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통신 복원' 北 속셈 이거였네···불쑥 나온 김여정의 한마디

중앙일보

입력 2021.08.02 12:46

업데이트 2021.08.02 14:58

올해 전반기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CPT)이 시작된 지난 3월 8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미군 헬기들이 계류돼 있다. 뉴스1

올해 전반기 한미 연합 지휘소연습(CCPT)이 시작된 지난 3월 8일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미군 헬기들이 계류돼 있다. 뉴스1

 북한이 통신선 복원에 대한 노골적인 ‘연합훈련 청구서’를 한국과 미국에 동시에 던졌다. “한미 연합훈련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정도까지 준비 기간이 필요한 만큼 지금 상황에서 연기는 사실상 취소를 의미한다”(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견해가 우세한 가운데 8월 연합훈련을 연기했을 때 남ㆍ북ㆍ미가 각기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일지 따져봤다.

연합훈련 연기하면 남ㆍ북ㆍ미 누가 제일 이득?

韓, 관계 진전 기회 vs 동맹 리스크 

한국의 손실은 비교적 명확하다. 연합훈련을 연기할 경우 임기 말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생경제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가을이 되면 각 당의 경선이 진행되고, 이미 국내정치적으로는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정부 입장에선 대선이 임박할수록 남북 정상회담 등 대형 이벤트를 도모하기엔 부담인 데다 노무현 정부 당시 대선을 약 2개월 남겨놓고 성사된 2007년 10ㆍ4 정상회담처럼 후속 조치로 이어지지 않는 반쪽짜리 회담에 그칠 우려도 있다. 남북 관계 진전을 추진하려면 지금이 적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조 바이든 미 행정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동맹 간 균열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지난 5월 21일 한ㆍ미 정상이 회담 뒤 도출한 공동성명에는 “우리는 동맹의 억제 태세 강화를 약속하고, 합동 군사 준비태세 유지의 중요성을 공유한다”고 돼 있는데, 연합훈련은 합동 군사 준비태세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가 북측과 통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군 관계자가 북측과 통화하는 모습. 연합뉴스

무엇보다 연합훈련을 연기했을 경우 북한이 이에 얼마나 호응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1일 담화에서 “며칠간 나는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들을 계속 듣고 있다”고 했다. 연합훈련 연기를 ‘대화의 조건’으로 건 게 아니라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로 보고 있는 셈이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한국 입장에서는 일단 잠시 대화가 열리는 효과는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 북ㆍ미 대화 재개가 탄력을 받을 환경도 조성될 수 있다”며 “하지만 이번에 지휘소 훈련을 못 하면 실기동 훈련은 더 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인데, 한ㆍ미간에, 특히 주한미군 실무 차원에서 불신이 증폭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美 ‘할만큼 해’ 명분 vs 방위력 훼손 방치

미국의 경우 연합훈련 연기시 ‘모든 대북 정책은 동맹인 한국의 의견을 중시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존중 기조를 충실히 이행하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백악관 만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백악관 만찬장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또 북한이 대화에 호응할 수 있는 유연한 여건을 마련하는 동시에 ‘할 만큼 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북한에 조건 없는 대화를 수차례 제안했다. 여기에 연합훈련까지 연기했는데도 북한이 응하지 않는다면, 제재와 압박 위주의 대북 정책 운용에 더 방점을 찍을 명분이 커지는 셈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연합훈련 연기 카드는 득보다는 실이 더 눈에 띄는 게 사실이다. 우선 ‘대화용 인센티브는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스스로 어기는 게 된다. 협상 시작도 전에 북한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

특히 연합훈련을 북한과의 대화와 연계한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 뒤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은 연합훈련을 “도발적인 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했고, 이후 훈련은 계속 축소 실시됐다.

과거 '팀 스프리트' 훈련 모습. 한ㆍ미가 20년 가까이 진행해온 연합훈련이었지만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1993년 중단되며 폐지로 이어졌다. 중앙 포토

과거 '팀 스프리트' 훈련 모습. 한ㆍ미가 20년 가까이 진행해온 연합훈련이었지만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1993년 중단되며 폐지로 이어졌다. 중앙 포토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연합훈련에 손을 댄다면 트럼프 행정부 기조를 이어받아 훼손된 연합 준비태세를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김홍균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 문제를 더 악화하지 않도록 관리하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대화의 기회가 왔는데 차버릴 것이냐’는 측면에서는 다소 곤혹스러울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하지만 원래 연합훈련은 연례적 방어적 훈련이지 북한에 대한 유인책도, 처벌 수단도 될 수 없다”며 “애초에 이를 연계시킨 트럼프 행정부가 잘못인데, 바이든 행정부도 이를 끊지 못하고 한ㆍ미가 인센티브를 제공해 북한을 움직이게 하는 트럼프식 공식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화 위한 ‘체면치레’ vs ‘+α 양보’ 난망 

북한 입장에선 연합훈련 연기 요구 관철 시 이득은 크고, 실패해도 손실이 없는 ‘꽃놀이패’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제1차 조선인민군 지휘관·정치일꾼 강습회를 주재했다고 같은달 30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4~27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제1차 조선인민군 지휘관·정치일꾼 강습회를 주재했다고 같은달 30일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뉴스1

우선 연합훈련 연기는 바이든 행정부의 실질적 양보다. 북한은 체면을 잃지 않고 미국과 대화에 나설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2019년 2월 북ㆍ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대외 정책은 국내 정치적 여건에 더욱 많이 휘둘리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연합훈련 연기는 대내용으로도 면을 살릴 수 있는 카드다. 앞서 김 위원장이 “첨단 군사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을 한국의 남북 합의 역행 사례로 직접 규정(올 1월 8차 노동당 대회)했는데, 이런 측면에서 성과를 냈다는 포장도 가능하다.

최근 남북관계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최근 남북관계 주요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에 원하는 바가 있을 때 한국을 압박하면 얻어낼 수 있다’는 공식이 또다시 들어맞는 게 될 수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북한의 요구는 한ㆍ미 연합훈련 연기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훈련 연기를 시작으로 앞으로 계속 한국에 무리한 요구를 해도, 문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따라줄 것이라는 자신감과 오판을 갖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북한에 ‘동맹 갈라치기’라는 부수적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나름의 딜레마도 있다. 현재로써 바이든 행정부가 북ㆍ미 대화를 위해 고려할 수 있는 가장 최고 수준의 양보가 연합훈련 연기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공은 자연스럽게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고, 선택은 북한의 몫이 된다.

일각에선 이는 바꿔 말하면 북한이 연합훈련 연기 이상의 ‘선물’을 미국으로부터 얻어내기는 더 어려워지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미 연합훈련으로 통 크게 양보한 미국으로선 북한이 원하는 제재 완화 등을 쉽사리 대화 테이블에 올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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