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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좀 벌었겠다" 고약한 풍문까지 돈다, 2030 사랑한 이 길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05:00

업데이트 2021.08.02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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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레저팀장의 픽 - 제주올레 올가이드

제주올레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두루두루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나아간다.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은 코로나 시대, 제주올레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일 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주올레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두루두루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나아간다. 세상이 잠시 멈춘 것 같은 코로나 시대, 제주올레가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일 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코로나 사태 이후 제주올레가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2020년 완주자가 2019년보다 71%나 증가했다지요. 6월에는 제주올레 완주자가 1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놀랍습니다. 제주올레는 425㎞나 되는 장거리 트레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두 26개 코스가 있지요. 거의 한 달을 날마다, 그것도 온종일 걸어야 완주자 타이틀을 딸 수 있습니다.

제주올레가 다시 인기를 끌자 온갖 소문이 횡행합니다. 개중에 제주올레가 돈 좀 벌었겠다는 소문이 제일 고약하네요. 올레길 걸어보신 분들께 묻습니다. 올레길에 입장료 받는 데가 있던가요? 올레꾼이 아무리 많아져도 제주올레는 돈을 벌지 못합니다. 바로 그래서 올레길은 더욱 소중합니다. 제주올레를 둘러싼 숱한 풍문을 바로잡고자 [뉴스원샷]에서 제주올레에 관한 모든 것을 문답으로 정리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 왜 제주올레가 인기일까요?  

제주올레는 425㎞ 전 코스 완주자에 인증서를 준다. 최근에는 100㎞ 완주자에게도 100㎞ 완주증을 준다. 제주올레를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사진 제주올레

제주올레는 425㎞ 전 코스 완주자에 인증서를 준다. 최근에는 100㎞ 완주자에게도 100㎞ 완주증을 준다. 제주올레를 즐기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사진 제주올레

제주올레의 때아닌 인기 비결은 의외로 ‘코로나 때문에’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이 막힌 데다 코로나 때문에 자연 친화적인 여행에 관심이 커지면서 가슴에 묻고 살았던 올레길을 기어이 작정한 것이지요. 혼자서, 많으면 서너 명이 걷다 보면 자연스레 거리두기도 이뤄집니다. 올봄 제주올레 10코스를 같이 걸을 때 서명숙(64) 제주올레 이사장이 자랑하더군요. 최근 올레길에서 2030세대들을 만났는데 “코로나 때문에 우울했는데 코로나 덕분에 올레길을 알게 됐다”며 인사를 해왔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2030세대가 제주올레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통계도 있지요. 2020년 올레길 완주자(2778명)가 2019년 완주자(1624명)보다 71%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2030세대 완주자는 두 배 넘게 늘었습니다. 2019년 268명이었던 2030세대 완주자가 2020년에는 539명이나 됐습니다. 관광산업 차원에서 보면 젊은 층의 해외여행 시장을 제주올레가 수용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젊은 층이 길에서 위안을 넘어 성취감까지 얻었다는 데 저는 더 큰 의미를 둡니다.

제주올레는 누가 만들었나요?

제주올레 코스 지도. 제주도 본섬에 21개 정규 코스와 2개 부속 코스(7-1코스, 14-1코스)가 있고, 제주도 부속 섬(우도, 가파도, 추자도)에 부속 코스 3개가 있다. 그래픽 제주올레

제주올레 코스 지도. 제주도 본섬에 21개 정규 코스와 2개 부속 코스(7-1코스, 14-1코스)가 있고, 제주도 부속 섬(우도, 가파도, 추자도)에 부속 코스 3개가 있다. 그래픽 제주올레

제주올레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트레일입니다. 서명숙 이사장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와서 고향 제주도에 만들었지요. 2007년 9월 첫 코스를 개장했고, 2012년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해안 둘레길을 완성했습니다.

