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연기론 펴던 여권, 김여정 담화가 딜레마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3 00:02

업데이트 2021.08.03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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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달 중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정된 가운데 2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계류장에서 미군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뉴시스]

이달 중순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예정된 가운데 2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계류장에서 미군 헬기가 이륙하고 있다. [뉴시스]

남북 통신선 복원을 시작으로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려던 정부가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 취소를 공개 요구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지난 1일 돌출 담화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쳤다. 김 부부장의 담화대로 한·미 연합훈련을 취소할 경우 한국은 물론 미국 바이든 행정부마저 ‘김여정 하명’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기 땐 또 ‘김여정 하명’ 논란 우려
송영길 “방어적 훈련, 예정대로”
청와대 “여러 상황 고려해 협의 중”
바이든, 훈련 연기 명분도 약해져

앞서 김 부부장은 지난 1일 담화에서 “우리는 합동군사연습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고 언급해 연합훈련 축소 실시가 아닌 전면 취소를 요구했다.

2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정부는 그동안 미국과 8월 한·미 연합훈련을 기존대로 지휘소 훈련으로 축소 실시하거나 연기하는 방안을 협의해 왔다. 통일부가 김 부부장 담화 직전인 지난달 30일 훈련 연기 입장을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 내심 연기 쪽에 무게를 두고 미국을 설득해 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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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별도로 정부는 유엔 대북 제재의 틀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도 추진해 왔다. 북한이 코로나19 비상방역 사태를 선포하고 식량난을 공개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하반기 이른 시일 내에 백신과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통신선 복원, 백신 및 식량 지원 패키지를 통해 본격적인 남북 및 북·미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조심스럽게 모색해 온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돌연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가 나왔다. 정부는 지난해 6월 김 부부장이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정부 대응을 문제 삼으며 통신선을 끊고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대북 전단 살포금지법 개정을 추진해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비난을 산 바 있다. 이번에 또다시 연합훈련을 취소 또는 연기할 경우 대선을 7개월여 앞둔 미묘한 시점에서 또 한번 ‘김여정 하명’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청와대는 이날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한·미 양국이 협의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이번 훈련은 김 부부장이 염려한 적대적인 훈련이 아니라 평화 유지를 위한 방어적 성격의 훈련”이라며 “훈련은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의 담화는 정부의 대미 설득력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경우 연합훈련을 연기할 경우 ‘모든 대북정책은 동맹인 한국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존중 기조를 이행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또 북한이 대화에 호응할 수 있는 유연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할 만큼 했다는 명분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강조해 온 ‘대화용 인센티브는 없다’는 원칙을 스스로 깨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여정 담화는 한국의 요구를 소극적으로나마 수용할 미 행정부 내 동력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바이든 행정부로선 대화의 기회를 차버릴 것이냐는 측면에서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다”면서도 “연합훈련을 대북 유인책으로 연계시킨 트럼프 행정부의 관행을 바이든 행정부 역시 답습하는 것은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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