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은 안 그런데···에르메스 사장들 왜 에르메스백 없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06:00

업데이트 2021.08.01 08:28

세상엔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있지만, 패션 분야의 2대 명품을 꼽으라면 에르메스와 샤넬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루이비통도 있지만 1987년 루이비통과 모에 헤네시가 합병한 뒤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라는 거대 그룹에 속해 있기 때문에 개별 브랜드로 비교하기엔 성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실제로 언론사 인터뷰 등에서 ‘경쟁자를 한 명만 꼽아달라’고 하면 에르메스는 샤넬을, 샤넬은 에르메스를 지목할 정도로 상대를 존중하는 라이벌 관계입니다.

에르메스와 샤넬은 둘 다 프랑스 브랜드이고 100년이 넘는 역사에,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대가 매우 높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꽤 많습니다. 브랜드의 태생부터 경영 스타일까지 각자의 색깔이 뚜렷합니다.

꼼꼼한 에르메스, 화려한 샤넬

티에리 에르메스(에르메스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에르메스 창업자).

에르메스는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가 세운 마구 상점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주된 교통수단은 마차였고, 에르메스가 만든 안장·채찍·장갑·부츠 등은 품질 좋기로 유명했습니다. 마구 용품은 말의 몸통에 직접 닿는 것이라 정교하고 꼼꼼하게 만드는 게 승마감은 물론 사람의 안전에도 중요한데 이런 점을 잘 충족시켰던 것이죠.

에르메스 로고. 마차를 끌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에르메스 로고. 마차를 끌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두 번의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1등 상을 타며 품질을 인정받은 에르메스는 1900년 이후 귀족은 물론 독일·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 등 유럽의 주요 왕족들을 주요 고객으로 두게 됐습니다.

'코코 샤넬'

'코코 샤넬'

1910년 파리 캉봉가에 문을 연 여성용 모자가게 ‘샤넬 모드(CHANEL MODES)’.

1910년 파리 캉봉가에 문을 연 여성용 모자가게 ‘샤넬 모드(CHANEL MODES)’.

샤넬은 가브리엘 보뇌르 샤넬이 1910년에 모자 매장 ‘샤넬 모드’를 열면서 시작했습니다. 가수로 일할 때 얻은 별명 ‘코코 샤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죠. 그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은 물론 사업 감각이 대단했습니다. 연인의 투자를 받아 개업한 모자 매장이 인기를 얻자 귀족들이 자주 가는 휴양지와 사교계 인근에 매장을 늘리며 의류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샤넬 하면 떠오르는 ‘오뜨 꾸뛰르’가 바로 고급 맞춤복이라는 뜻입니다.

샤넬 매장은 왜 눈에 띄는 곳에 있을까 

두 브랜드 모두 상류층을 대상으로 장사했지만 에르메스는 지금으로 치면 자동차용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옷을 만드는 샤넬보다 직접 고객과 만나는 횟수나 밀착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품에 있어서도 상류층 여성이 주 고객인 샤넬이 화려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트렌드를 이끄는 디자인에 힘을 줬다면, 에르메스는 상대적으로 최고의 소재로 튼튼하고 정교하게 만든 품질에 공을 들였습니다.

말 안장 등 에르메스 마구용품 광고.

말 안장 등 에르메스 마구용품 광고.

이런 특징은 지금까지도 두 기업에 녹아있습니다. 일례로 샤넬은 매혹적인 모델과 제품으로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칩니다. 반면 에르메스는 마케팅이나 홍보에 비교적 소극적입니다.
한국 백화점만 봐도 샤넬 매장은 사람들의 눈에 확 띄는 입구 쪽에 있지만 에르메스는 구석진 안쪽에 자리해 있습니다.

[명품까톡]

일주일에 많이 만들어도 2개

에르메스는 지금도 ‘장인 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모든 제품을 프랑스에 있는 50여개의 공방에서 손으로 만듭니다. 5년 이상의 수련을 거친 장인들만 가방을 만들 수 있는데 장인 한 명이 아무리 쉬지 않고 일해도 일주일에 두 개 이상 만들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에르메스 가방 가격이 수천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비싸고, 1~2년 대기해도 얻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 100% 수작업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악어가죽 버킨백. 201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37만9261달러(약 4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히말라야 악어가죽 버킨백. 2017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37만9261달러(약 4억4000만원)에 낙찰됐다.

가죽에 대한 기준도 매우 까다롭습니다. 에르메스는 가죽 전문 회사를 가지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상처가 있거나 질이 낮으면 쓰지 않고 폐기하거나 다른 브랜드에 넘깁니다. 간혹 에르메스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가방을 판매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때 나오는 가방 중 상당수가 경력이 짧은 ‘수습 장인’이 만들었거나 가죽의 엄격한 품질 기준에 못 미친 제품들이라고 합니다.

