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 높이뛰기 2m35, 한국 육상 새 희망이 솟았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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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의 한국신기록으로 4위에 올랐다. 한국 육상이 이전까지 올림픽 트랙&필드 종목(마라톤은 도로 종목)에서 기록한 최고 성적은 결선 8위다. [로이터=연합뉴스]

우상혁이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의 한국신기록으로 4위에 올랐다. 한국 육상이 이전까지 올림픽 트랙&필드 종목(마라톤은 도로 종목)에서 기록한 최고 성적은 결선 8위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병’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이 한국 육상의 새 역사를 썼다. 남자 높이뛰기에 출전한 그는 한국 육상 올림픽 트랙&필드 역대 최고인 4위에 올랐다.

트랙·필드서 한국 역대 최고 4위
국내기록도 24년 만에 갈아치워
관중 향해 박수 유도하며 “가자”
어릴 때 교통사고, 오른발이 작아

우상혁은 1일 일본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넘었다. 공동 금메달의 무타즈 바르심(카타르)과 잔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 동메달의 막심 네다세카우(벨라루시)의 기록(2m37㎝)과는 불과 2㎝였다.

우상혁은 지난달 30일 예선에서 2m28㎝를 넘어 결선에 진출했다. 컨디션은 이틀 새 더 좋아졌다. 결선에선 2m19㎝, 2m24㎝, 2m27㎝, 2m30㎝를 모두 한 번에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는 2m30㎝를 넘은 뒤에는 중계 카메라에 대고 “이제 시작이다. 레츠 고”라고 외쳤다.

우상혁은 2m33㎝ 첫 번째 시기는 실패했다. 테이크 오프 동작까지 부드러웠으나 마지막에 엉덩이가 바에 걸렸다. 하지만 두 번째 시기에 기어이 바를 넘었다. 이어 2m35㎝에 도전했다. 관중을 향해 박수를 유도한 뒤 “가자”라고 소리치고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솟구쳐 오른 그는 바를 살짝 건드렸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경기장 바닥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고, 지켜보던 김도균 높이뛰기·장대높이뛰기  코치도 함께 포효했다.

기록 수립 후 좋아하는 우상혁. [뉴시스]

기록 수립 후 좋아하는 우상혁. [뉴시스]

선수 6명만이 남은 상황. 치열한 두뇌싸움이 시작됐다. 2m37㎝를 건너뛰는 선수가 속출했다. 우상혁도2m35㎝를 한 차례 실패한 뒤 2m37㎝ 대신 2m39㎝를 신청했다. 하지만 ‘미지의 세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2차 시기 실패 뒤에 3차 시기를 더욱 신중하게 준비했다. 도움닫기에 이어 점프까지는 좋았지만, 다리가 바에 걸렸다. 그래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미 승리한 그는 환하게 웃은 뒤 거수경례를 했다.

한국 높이뛰기는 20세기에 멈춰 있었다. 이진택이 1997년 세운 한국기록(2m34㎝)은 24년간 깨지지 않았다. 육상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도로 경기(마라톤, 경보)를 뺀 트랙&필드 올림픽 최고 성적은 8위다. 1984년 LA 올림픽 김종일(남자 멀리뛰기), 1988년 서울 올림픽 김희선(여자 높이뛰기),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진택이 모두 8위였다.

사실 도쿄로 가는 여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코로나19 탓에 국제대회 출전이 어려웠다. 또 국내에 경쟁자가 없어 긴장감도 떨어졌다. 김도균 코치는 “국내 경기만으로는 올림픽 준비가 힘들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규제가 많아져 어쩔 수 없었다. 진천선수촌 및 촌외 훈련을 병행하며 선수에게 동기를 부여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우상혁은 올 3월 입대했다. 훈련소에 열흘만 있었고, 곧바로 대표팀에서 훈련했다. 5월 일병으로 진급한 우상혁은 “주변에서 빨리 입대하는 걸 추천했다. 환경이 바뀌면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말 그랬다”고 말했다.

우상혁은 올림픽 출전을 위한 랭킹 포인트 최종 산정일인 6월 29일까지 세계 35위에 그쳐 도쿄행을 확정짓지 못했다. 대한육상연맹이 개최한 높이뛰기 우수선수 초청 공인기록회에서 개인 최고기록보다 1㎝ 높은 2m31㎝를 넘어 가까스로 도쿄행 티켓을 잡았다.

메달 순위 (1일 오후 10시 기준)

메달 순위 (1일 오후 10시 기준)

우상혁은 오른발이 왼발보다 작다. 여덟 살 때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다. 발 크기가 달라 균형잡기 힘든데도 이를 극복했다. 그는 “발 크기가 달라 밸런스가 맞지 않아 균형 유지 훈련을 많이 했다”고 소개했다.

대전 중리초 4학년 때 육상에 입문한 우상혁은 육상부에서 윤종형 코치를 만났다. 윤 코치는 ‘짝발’인 그에게 높이뛰기 전향을 제안했다. 그는 2019년, 인생 두 번째 스승을 만났다. 김도균 코치다. 김 코치는 피로 골절과 기록 저하로 괴로워하던 그를 일으켰다. 그는 “코치님 덕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우상혁은 결선 진출과 한국 기록 경신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대한민국 군인답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다짐대로 그는 목표를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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