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여당 ‘언론 악법’에 청와대는 왜 침묵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2012년 11월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19대 국회의원이던 2014년 11월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는 "언론의 논조에 대해 정치권력이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2012년 11월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서울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문 대통령은 19대 국회의원이던 2014년 11월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는 "언론의 논조에 대해 정치권력이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거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 움직임에 대해 반대 여론이 들불처럼 확산하는데도 유독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군부 독재 시절의 ‘보도지침’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마당에 헌법상 보장된 언론 및 출판의 자유를 옥죄는 ‘악법’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을 밝힐 차례다.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하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법안이 버젓이 추진되는데도 침묵한다면 묵인·방조하는 셈이 된다.

언론계·학계 반발하고 문체부도 이의 제기 #“반민주적 언론 통제” 지적에 입장 밝혀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세부 내용조차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독으로 안건을 강행 처리했다. 언론사에 피해액의 5배까지 징벌적 배상 책임을 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여당은 조만간 문체위 전체회의를 열고 문체위원장이 야당으로 넘어가기 전인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태세다.

이에 대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신문협회·기자협회·여기자협회·인터넷신문협회 등 5개 언론단체는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안을 반민주적 악법으로 규정한다”며 공동으로 비판 성명을 발표했다. 중견 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도 어제 비판 성명을 이례적으로 발표했다. 정의당은 “언론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심지어 친여 성향의 민주언론시민연합조차 “권력자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대응 장치를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지난 1일 뒤늦게 공개된 문체위 소위 속기록 내용이 더 충격적이다. 언론중재법 소관 부처인 문체부 차관은 물론 국회 입법조사처까지 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사실상 묵살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영우 문체부 1차관은 당시 “(손배액에) 하한액을 두는 부분은 다른 입법례도 없고 너무 과도하다”고 답변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해외 주요국에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로 규정한 입법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19대 국회의원이던 2014년 11월 외신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언론의 잘못된 보도나 맘에 들지 않는 논조에 대해서 정치권력이 직접 개입해 좌지우지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말했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 시절에는 청와대를 비판한 언론 보도에 대해 당시 박근혜 정부가 법적 대응을 추진하자 “언론 자유를 보장하라”며 ‘취재원 보호법’을 발의했다. 당시 법안에는 취재원에 대한 압수수색 금지와 언론인의 국회·법원 증언 거부권까지 담았다.

그랬던 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6년 만에 태도를 180도 바꿔 지금은 언론을 적대시하는 징벌적 손배 제도를 야당과의 협의도 건너뛴 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반민주적·반헌법적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는 여당의 언론중재법안에 대해 문 대통령은 분명한 입장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