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왜 혐오표현 썼나, 어떤 피해 겪었나…혐오 후 그들의 고백

중앙일보

입력

혐오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중앙포토

혐오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중앙포토

'왜'.

혐오 표현을 이해할 때 중요한 단어다. '가해자'는 왜 누군가를 공격하는 표현을 쓰는 건지, 반대로 '피해자'는 왜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건지 알아야 한다.

<‘혐오 팬데믹’ 한국을 삼키다> 5회 #당사자가 말하는 혐오표현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혐오 당사자 10여명을 인터뷰했다. 혐오표현을 직접 썼거나 자신을 겨냥한 혐오를 겪은 이들이다. 혐오 주제는 젠더, 지역, 성소수자, 중국 등 다양했다. 이와 함께 혐오 사용·경험자들을 심층 면접한 연구 보고서들도 분석했다.

이들 대부분은 혐오 표현을 딱 한 번만 겪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각도 온라인 기사 댓글로, 유튜브 영상으로, '단톡방' 글로 알게 모르게 혐오가 반복되고 있다. 최근 나타난 '쥴리' 벽화 갈등, 양궁 국가대표 안산을 둘러싼 젠더·페미니스트 혐오 논란, 타인종·국가를 맹폭하는 올림픽 비방 응원 등이 대표적이다.

혐오를 당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딱히 다른 점이 있지 않다. 그냥 글 하나, 취향 하나에 나도 모르는 '공격의 대상'이 됐을 뿐이다. 그리고 혐오를 접한 사람들은 누구든 피해자였다. 혐오에 나선 이들도 다른 혐오에 욱하거나, 주변의 혐오 정서에 스며들어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혐오 바이러스를 퍼뜨린 주범이었다. 당사자들의 입을 빌려 혐오표현의 현실을 정리해봤다.

여성의당 회원이 지난 5월 국회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여성의당 회원이 지난 5월 국회 앞에서 열린 여성혐오 규탄 기자회견에서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난 혐오 표현을 써봤다

-의료진 혐오 사용자 A씨 (20대 후반 대학생)

"작년에 의대생들이 정부에서 낸 공공 의대 관련 포스터 문양을 나치 문양처럼 바꿔 게재했길래 화가 났었죠. 비판을 넘어선 선동이라고 생각해서 포털 뉴스 댓글로 의대생들에게 비속어 섞은 혐오 표현을 썼어요. 혐오가 코로나와 연관이 있긴 하죠. 그리고 온라인상에선 혐오가 쉬운 거 같아요."

-전라도 혐오 사용자 홍모씨(24살 대학생)

"(지난해 2월) 당시엔 대구 혐오가 엄청났었죠. '대구 코로나' 이런 식으로…. 혐오 표현 쓰는 사람들은 잘 됐다 싶었던 거죠. 저는 경상도 출신인데 그런 데 화가 많이 나서 전라도 비하하는 댓글을 달았죠. 그런데 좀 지나니 말을 잘못 한 거 같기도 하고 '괜히 달았다'는 생각에 삭제했어요."

-노인 혐오 사용자 B씨(25살 대학생, 2020년 논문 「인터넷 혐오 표현 대응방안에 관한 탐색적 연구」중)

"평소에 스포츠 뉴스를 많이 보는데 기사 댓글에서 '틀딱충'(노인 비하 표현)이라는 표현의 댓글을 접하게 됐습니다. 단어를 듣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르신들이 충고 말씀을 하실 때 마음속으로 '틀딱충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주변 친구들도 이 표현을 다 알고 있는데, 친구들과 아무렇지도 않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지난 5월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신촌점 광장에서 열린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있다. 뉴스1

지난 5월 서울 서대문구 유플렉스 신촌점 광장에서 열린 2021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아이다호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성소수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깃발이 걸려있다. 뉴스1

난 혐오 표현에 당했다 

-여혐 피해자 이모씨 (20살 대학생)

"20대에서 남녀 사이 혐오 문제 심하다고 하죠. 원래는 청년 세대가 모두 힘든 상황에서 기성세대가 남녀 갈등 조장해서 서로 싸우게 하는 게 문제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혐오를 겪으면서 느낀 게 이게 기성세대만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 20대에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남혐 피해자 임모씨 (27살 직장인)

"SNS 메시지로 다짜고짜 욕하길래 앱 지워버리고 무시했는데, 그러고도 며칠 더 욕을 보낸 거 같아요. 정치인이 한 말에 공감한다고 SNS서 밝힌 건데 그걸로 한남(남성 비하 표현)이니 어쩌니 하니까 걱정이 들긴 했어요. 젠더 갈등이라는 게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이구나 싶었죠. 예전에도 젠더, 페미니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너무 극단적인 사람들이 다 나서서 말을 하고 그게 진짜 상식인 것처럼 표현되니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소수자 혐오 피해자 김모씨 (23살 직장인)

"기분 안 좋을 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표현들을 듣고 보게 되면 무력감을 많이 느끼게 되는 거 같아요. 이전보다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죠. 혐오 표현은 논리적 근거가 없고 무차별적인 걸 알기 때문에 저는 그나마 무시하고 지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아닌 다른 성소수자들은 더 숨어들게 되기도 하죠."

-일본 혐오 피해자 C양 (16살 청소년, 2020년 논문 「청소년의 혐 표현 노출 실태 및 대응 방안 연구」중)

"제가 이중국적인데 어머니가 일본분이세요. 저한테서 일본 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했었고…. 혐오 표현을 하는 이유는 자기보다 조금 못난 부분, 부족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을 헐뜯어서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려고, 쾌락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중국 동포 혐오 피해자 D씨 (20살 대학생)

"제가 조선족 출신이라고 말하니까 친구들이 다 놀라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한국인처럼 생겼는데 어떻게 조선족이냐', '뭐 위험한 일은 없었냐' 이런 것도 물어보고요. 위험할 게 있나요. 저도 걔네들이랑 똑같이 나고 자란 건데…. 그래서 저로선 되게 당황스러운 반응이었죠."

-중국 혐오 피해자 E씨 (25살 유학생, 2021년 논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 이후 한국 거주 중국인 유학생의 사회적 낙인 경험」 중)

"자주 가던 식당에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종이가 입구에 붙었어요. 그 종이를 보고 상처받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식당은 학교 근처에 있어서 유학생들이 자주 갔어요. 그런데 코로나19가 발생한 후 바로 이런 행동을 하니 중국인 학생으로서 너무 불편하고 (그동안) 쌓였던 정이 없어지는 것 같았어요."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를 집어삼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더믹은 우울(블루)과 분노(레드)를 동시에 가져왔다. 특히 두드러진 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다. 서구에선 아시아인 등에 대한 증오범죄와 혐오발언(헤이트 스피치)이 이어진다. 국내서도 온ㆍ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 정서가 난무한다. 여혐ㆍ남혐 논란, 중국동포(조선족)와 성소수자 비난 등이 대표적이다.
'성별, 장애, 출신지역, 인종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편견을 조장하고 멸시ㆍ모욕ㆍ위협을 하거나 폭력을 선동하는 행위'. 혐오표현의 정의(2019년 인권위 보고서 참조)다. 이러한 혐오표현은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아왔다. 그리고 코로나19를 계기로 분출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때론 내 이웃을 향하고, 종종 나 자신을 겨누기도 한다. 팬더믹 1년 반, 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우리 안의 혐오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살펴봤다. 혐오표현이 근거로 삼는 명제들이 맞는지도 '팩트체킹'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