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도운 대가가 노숙자 쉼터”…아프간 통역사의 美 정착기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16:59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통역사로 활동했던 지아 가푸리(37)는 7년 전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난 2014년 9월 임신한 아내와 세 아이를 데리고 드디어 꿈에 그리던 미국 땅을 밟았던 감격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의 충격으로 바뀌었다. 몇 주간의 기다림 끝에 자원봉사자에게서 ‘새 보금자리’라며 안내받은 곳은 노숙자 쉼터였다. 지아는 지난달 31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때 14년간 두 나라를 위해 복무한 대가가 이건가 싶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미국 정착기를 BBC가 소개했다.

지아는 2002년 통역사로 미군에 입대했다. 6년 전 엄마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지아는 7남매와 함께 하던 평온한 일상을 순식간에 잃었다. 20대이던 형은 탈레반 저항의 중심지에서 우연히 연설을 들었다가 감옥에 갇혀 걷지도 못할 정도로 심한 구타를 당했다. 지아의 가족은 결국 도망치듯 카불을 떠나 파키스탄으로 이사했다. 이때 지아는 엄마에게 “내가 크면 꼭 탈레반에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쇼크밸리 전투서 퍼플하트 훈장

미국에서 아프간 통역사 미국 정착을 돕는 IFF 재단 설립자 지아 가푸리. 사진 지아 가푸리 트위터

미국에서 아프간 통역사 미국 정착을 돕는 IFF 재단 설립자 지아 가푸리. 사진 지아 가푸리 트위터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2001년 지아의 가족은 아프간으로 돌아왔다. 안정을 되찾은 정부를 보고 “이제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결혼해 정착한 후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지아는 몇 달 후 ‘미군이 통역사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바로 친구와 함께 카불 미군 기지를 찾아갔다. 군사 지식이 없어도 영어만 할 줄 알면 된다는 말에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입대를 결심했다.

그는 미 육군 특수부대와 함께 일하면서 끊임없이 죽음에 맞닥뜨렸다. 2008년 4월 동행한 쇼크 밸리 전투에선 6시간 이어진 총격전 끝에 통역사이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지아도 이 전투에서 다쳐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그해 미 의회에서 미군에 협조한 아프간인을 위해 신설된 특별이민비자(SIV)를 신청했다. 승인은 신청 6년 만인 2014년 6월에야 이뤄졌다. 탈레반은 그에게 미군 협력을 중단하라는 협박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카불을 떠나 가족과 함께 테네시주 내슈빌에 도착한 그는 그곳엔 자신을 위한 어떤 지원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택시를 타고 아프간인들이 많이 산다는 버지니아주 매나서스로 넘어간 뒤 몇 주간 SIV 소지자 지원단체를 수소문하면서 호텔에 머물렀다. 어렵게 닿은 자원봉사자가 안내한 곳이 노숙자 쉼터. 갈 곳은 없었고, 아이들은 “언제 집으로 돌아가느냐”고 보챘다. 결국 지아의 소식을 들은 전 상급자가 찾아와 노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자신의 집에 데려왔다. “이곳이 네 집이야. 살고 싶을 때까지 살아라”라고 말한 그에 대해 지아는 “결코 잊지 못할 은인”이라고 했다.

“美 정치인들이 형제 배신” 

지난달 25일 카불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 중인 전직 아프간 통역사들. AP=연합뉴스

지난달 25일 카불 미 대사관 앞에서 시위 중인 전직 아프간 통역사들. AP=연합뉴스

결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아파트를 구한 지아는 건축 일과 편의점 일을 병행하며 생계를 이었다. 그가 꿈꿨던 생활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니고 아내가 자유롭게 외출하는 정도만으로도 만족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막내아들 외에 지아의 다른 가족은 지난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지아는 지난 2019년 아프간 통역사들의 미국 정착을 돕는 단체 통역자유재단(IFF)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그가 돕는 이들은 대부분 비자 승인이 지연되거나 처리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1년 아프간 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군과 함께 일한 통역사는 5만여명이다. 2008년 이후 SIV로 미국에 이주한 아프간 통역사(가족 포함)는 7만명가량. 아직 2만명이 미국 이주를 기다리고 있다. 이중 절반은 초기 절차도 밟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기다림이 몇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2009년 이후 SIV를 기다리다 숨진 통역사만 약 300명이다.

지아의 가장 큰 걱정은 아프간에 남아있는 통역사들의 안전이다. 비영리단체 민주주의수호재단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4월 아프간 철수를 발표한 이후 탈레반 점령지 수는 72개에서 221개로 늘었다. 탈레반이 새롭게 점령한 곳에선 특히 통역사들이 체포되거나 처형될 위험이 크다. 지아는 미군의 아프간 철수는 이들을 포기하는 거라고 본다. 그는 “탈레반은 여전히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며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제2의 조국이 된 미국을 사랑하지만, 아프간 정책 결정권자들에 대한 배신감은 떨쳐낼 수가 없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형제’(미군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배신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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