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 매일 싸웁니다" 임대차법 뒤 전세살이 40대 절규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17:33

업데이트 2021.08.01 17:39

아파트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시세표. 연합뉴스

아파트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은 시세표. 연합뉴스

"20년 동안 큰 싸움 한 번 없던 저희 부부가 거의 매일 싸우고 있습니다. 아파트를 살 수 있었던 시점도 있었지만,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를 믿고 기다렸습니다" 자신을 한 가정의 가장이라고 소개한 47세 청원인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하소연이다.

그는 "3억원짜리 전셋집이 5억5000만원이 된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머리를 짜내서 궁리해도 2억5000만원이 나올 구멍은 없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도둑질을 하지 않고, 강도질하지 않고, 마약을 팔지 않고, 사기를 치지 않고, 합법적으로 2억5000만원을 벌 수 있는 일, 어떤 게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지난해 7월 말 임차인 보호를 위해 새 임대차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됐지만, 1년 후 이 법은 이처럼 임차인을 괴롭히는 악법이 됐다. 전셋값 급등에 고통을 호소하는 임차인이 많아진 것이다.

중앙일보가 1일 서울지역 아파트 1116개 단지를 조사해보니, 지난 1년간 전셋값이 두배(100%) 이상 뛴 단지가 4곳이나 됐다. 전셋값이 50% 이상 오른 단지는 전체의 7.8%(87곳)였으며, 청원인의 주장처럼 전셋값이 2억5000만원 이상 뛴 단지도 12.3%인 137곳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등록된 지난해 7월 말 임대차법 시행 전 5개월과 올해 최근 5개월 동안 전세 거래가 각각 3건 이상(전용면적 84㎡ 기준)인 아파트 단지 1116곳의 전세보증금 최고가를 비교한 결과다.

임대차법 1년, 서울 주요단지 전셋값 상승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임대차법 1년, 서울 주요단지 전셋값 상승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조사 대상 단지의 전세보증금 최고가 평균은 1년 새 1억4800만원(25.3%) 올랐다. 전셋값 상승 폭이 큰 일부 단지에선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의 전셋값 차이가 수억 원 넘게 차이 나는 '이중 가격' 현상이 심각하다. 성동구 성수동 1가의 트리마제의 경우 전용면적 84㎡를 기준으로 지난 5개월간 신규(24억5000만원)와 갱신(8억원) 계약의 전셋값 차이가 16억5000만원까지 벌어졌다.

전세 품귀 현상이 1년 가까이 지속하면서 전세 최고가는 더 높아졌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아실에 따르면 1일 기준으로 서울의 아파트 전세 매물은 2만141건으로 1년 전(3만7107건)과 비교해 84%가 줄었다. 특히 최근 들어 서울 지역에 아파트 입주 물량 감소에 재건축 이주 수요 등이 겹치면서 전셋값 천정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강남, 목동 등 일부 인기 학군지의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목동신시가지 14단지 전용면적 84.87㎡의 경우 지난 5월 28일 11억6200만원에 전셋값 최고가로 거래됐는데, 같은 달 1일 7억8000만원보다 3억8200만원 더 뛴 가격이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전세 '삼중 가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전세 '삼중 가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셋값을 종잡을 수 없는 단지도 많다. 도봉구 동아청솔의 경우 전용면적 84㎡ 9층이 지난 5월 20일 9억4400만원에 최고가로 전세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지난 3개월간 10건의 전세 거래 가운데 최저가는 3억1500만원(4월 27일)이었다. 전세 계약의 가격 구간을 보면 4억원 이하가 4건, 4억 초과 6억원 이하가 4건, 6억원 초과가 2건이었다. '이중 가격'을 너머 '삼중 가격'이 형성된 것이다.

임대차법으로 전세 갱신 때 최고 올릴 수 있는 가격이 5%로 제한됐지만 최근에는 집주인과 세입자의 합의로 그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에서 갱신 계약(최저가)과 신규 계약(최고가) 사이에 새로운 가격대가 형성돼 '삼중 가격'이 발생한 것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40대 박모씨도 최근 전세계약 갱신을 앞두고 "실거주하겠다"는 집주인과 실랑이 끝에 최고가 거래의 70% 수준에 재계약하기로 했다. 5억5000만원에서 2억원 오른 금액인데, 현재 이 단지의 전세는 9억~10억원에 거래된다.

박씨는 "실제 집주인의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도 어려운 데다 전셋값이 크게 올라 이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다음 계약 때 계약갱신청구권 쓰지 않는 조건으로 집주인이 원하는 가격에 재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임대차법 1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상승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임대차법 1년,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상승률.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정부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임대차 계약 갱신율 77%(서울 100대 아파트 기준)"라며 "다수의 세입자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하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전셋값을 5% 이하로 올린 갱신 사례는 이보다 적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에 따르면 임대차신고제를 도입한 6월 한 달간 전국 갱신 계약 1만3000건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비율은 63.4%인 8000건이었다.

시장 혼란을 가중하는 임대차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장은 "전세난의 시작이 된 임대차법 시행을 당분간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당에선 가격 통제의 대상을 신규 계약으로 확대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공급을 이길 시장은 없기 때문에 가격 통제 정책 대신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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