재의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력 다양성, 페널티인가 보너스인가

다양성은 기업에 페널티가 되기도 하고 보너스가 되기도 한다. 차별 해소와 공정성 확보는 기업이 해야 할 올바르고 가치 있는 활동이라는 규범으로만 접근할 경우 다양성은 기업에 피로감을 불러오는 페널티가 되기 쉽다.

반면, 다양성이 신시장 개척과 신제품 개발, 구성원 간 상호학습, 경제적 이익 등 경영성과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보고 진정성 있게 다양한 인력을 확보하여 관리할 경우 다양성은 보너스가 될 수 있다(스콧 페이지, 『다양성 보너스』).

성별과 나이·배경 등 다양성으로 인한 인지 방식의 차이는 다양한 관점과 풍부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다양성은 창의성의 기반이 되고 서로 다른 인적 네트워크와 시장 발굴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다양성의 이점은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저절로 발휘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차이로 인한 차별을 방지하고 갈등을 관리하는 체계적인 ‘다양성 관리’를 통해 상호 존중하고 포용하는 조직문화를 갖춰야 한다. 세계적 기업들이 저마다 ‘다양성과 포용’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