고급스럽게 전시된 롯데백화점 본점의 샤넬 매장 쇼윈도. 이소아 기자

고급스럽게 전시된 롯데백화점 본점의 샤넬 매장 쇼윈도. 이소아 기자

샤넬은 제작 공정에 있어서 좀 더 유연합니다. 샤넬 가방의 경우 프랑스 공방에서도 만들지만 프랑스 공장은 물론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협력공장에서 만든 제품도 많죠. 그래서 같은 샤넬백이라도 ‘메이드 인 프랑스’ 제품을 사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샤넬은 최근 샤넬백 가격이 급격히 오르면서 ‘오픈 런’ ‘샤테크’ 등 가방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의류와 향수, 화장품 등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가방과 잡화 등 가죽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은 에르메스에 비해 100% 수작업을 하거나 생산지를 프랑스로 국한하기 어렵죠.

신흥부자 VS 전통부자

창업자의 경영 스타일이 이어져 내려오는 걸까요.
에르메스는 여전히 VIP 중심으로 알음알음 고객을 관리하며 제품을 판매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인기가 좋다고 매장 수를 쉽게 늘리지도 않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비싸게 군다’는 인상도 가지고 있죠.

샤넬도 VIP 관리라면 뒤지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사업 확장에 적극적입니다. 단적으로 에르메스의 기업 본사(Corporate Headquarter)는 프랑스 파리에 있지만 샤넬 기업 본사는 영국 런던에, 회장 사무실은 뉴욕에 있습니다. 세계 패션과 금융의 주요 중심지들에 거점을 둔 겁니다. 샤넬은 에르메스에 비해 ‘경영 실적’을 중요시하고 이에 대한 목표도 높습니다.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사진 신세계

서울 서초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사진 신세계

이와 관련해 매장을 낼 때도 샤넬은 유행에 앞서가는 젊은 부유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을 놓치지 않습니다. 반면 에르메스는 유행보다는 ‘원래 부자’들이 사는 거주지를 선호합니다.
한국의 경우 샤넬 매출 1위 매장은 고속버스터미널과 연결된 강남의 핵심 거점인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매장입니다. 반면 에르메스는 백화점 매장이 아닌 강남 도산공원 옆에 세워진 ‘메종 에르메스(플래그십 스토어)’가 매출 1위입니다. 백화점 중에선 강남 압구정의 갤러리아백화점 매장의 매출이 제일 높습니다.

에르메스 사장 회의엔 에르메스가 없다?

두 브랜드는 모두 가족경영 체제입니다. 에르메스는 창업자의 6대손인 악셀 뒤마가, 샤넬은 코코 샤넬의 동업자였던 피에르 워데머의 3대손인 알랭 워데머가 경영을 맡고 있습니다. 최고경영자(CEO)가 얼굴을 드러내고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 것도 비슷합니다.

한옥 전통구조인 'ㅁ'자형 구조로 설계된 서울 신사동의 에르메스 대표매장 '메종 에르메스'. 사진 에르메스

한옥 전통구조인 'ㅁ'자형 구조로 설계된 서울 신사동의 에르메스 대표매장 '메종 에르메스'. 사진 에르메스

하지만 기업 문화는 미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장비를 만들던 기술자의 후예답게 비교적 소박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전 세계 에르메스 사장들이 모여 회의를 해도 에르메스 제품을 지닌 사람이 없다고 하죠. 과거 오너 일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수행원 없이 전통시장 나들이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반면 샤넬은 과거 상류층 인사들과의 밀접한 관계, 코코 샤넬이 정치·경제·문화계 고위 인사들과 맺었던 각별한 인연 등의 영향으로 내부적으로도 귀족적인 문화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 세계 샤넬 8%, 한국인이 샀다 

지난해 코로나19 감염증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에르메스와 샤넬도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두 브랜드 모두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그러니까 중국과 한국 시장에서 매출이 급증하며 손실을 만회했습니다.
에르메스의 경우 지난해 글로벌 전체 매출 약 8조7000억원 중 한국에서 4191억원을, 샤넬은 글로벌 전체 매출 약 11조5000억원 가운데 한국에서 9296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샤넬이 주요 인기 상품의 가격을 올리기 직전인 지난 6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샤넬이 주요 인기 상품의 가격을 올리기 직전인 지난 6월 29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샤넬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단순화하면 전 세계 에르메스 제품의 4.8%, 샤넬은 무려 8%를 한국 소비자가 구매한 셈입니다. 참고로 매출액 자체만 보면 에르메스는 여전히 일본이 한국보다 약 3배 정도 많지만, 샤넬은 한국 매출이 일본 매출을 크게 앞섭니다.

어느새 명품 시장의 주요 고객이 된 한국. 비슷하지만 다른 양대 명품 브랜드가 앞으로 한국 시장에서 매장 수와 제품군 확대, 온라인 판매 등에서 어떤 전략을 가져갈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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