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산수화에 ‘현재’를 입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2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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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박대성 화백은 우리 주변의 소재를 새로운 시각과 담대하고 섬세한 필력으로 담아낸다. 왼쪽부터 ‘버들’(69.5x50cm), 송 Ⅲ(100x60cm), 구룡폭포(140x60cm). 모두 올해 완성한 신작이다. [사진 인사아트센터]

박대성 화백은 우리 주변의 소재를 새로운 시각과 담대하고 섬세한 필력으로 담아낸다. 왼쪽부터 ‘버들’(69.5x50cm), 송 Ⅲ(100x60cm), 구룡폭포(140x60cm). 모두 올해 완성한 신작이다. [사진 인사아트센터]

현대 한국화를 대표하는 수묵화가 박대성(76·사진) 화백의 개인전이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정관자득(靜觀自得)’.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불국사 설경부터 금강산, 천제연, 소나무 등을 담은 신작, 전통 도자기와 공예품을 그린 ‘고미(古美)’ 연작까지 총 71점을 3개 전시장에서 소개한다.

대표적 수묵화가 박대성 개인전
내년 미 순회전 앞두고 71점 공개
“평생 글씨 파고든 게 그림 원동력”
담대한 붓질, 섬세한 필력 돋보여

이번 전시는 내년 미국 순회전을 앞두고 국내에서 여는 마지막 전시다. 내년 7월 LACMA(LA카운티 미술관)에서 개인전, 이후 2024년까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다트머스대 후드 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메리워싱턴대에서 전시가 이어진다.

1979년 수묵담채화 ‘상림’으로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그의 40년 화업이 국제무대에서 더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주목받는 이유로 ‘수묵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꼽는다. 겸재 정선부터 이상범, 변관식의 진경산수화 명맥을 이으면서도 과감하고 다채로운 시도로 한국 수묵화의 현대화를 이뤘다는 것.

박대성 화백. [사진 인사아트]

박대성 화백. [사진 인사아트]

박 화백은 새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俯瞰法)과 다시점(多視點)을 이용해 화면에 한국 산수를 역동적으로 표현해왔다. 담대한 붓질로 표현한 암석과 폭포, 소나무 등은 남다른 힘을, 설경 연작은 섬세한 필력을 드러내 준다.

‘불국사 설경’을 통해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고요한 풍경을 표현한 그는 이번 신작 ‘버들’을 통해선 이른 봄 달밤의 공기를 담백하게 전한다. 대작부터 소규모의 정물화까지, “마음도 손도 더 평온해지고 자유로워졌다”는 거장의 경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 화백은 “제 필력은 글씨에서 나온다”며 “평생 글씨를 파고든 게 그림의 원동력이 됐다. 글씨를 파고 들수록 표현력은 더 풍부해진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졸업 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18세 때부터 서정묵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의 조언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미국 순회전을 앞둔 그는 “여기에 오기까지 삼성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고 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소개하라”고 한 뒤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 것. 또 2004년 삼성미술관 리움 개관 때는 대거 방한한 해외 미술계 인사 중 90여 명이 그의 경주 작업실을 방문했다. “큰 행운이었다. 쟁쟁한 해외 미술관에서 제 그림 대작을 몇 점 사 갔다. 그때부터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장의 추천으로 세계적 컬렉터가 그의 그림을 샀고, 그 대작이 미술관 특별실에서 전시됐다. 그는 “내년 미국 순회전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3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보험가 1억원인 그의 작품 위에 한 어린이가 올라가 논 게 논란이 됐는데, 박 화백은 “모르고 한 일이다. 아이가 미술관에서 안 좋은 기억을 갖기 원하지 않는다”면서 “이 사건으로 인한 작품 훼손도 하나의 역사이니 그대로 두겠다”고 말해 찬사를 받았다.

‘살아가며 가장 경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현대”라고 답했다. “물질 만능 주의에 빠지는 것, 편리한 것에 나를 다 내어주는 것, 성찰 없이 정보를 퍼 나르고, 정신을 못 차리고 달리며 사는 것이 가장 무섭다”면서다. “매일 아침 붓글씨를 쓰며 나를 가다듬는다”고 했다. 전시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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