물론 서 이사장 혼자 이 긴 길을 만든 건 아닙니다. 현재 제주올레 사무국에는 약 20명이 근무 중입니다. 올레길을 조성하고 보수·관리하는 탐사팀도 있습니다. 초반에는 서명숙 이사장의 두 동생이 탐사대장을 차례로 맡았었습니다. 초대 탐사대장이 서 이사장의 두 살 터울 동생 고(故) 서동철 대장이고, 2대 탐사대장이 막내 서동성(60) 대장입니다. 서울에서 언론인으로 살다 30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간 서 이사장이었습니다. 처음엔 제주 토박이 동생들의 도움이 절실했겠지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두 살 터울 동생 고 서동철 제주올레 초대 탐사대장. 9년 전 스위스 체르마트에 제주올레 우정의 길을 냈을 때 오누이가 사이좋게 웃는 모습을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두 살 터울 동생 고 서동철 제주올레 초대 탐사대장. 9년 전 스위스 체르마트에 제주올레 우정의 길을 냈을 때 오누이가 사이좋게 웃는 모습을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지난해 초 지병으로 돌아간 고 서동철 대장은 서귀포시에 기반을 둔 조폭이었습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깁니다. 서명숙 이사장도 2008년 펴낸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에서 ‘동생은 제주도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조폭이었다’며 서 대장과의 일화 몇 토막을 공개했었지요. 아무튼 트레일에 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 서귀포 ‘명숙상회’의 삼 남매는 제주도 해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올레길을 개척했습니다. 탐사팀은 3대 송수호 대장을 거쳐 현재는 임연택, 고혁준 두 전문위원이 맡고 있습니다.

직원이 20명이면 많은 건가요? 적은 건가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손민호 기자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손민호 기자

턱없이 적은 겁니다. 길은 내는 것보다 관리하고 운영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정부 예산으로 조성한 수많은 트레일이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지요. 길만 내고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아서입니다. 중앙 정부는 자치단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치단체는 나 몰라라 하는 중앙 정부 탓만 하지요. 제주올레는 다릅니다. 걸어보셨으면 아실 겁니다. 올레길에 얼마나 많은 정성이 배었는지.

제주올레는 마을 사업도 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축제를 비롯한 이벤트도 수시로 있지요. 사무국 상근자 20명으론 어림도 없습니다. 대신 제주올레에는 자원봉사자가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전 걷기 축제 때는 매일 자원봉사자 200∼300명이 현장에 나왔었지요. 제주올레는 현재 활동 중인 자원봉사자가 1000명 정도라고 말합니다. 격주 토요일마다 ‘클린 올레’도 진행합니다. 쓰레기 주우며 올레길을 걷는 행사입니다. 주말이면 전국의 올레꾼이 쓰레기 줍겠다고 제주도로 내려갑니다. 클린 올레의 전통은 10년이 넘었습니다. 요즘 유행이라는 플로깅(Plogging)의 원조도 제주올레입니다.

제주올레는 살림을 어떻게 꾸리나요?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계단 복도.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는 수많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지을 수 있었다. 후원자 명단이 벽에 새겨져 있다. 손민호 기자

제주올레 여행자센터 계단 복도. 제주올레 여행자센터는 수많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지을 수 있었다. 후원자 명단이 벽에 새겨져 있다. 손민호 기자

올레꾼이 올레길을 걷는다고 돈을 내지 않지요. 올레길이 지나가는 마을이나 가게가 제주올레와 수입을 나누지도 않습니다. 앞서 적었듯이 제주올레는 사단법인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제주올레 수입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수익사업, 정부 위탁사업 그리고 후원금. 수익사업은 제주올레가 만든 손수건·엽서 같은 기념품과 게스트하우스 ‘올레스테이’ 등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말합니다. 정부 위탁사업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올레길 관련 대행 업무를 이릅니다. 말 그대로 대행 업무여서 운영비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 후원금입니다. 현재 정기후원자는 1750명으로, 월 2만원씩 내는 개인 후원자가 제일 많습니다. 제주올레 전체 수입의 35∼40%를 차지합니다. 제주올레는 후원금이 전체 수입의 50%는 넘어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완주자는 크게 늘었지만, 후원자는 그리 늘지 않았다고 하네요. 정기후원자가 되면 혜택이 쏠쏠합니다. 스카프, 배지, 달력도 주고요, 제주올레에서 진행하는 유료 프로그램도 할인해줍니다.

