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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붓과 먹으로 다시 태어난 신라의 문화유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류희림의 천년 신라 이야기(4)  

“그게 어린아이지. 문제 삼지 않도록 합시다.” 자신의 작품을 훼손한 어린이 관람객을 조건 없이 용서하며 전 국민을 감동하게 한 거장이 바라본 신라는 어떨까.

지서 김생의 글을 임서한 20m 길이의 박대성 화백의 작품 전시 모습. [사진 류희림 제공]

지서 김생의 글을 임서한 20m 길이의 박대성 화백의 작품 전시 모습. [사진 류희림 제공]

작품훼손사건은 지난 3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솔거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던 박대성 화백의 길이 19m 서화작품에 한 어린아이가 발을 딛고 올라섰다. 작품 위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통에 1억 원이 넘는 가치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일부분이 뭉개지고 훼손됐다. 많은 사람이 전시예절을 어긴 어린이와 부모를 질타했지만, 박대성 화백의 생각은 달랐다. “이것이 아이의 호기심이자 순수함인데, 이를 탓할 수 없지 않느냐”며 문제 삼지 않겠다는 것. 또 “작품이 역사를 쌓아가는 과정의 일부로 보겠다”며 수정하지 않고 두겠다는 뜻을 전했다.

경주 엑스포 솔거미술관 CCTV에 포착된 작품 위에 올라선 어린이의 모습. [사진 류희림 제공]

경주 엑스포 솔거미술관 CCTV에 포착된 작품 위에 올라선 어린이의 모습. [사진 류희림 제공]

어린이 관람객이 올라서 훼손된 박대성 화백의 작품. [사진 류희림 제공]

어린이 관람객이 올라서 훼손된 박대성 화백의 작품. [사진 류희림 제공]

이 사건이 있은 후 거장의 품격을 보여준 박대성 화백이 꿈에서 그려본 신라의 모습을 담은 대작 한국화가 관람객을 마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특별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솔거미술관 한국화 특별전 ‘산모롱이 느린 선 하나’ 전시가 주인공이다. 이번 전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화 작가 5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펼쳐 보이는 전시다. 그 가운데서도 박대성 화백이 그려낸 국내 최대 규모 수묵화 ‘몽유 신라도원도’는 다시 한번 전 국민을 놀라게 하고 있다.

6월 28일 오픈한 솔거미술관 전시 '산모롱이 느린 선 하나'에 공개된 박대성 화백의 '몽유 신라도원도'. [사진 류희림 제공]

6월 28일 오픈한 솔거미술관 전시 '산모롱이 느린 선 하나'에 공개된 박대성 화백의 '몽유 신라도원도'. [사진 류희림 제공]

신작 ‘몽유 신라도원도’는 가로 11.5m, 가로 5m 규모를 자랑한다. 대작이 뿜어내는 웅장한 감동과 함께 그 속에 녹아 있는 세밀함의 조화는 관람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림의 내용은 제목 ‘몽유 신라도원도’를 그대로 담는다. 경주 남산이 둘러싸고 있는 공간에 황룡사 9층 목탑과 첨성대, 분황사 모전석탑, 성덕대왕신종, 얼굴무늬 수막새 등 20여개의 문화재가 다양하게 그려져 있다. 남산과 토함산이 주변을 단단히 지키고 서 있으면서 찬란한 문화유산이 그 속에 자리해 있는 신라의 모습을 마치 꿈속에서 본 듯 유추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말 그대로 감동의 극치다.

경주엑스포대공원 솔거미술관 전체 전경. [사진 류희림 제공]

경주엑스포대공원 솔거미술관 전체 전경. [사진 류희림 제공]

무엇보다 이번 ‘산모롱이 느린 선 하나’ 전시는 박대성, 김선두, 서용, 이은호, 이애리 등 대한민국 한국화 대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만큼 신라시대 솔거에서부터 조선시대 안견,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화와 예술 발전 과정을 돌아보기에 그만이다. 막고굴 벽화 연구로 대표되는 서용 작가는 부처의 가르침과 일대기를 그린 변상도의 일부분을 이색적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잔잔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한국화 전시를 선보인다. 김선두 작가는 풍부하고 은은한 색으로 표현한 한국화에 전통 민화의 부감법과 입체적으로 이동하는 시선을 입혀 독창적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옅은 농담의 수묵을 켜켜이 쌓은 은은한 화폭을 통해 참선과도 같은 사색으로 그려낸 작가의 창작정신을 표현한 이은호 작가, 사랑·행복·성공을 상징하는 꽈리를 주제로 추묵을 사용해 맑고 명료하게 발색된 작품을 그린 이애리 작가 등 한국화의 범주와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작가들의 창의력은 감동적이다.

붓과 먹으로 표현된 한국화와 거장의 진정성이 녹아있는 예술정신은 여전히 아름답다. 섬세하다. 또 인상 깊다. 붓과 먹으로, 문화예술로 살아 숨 쉬는 신라와 한국문화가 다시 한번 태동하길 바라면서 이번 휴가철 꿈속에서나 만나볼 법한 신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느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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