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순회전 앞둔 박대성 화백 "하루에 이뤄지는 기적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15:40

업데이트 2021.08.01 16:31

뱍대성, 버들, 2021, 한지에 먹, 69.5x50cm. [사진 인사아트센터]

뱍대성, 버들, 2021, 한지에 먹, 69.5x50cm. [사진 인사아트센터]

송, 2021, 한지에 먹, 100x60cm. [사진 인사아트센터]

송, 2021, 한지에 먹, 100x60cm. [사진 인사아트센터]

현대 한국화를 대표하는 수묵화가 박대성(76) 화백의 개인전이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 제목은 '정관자득(靜觀自得)'. 사물이나 현상을 고요히 관찰하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박 화백이 즐겨 그려온 불국사 설경부터 금강산, 천제연, 소나무 등을 담은 신작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수집한 전통 도자기와 공예품을 그린 '고미(古美)' 연작까지 총 71점을 3개 전시장에 걸쳐 소개한다.

서울 인사아트센터 개인전
미 순회전 앞두고 작품 공개
"내 그림의 원동력은 붓글씨"

2022년부터 미국 순회전 

박대성, 구룡폭포, 2021, 한지에 먹, 140x60cm,[사진 인사아트t센터]

박대성, 구룡폭포, 2021, 한지에 먹, 140x60cm,[사진 인사아트t센터]

이번 전시는 그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내년 미국 순회전을 앞두고 국내에서 여는 마지막 전시인 것. 내년 7월 LACMA(LA카운티 미술관)에서 개인전이 열리고, 이후 2024년까지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다트머스대 후드 미술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메리워싱턴대에서도 전시가 이어진다.

북미 순회전 기간에 맞춰 다트머스대 김성림 교수를 중심으로 미국 미술 사학자들이 집필한 한국 현대미술 관련서적도 출간된다. 이 책에선 전통 수묵화의 현대화에 앞장선 박 화백이 비중있게 다뤄질 예정. 1979년 수묵담채화 '상림'으로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된 그의 40년 화업이 이제 국제무대에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한국 수묵화의 현대화  

박대성, 청우, 2021, 한지에 먹, 44.5x69cm.[사진 인사아트]

박대성, 청우, 2021, 한지에 먹, 44.5x69cm.[사진 인사아트]

박대성, 고미, 2021, 한지에 먹, 116x79cm. [사진 인사아트센터]

박대성, 고미, 2021, 한지에 먹, 116x79cm. [사진 인사아트센터]

그의 수묵화가 지금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수묵화의 현대적 재해석'을 꼽는다. 겸재 정선부터 이상범, 변관식의 진경산수화 명맥을 이으면서도 과감하고 다채로운 시도로 한국 수묵화의 현대화를 이뤘다는 것. 메리워싱턴대 미술사학과 김수지 교수는 "박 화백의 담대한 필체의 감동은 국제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박 화백은 새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부감법(俯瞰法)과 다시점(多視點)을 이용해 화면에 한국 산수를 역동적으로 표현해왔다. 담대한 붓질로 표현한 암석과 폭포, 소나무 등은 남다른 힘을 보여준다. 반면 오랫동안 매달려온 설경 연작은 그의 또다른 섬세한 필력을 드러내준다.

"글씨에서 그림이 나온다" 

'불국사 설경'을 통해 보슬보슬 눈내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고요한 풍경을 표현했던 그는 이번에 선보인 신작 '버들'을 통해선 이른 봄 달밤의 부드럽고 풋풋한 공기를 담백하게 전한다. 벽 하나를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까지 늘어뜨린 대작부터 소규모의 정물화까지, 다채로운 작품들은 "마음도 손도 더욱 평온해지고 자유로워졌다"는 거장의 경지를 보여준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 화백은 "저의 필력은 글씨에서 나온다. 그림에 앞서 글씨를 파고든 게 붓을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그림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글씨를 파고들수록 표현력이 굉장히 풍부해진다. 갈수록 평생 해온 붓글씨 쓰기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붓끝의 힘으로 그가 그려낸 산수는 실경 같기도, 꿈에 본 풍경 같기도 하다. 그는 이런 지적에 대해 "현실에 있는 듯하지만 실재하는 풍경은 아니다"라며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시골에 살며 접해온 풍경이 내 머릿속에 다 입력돼 있다"고 답했다. 이어 "그림이 사진처럼 되면 안 된다.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고 덧붙였다.

삼성과 깊은 인연 

서울 인사안트센터 박대성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인사아트센터]

서울 인사안트센터 박대성 개인전 전시장 전경. [사진 인사아트센터]

'불국사 설경' 그림 앞에 선 박대성 화백. [사진 인사아트센터]

'불국사 설경' 그림 앞에 선 박대성 화백. [사진 인사아트센터]

그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가 18세 때부터 서정묵 문하에서 5년간 그림을 배웠고, 이후 이영찬 화백과 서울대 동양화과 박노수 교수의 조언을 받으며 그림을 그렸다.

미국 순회전을 앞둔 그는 "여기에 오기까지 삼성과 깊은 인연이 있었다"고 했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젊은 작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소개하라"고 지시한 뒤 1988년 호암갤러리에서 그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 것. 또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 때는 대거 방한한 해외 미술계 인사들 가운데 90여 명이 그의 경주 작업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큰 행운이었다. 당시 쟁쟁한 해외 미술관에서 제 그림 대작을 몇 점 구입해갔다. 그때부터 상상도 못 하던 일들이 하나둘씩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장의 추천으로 세계적인 컬렉터가 그의 그림을 사들였는가 하면, 그 대작이 미술관 특별실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그는 "내년 미국 순회전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기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솔거미술관 작품 훼손 사건  

박 화백은 지난 3월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일어난 사건으로도 유명해졌다. 전시장에서 한 어린이가 보험가 1억원에 달하는 그의 작품 위에 올라가 놀았고, 그 부모는 사진을 찍으며 이를 방관한 것. 사건이 보도되자 일각에선 아이 부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박 화백은 "아이가 모르고 한 일이다. 아이가 미술관에서 안 좋은 기억을 갖기 원하지 않는다"면서 "이 사건으로 인한 작품 훼손도 하나의 역사이니 그대로 두겠다"고 말해 '거장의 도량'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에게 물었다. 살아가며 가장 경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는 "현대"라고 답했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는 것, 편리한 것에 나를 다 내어주는 것, 성찰 없이 정보를 퍼 나르고, 정신을 못 차리고 달리며 사는 것이 가장 무섭다"는 그는 "매일 아침 맑은 정신으로 붓글씨를 쓰며 나를 가다듬는다"고 말했다. 전시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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