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훈련 연기' 공론화하자 본색 드러낸 北…김여정 "전쟁연습 예의주시"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17:12

업데이트 2021.08.01 21:05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대화국면을 진전시키기 위해 통일부가 '한미연합훈련 연기론'을 꺼내들었다. 사진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조성된 남북 대화국면을 진전시키기 위해 통일부가 '한미연합훈련 연기론'을 꺼내들었다. 사진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갖고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약 13개월만에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되며 남북 대화 국면이 조성되자 통일부가 전면에 나서 '한미연합훈련 연기론'을 꺼내들었다. 연합훈련 연기 주장의 명분은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상치 않단 점이었지만, 시작부터 대북 양보 카드부터 공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선 복구 사흘만에 카드 공개
통일부서 훈련 연기론 꺼내들어
북한 북침전쟁 반발 의식했나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나 “개인적으론 물론, 당국자로서도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라며 “(연합훈련을) 연기해 놓고 오히려 대북 관여 이런 것을 본격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이 나온 시점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해 “적대세력들이 광신적이고 집요한 각종 침략전쟁연습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한 내용이 공개된 직후다.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이 '하노이 노 딜'로 끝난 이후 약 2년만에 다시 남북대화 국면이 조성되자 통일부가 연합훈련 연기론의 기수로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남조선 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남조선 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한국 정부의 연합훈련 연기론이 공론화하자 북한은 그간 숨겨왔던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1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며칠간 나는 남조선군과 미군과의 합동군사연습이 예정대로 강행될 수 있다는 기분 나쁜 소리를 계속 듣고 있다”며 “남조선 측이 8월에 또다시 적대적인 전쟁연습을 벌려놓는가, 아니면 큰 용단을 내리겠는가에 대해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부장은 또 통신선 복원에 대해 “단절됐던 것을 물리적으로 다시 연결시켜놓은 것뿐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김 부부장의 이번 담화는 한미연합훈련을 강행할 경우 통신선 복원 이후 한국 정부가 의도하는 남북 관계 개선은 물거품이 될 것이란 위협으로 해석 가능하다. 연합훈련 실시를 놓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논의중인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이날 담화를 활용했다는 의미다.

北 '북침전쟁' 반발에 고개 든 '훈련 연기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간 한국 정부는 한미연합훈련의 의미를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방어적 성격의 훈련”으로 규정해 왔다. 연합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면서도 훈련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2018년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엔 북한 비핵화 협상을 감안해 연합훈련의 규모가 대폭 축소됐고, 2020년 전반기엔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대규모 야외 실기동훈련(FTX)은 물론 컴퓨터 시뮬레이션 중심의 도상훈련(CPX)마저도 생략했다. 

하지만 북한은 훈련 규모와 형식에 관계없이 한미연합훈련 그 자체를 ‘북침 전쟁 준비’로 간주하며 매년 반발 수위를 높여 왔다. 지난달 30일엔 조선중앙통신엔 김정은 위원장이 전군 지휘관·정치간부 강습회에서 연합훈련을 겨냥해 “우리 국가를 선제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체계적으로 확대하고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통일부의 '연합훈련 연기론'을 놓곤 북한을 견인하는 게 아니라 북한에 견인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군사 당국간 사안을 통일부가 공론화하는 자체가 어색하다는 지적도 있다. 연합훈련 소관 부처는 국방부다.

또 남북 대화와 대북 관여를 위한 훈련 연기는 그간 정부가 앞세운 ‘연합훈련은 방어훈련일 뿐’이라는 논리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을 뒷받침한다는 명분으로 2018년 하반기부터 연합훈련 규모를 축소해왔으나, 정작 핵무기와 관련한 북한의 변화는 전혀 이끌어내지 못했단 점 역시 한국 정부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훈련 축소 3년, 北 변화는 전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욱 국방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통화에선 전날 통일부에서 제안한 '연합훈련 연기론'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FP=뉴스1]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욱 국방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양국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통화에선 전날 통일부에서 제안한 '연합훈련 연기론'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FP=뉴스1]

지난달 31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연합훈련 연기론과 관련 “한미연합사령부 정책에 따라 우리는 계획하고 있거나 실시한 훈련에 대해선 논평하지 않는다”며 “연합훈련은 쌍방의 결정이고 모든 결정은 (한·미) 상호 합의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서울 국방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지난달 31일 유선 협의를 가진 것 역시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제기한 연합훈련 연기론이 배경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이날 통화는 오스틴 장관의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선제적인 변화 없이는 유인책도 없다는 대북정책의 원칙을 세웠고, 한국군에 우선적으로 백신을 지원해줄 정도로 연합훈련의 필요성을 원칙적인 차원에서 강조해 온 상황”이라며 “문재인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이유로 연합훈련을 연기하려면, 지난 3년간 연합훈련 규모를 축소해왔음에도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전략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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