올레길을 사랑하는 유명 인사가 많지요?

제주올레 걷기 축제 때 모습. 1코스 말미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손민호 기자

제주올레 걷기 축제 때 모습. 1코스 말미오름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손민호 기자

네, 정말 많습니다. 수많은 저명인사가 제주올레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제주올레가 공개해도 된다고 밝힌 몇 명만 추려 보겠습니다.

우선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낙선한 뒤 부부가 제주도로 내려와 10코스와 10-1코스(가파도 올레)를 걸었지요. 올레길에서 큰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삼성그룹 홍라희 여사가 올레길을 걷기 시작한 건 10년이 넘습니다. 최근 한 언론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지요.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올레 초창기에 걸었습니다. 제주올레 사무국이 서귀포 ‘소라의 성’에 있을 때 1층을 디지털 전시관처럼 꾸민 적이 있습니다. 그 디지털 기기들이 구본무 회장의 선물이었다고 합니다. 박용만 전 상공회의소 회장도 제주올레를 아끼는 기업인으로 유명합니다.

손석희 JTBC 사장은 아예 제주올레 이사입니다. 제주올레 이사회 원년 멤버입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014년 도지사 선거에서 당선되자 제주올레가 만든 ‘간세인형’을 목에 두르고 방송 카메라 앞에 섰었지요. 김훈 작가와 가수 양희은씨는 서 이사장과 개인적인 인연이 깊습니다. 서 이사장의 언론사 선배인 김훈 작가는 혼자 제주도로 내려와 조용히 걷고 올라가곤 했다지요. 언젠가 현장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암행 올레’가 들통났지요. 배우 문소리씨는 서 이사장의 사연을 소재로 영화를 구상 중이고요, 박찬일 셰프는 제주올레의 청년 셰프 육성 프로그램을 서귀포 제주올레 여행자센터에서 진행했었습니다.

2018년 규슈올레 개막 행사에 참석했던 배우 류승룡씨. 유명 배우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으로 일정 내내 올레꾼과 어울렸다. 손민호 기자

2018년 규슈올레 개막 행사에 참석했던 배우 류승룡씨. 유명 배우답지 않은 소탈한 모습으로 일정 내내 올레꾼과 어울렸다. 손민호 기자

최근에 가장 활동이 두드러진 유명인은 ‘천만 배우’ 류승룡씨입니다. 우연히 올레길을 걸었다가 올레 매니어가 됐지요. 제주올레 걷기 축제는 여러 번 참석했었고, 서울에서 열렸던 후원행사에도 나와 노래를 불렀지요. 제주올레가 일본에 조성한 규슈올레도 여러 번 걸었습니다. 올레꾼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이 발가벗고 온천에 들어가기도 했었지요. 올레길을 걷다 혹시 낯익은 사람이 있다 싶으면, 인사를 나눠 보세요. 김훈 작가일 수 있고, 문소리 배우이거나 류승룡 배우일 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의 허다한 축제가 취소됐을 때, 제주올레는 축제를 감행했습니다. 대신 방식을 바꿨습니다. 수천 명이 동시에 걷던 축제를, 일고여덟 명이 매일 한 코스씩 21일간 걷는 축제로 바꿨습니다. 사나흘 걸리던 축제가 예닐곱 배 길어졌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제주올레는 이 모든 수고를 감내했습니다. 올레길마저 닫히면 갈 데가 없다는 걸 알아서였습니다.

‘제주올레는 자동차에 앗긴 사람의 속도를 돌려주었다.’ 제주올레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2009년 봄 제가 쓴 문장입니다. 코로나 시대, 제주올레는 다시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완주도 좋지만, 잠깐 짬을 내 걸어도 좋습니다. 여러 번 걸으면 더 좋습니다. 요즘엔 올레 코스를 거꾸로 걷는 ‘역올레’가 인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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