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도 삼성도 뛰어들었다, 그들이 '박스'에 진심인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05:00

“처음엔 자르는데 고생했는데 하다 보니 ‘인간문화재’가 됐다. 좋은 취지의 행사와 즐거운 공작 시간이었다.”(이주연씨)

“박스로 만든 (반려견) 계단인데 크고 튼튼하고 환경도 보호할 수 있으니 너무 좋다. 또 만들고 싶다.”(차송연씨)

버려지는 TV 박스가 나만의 ‘펫하우스’로   

삼성전자가 6~7월 진행한 ‘에코 챌린지’에 응모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후기다. 에코챌린지는 수거된 제품 박스를 펫(반려동물)하우스나 신발장 같은 소형 가구로 만들어 SNS에 공유하면 경품을 주는 이벤트다. 참가자는 박스에 있는 QR코드를 통해 원하는 도안을 고르고, 박스에 표시된 모눈종이 형태의 점을 활용해 가구를 만들면 된다. 여기에 자신만의 디자인을 더해 사진ㆍ스티커 등으로 꾸미면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소품이 완성된다.

명품ㆍ가전 등 트렌드에 민감한 기업들이 앞다퉈 제품 포장 박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제품을 만나는 첫인상인 박스에서부터 ‘친환경’을 앞세워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이 패키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업사이클링(새활용)ㆍ리사이클링(재활용)하는 과정에서 ‘버즈 마케팅’ 효과가 일어난다”며 “이를 통해 회사는 친환경 선도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버즈 마케팅이란 소비자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스스로 입소문을 내게 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인 루이비통의 친환경 스니커즈 '찰리' 하이탑 모델. 제품의 90%를 재활용ㆍ친환경 재료로 만들었고, 패키지(포장 박스) 역시 친환경 소재로 새롭게 제작했다.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인 루이비통의 친환경 스니커즈 '찰리' 하이탑 모델. 제품의 90%를 재활용ㆍ친환경 재료로 만들었고, 패키지(포장 박스) 역시 친환경 소재로 새롭게 제작했다.

첨단ㆍ프리미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전 업계에서도 ‘친환경 패키지’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월 TV 사업 비전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디자인 특화 TV(라이프스타일 TV)에만 적용하던 ‘에코 패키지’를 전 제품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2021년형 TVㆍ모니터ㆍ오디오ㆍ청소기ㆍ공기청정기 패키지에 점 패턴과 QR코드를 넣은 포장재를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박스 한 개에 개의 소품만 제작해 업사이클링해도 연간 약 1만t의 온실가스를 절감할 수 있다.

한종희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은 “기업의 친환경 활동은 소비자들에게 제품 그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자 놀잇감으로 변신한 LG 냉장고 박스

LG전자는 올해부터 대형 가전 제품을 배달한 뒤 수거한 종이 박스를 서울대공원에 기부한다. 포장 박스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에 사용된다. [사진 LG전자]

LG전자는 올해부터 대형 가전 제품을 배달한 뒤 수거한 종이 박스를 서울대공원에 기부한다. 포장 박스는 '동물행동풍부화 프로그램'에 사용된다. [사진 LG전자]

LG전자는 올해부터 서울대공원에 세탁기·냉장고·에어컨 등 대형 가전을 포장하는 데 사용한 종이 박스를 매년 400개씩 기부할 방침이다. 동물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사자·호랑이·곰·침팬지 등의 놀이 도구로 재활용된다.

LG전자는 기존 직사각형 박스였던 프리미엄 사운드 바 제품의 포장 박스도 기역(ㄱ) 모양으로 변경했다. 포장재 사용은 줄이고 운송 효율은 높이자는 취지다. 내부 포장재 역시 폐지와 골판지를 재활용해 만든 펄프 몰드로 바꿨다. LG전자 측은 “향후 시스템 에어컨 실외기 전 제품으로 포장재 재사용을 확대 적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니 역시 지난 6월 말 프리미엄 무선 이어폰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친환경 패키지를 선보였다. 소니는 라벨을 제외한 포장재의 99%를 자체 개발한 ‘오리지널 블렌드 재료’로 만들었다. 소니는 대나무ㆍ사탕수수ㆍ재활용 종이를 섞어 재활용이 가능하면서도 견고한 포장재를 자체 개발했다. 이 회사는 기존에도 이어폰 제품의 외부 포장재의 플라스틱 성분을 종이로 대체해왔다.

소니 관계자는 “이를 통해 약 96%에 달하던 플라스틱 사용량을 5% 미만으로 줄였다”며 “앞으로도 새롭게 출시되는 제품 포장에 친환경 재료의 도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6월 말 출시된 ‘소니 무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WF-1000XM4’ 제품은 소니가 자체 개발한 친환경 원료로 만든 패키지를 사용했다. [사진 소니]

6월 말 출시된 ‘소니 무선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WF-1000XM4’ 제품은 소니가 자체 개발한 친환경 원료로 만든 패키지를 사용했다. [사진 소니]

루이비통·구찌, 상자·쇼핑백 친환경 소재로 

명품 업계도 ‘친환경 패키지’ 도입에 적극적이다. 루이비통은 올 하반기 친환경 운동화인 ‘찰리’를 출시한다. 이 제품은 제품의 90%를 재활용ㆍ친환경 소재로 제작했을 뿐 아니라 제품을 감싸는 종이와 상자도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다.

제품 포장은 국제산림관리협회(FSC)의 인증을 받은 브랜드 섬유인 ‘텐셀’의 종이가 사용된다. 또 제품 상자에는 100% 재활용 판지가 적용되고 잉크 역시 식물성 재료가 사용된다.

앞서 루이비통은 모든 쇼핑백과 포장 용품에 FSC가 인증한 섬유를 적용하고 있다. 가방이나 신발을 포장하는 더스트백(천주머니)도 면화 산업 비영리단체인 ‘더 나은 면화 계획(BCI)’에서 인증받은 면 100%로 제작된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2030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률 0%를 달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11월부터 쇼핑백과 박스 등의 포장재에 친환경 소재를 적용하고 있다. [사진 구찌]

명품 브랜드 구찌는 지난해 11월부터 쇼핑백과 박스 등의 포장재에 친환경 소재를 적용하고 있다. [사진 구찌]

구찌는 지난해 11월부터 제품 패키지에 새로운 포장재를 적용하고 있다. 쇼핑백과 박스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관리되는 숲에서 생산된 종이로만 제작된다. 쇼핑백과 박스는 그린 색상을 적용해 잉크 사용량을 줄였고, 코팅 처리를 하지 않아 100% 재활용할 수 있다. 손잡이 역시 100% 폴리에스터 재질로 만들었고 본드 사용을 피하기 위해 매듭 묶음으로 마무리했다. 더스트백(재생 면)과 수트 커버(재생 폴리에스터)도 재생 소재를 사용했다.

이은희 교수는 “소비자는 명품이나 프리미엄 가전을 구입해서 얻는 일차적인 과시 효과뿐 아니라 포장재를 재사용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개념 소비’ ‘가치 소비’를 했다는 이차적인 만족감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소비층인 MZ(80년대~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젊은 층)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의도도 깔려 있다.

이 교수는 “MZ 세대는 제품보다는 제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중시하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정체성)가 표현되길 원한다”며 “기업 입장에선 ‘친환경’을 통해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기업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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