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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사고 빈발 현대건설, 안전예산 증액?…알고보니 인건비로 눈가리고 아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이원우 현대건설 대표이사가 지난 2월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건설업체가 공사 현장보다는 서류 중심으로 안전관리를 해 온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고용부, 현대건설 안전관리 진단 #현장 위험 제거보다 서류 중심 관리 #중대재해 대비 증거축적용 의심 #"안전 향상 위한 예산 편성 없어" #노동자 안전 제안도 묵살하기 일쑤 #하청업체, 안전보다 최저가 낙찰제

고용노동부가 올들어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대건설을 대상으로 지난 6월부터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진단한 결과다. 현대건설이 시행하는 건설현장에선 2011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51명이 사망했다. 올해만 3명이 숨졌다. 이번 진단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경우 위반 여부를 조사한 것이 아니라 안전관리체계의 현황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도출하기 위해 실시됐다. 본사와 전국 68개 현장에 대한 감독도 병행했다.

진단 결과 위험요인 제거와 같은 건설 현장에서 안전관리를 하기보다 서류 중심으로 관리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되면 본사 차원에선 안전지시를 하고, 대책을 마련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공사 현장에선 안전사고를 막을 수 없다. 안전조치를 한 것처럼 서류만 꾸려진 형태여서다.

현대건설은 대표가 안전을 위한 방침과 목표를 수립·공표하고, 이에 맞춰 사업본부별로 안전보건 목표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한데 고용부가 진단해 보니 실행을 위한 구체적 추진 전략도 없고, 성과 측정을 위한 지표도 없었다. 구성원의 참여 유도 작업도 저조했다. 경영 상층부에서 안전 관련 서류만 만든 셈이다.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경영진은 안전관리에 만전을 기했다"는 식의 증거 축적용 의혹이 인다.

매주 실시하는 안전점검회의도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공정을 회의에서 누락시키거나 개선을 하지 않았다. 위험성 평가 때마다 같은 위험이 반복적으로 발견된 이유다. 그러나 본부 차원의 모니터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위험요인이 방치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현대건설은 안전보건관리자를 500여 명이나 두고 있다. 문제는 이들 상당수가 회사의 정규 직원이 아니었다. 정규 직원이라고 해도 다른 직군이나 부서로 수시로 전환 배치됐다. 책임감 있게 안전보건 관리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안전보건 관리 예산은 매년 늘어났다. 편성액 대비 실제 집행액도 최근 3년 동안 평균 67억원이던 것이 119억원으로 많이 증가했다. 예산 편성액과 집행금액만 보면 산업안전에 상당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집행 예산의 대부분이 안전보건관리자의 급여였다. 협력업체 지원이나 안전교육을 위한 예산집행은 미미했다. 고용부는 "안전관리 수준 향상을 위한 예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숫자상 안전 예산만 있을 뿐 실제 산업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예산은 없는 셈이다.

현장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할 때도 실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는 제외돼 있었다. 그나마 노동자가 안전보건 제안을 해도 반영해서 시정한 비율은 전체 제안 건수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대부분 묵살됐다는 말이다.

협력업체를 등록하거나 갱신할 때 안전관리 수준을 평가하는 항목은 있지만, 배점이 100점 만점에 5점에 불과했다. 이렇게 되면 안전 수칙을 안 지켜도 공사를 수주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업체 선정을 위한 입찰에선 최저가 낙찰 규정을 적용했다. 안전보다 비용 절감에 무게 중심을 뒀다. 이에 따라 안전수준이 낮아도 공사 비용만 낮춘다면 공사를 수주하게 된다.

권기섭 고용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은 "서류 중심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으로는 중대재해와 중대재해처벌법을 피하기 어렵다"며 "안전 관리 수준을 높이기 위한 현장 중심, 협력업체와의 유기적 협력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대건설이 시공 중인 공사현장에 대한 고용부의 안전감독에선 추락·전도 방지조치 미실시, 위험관리 미흡 등 376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례가 적발됐다. 고용부는 본사에서 적발된 200건 중 198건에 대해 과태료 처분을 하고, 2건은 시정토록 했다. 전국 45개 현장에서 적발된 25건은 사법처리하고, 76건에 대해선 과태료 부과, 75건은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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