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초봉 최고 4500만원...초호황 반도체, 구인난 겪는 까닭

중앙일보

입력 2021.08.01 04:00

업데이트 2021.08.01 22:55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 공고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한 취업준비생이 채용 공고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중앙포토]

대졸 초봉이 최고 4500만원인데, “사람 구하기가 가장 힘들다”며 구인난을 호소하는 회사들이 있다. 그것도 수퍼사이클(초호황)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반도체 협력업체 얘기다. 청년 실업률 10%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아이러니 현상이다.

[뉴스원샷] 이상재 산업2팀장의 픽
키워드: 반도체 협력업체 구인난

고임금에다 근무조건도 개선됐지만
현장에선 “직원 구하기 힘들다” 호소
입사해도 1년 내 퇴사율 50% 수준

경기도에 본사가 있는 A업체는 지난달에만 채용 공고를 세 차례 냈다. 설비서비스 엔지니어를 선발하기 위해서다. 주로 반도체 공장에 상근하면서 장비의 상태를 점검하고, 예방 정비를 맡는 인력이다. 이 회사는 온라인 공고와 함께 전국의 주요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에 수백 장의 채용 공고문을 발송했다. 하지만 정작 지원서를 낸 사람은 100명 미만이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이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취업하면 초봉 3200만원을 받는다. 주말 근무나 야근 등에 따른 특근수당, 성과급은 별도다. 삼성전자 사업장에 배치받으면 ‘안전 인센티브’로 연 500만원가량을 받을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공제금을 적립하는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하면 2년간 900만원(자부담 300만원 별도)을 추가로 받는다.

반도체 협력업체 ‘취업난 중 인력난’

익명을 원한 A업체 관계자는 “그러면 초봉이 대략 4500만원인 셈”이라며 “그래도 신입사원 뽑기가 어렵고, 이들을 오래 붙잡아두는 건 더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4년이 안 된다.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는 중견기업인 B업체도 인력난을 호소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신입사원을 상시 채용 중”이라며 “근무여건도 예전보다 상당히 좋아졌지만 회사가 바라는 자격을 갖춘 인재 구하기는 여전히 큰 숙제”라고 말했다.

이런 인력난은 왜 생기는 것일까. 일단 반도체 업계의 인력 수요가 늘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설·연구개발 투자가 급물살을 타면서 자연스럽게 채용 인원도 증가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시설 투자액은 총 38조5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조6000억원 늘었다.

한 달에 세 번 ‘신입 채용’ 공고 내기도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삼성과 하이닉스는 2~3년 전보다 투자 규모가 두 배로 늘었다”며 “두 회사와 거래하는 장비·부품 업체에도 당연히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될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 한 가지는 비수도권에 있는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도 갈수록 심해진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협력업체는 대부분 경기도 화성과 평택, 안성 등에 위치한 산업단지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있다.

반도체 설비업체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취업준비생 박모(25)씨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최고의 가치는 돈이 아니다”며 “회사가 인지도도 있어야 하지만, 지방에서 기숙사 생활하는 걸 불편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의 전하는 말이다.

삼성전자 평택2라인. 축구장 16개 크기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으로, 업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반도체 업계의 채용이 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평택2라인. 축구장 16개 크기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으로, 업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반도체 업계의 채용이 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보호장구 차고, 우주복(방진복) 입고 일해 보니 정말 답답했다. 주말 근무나 야근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았다. 일을 하는 재미가 너무 없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입사 후 1년 이내 퇴사율이 50%는 돼 보였다. 부모님도 ‘그렇게 어려우면 그만 두라’고 하셨다.”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는 기성세대의 조언이 해답이 될 수 없다. 대학 정원을 늘리거나 입지 조건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가뜩이나 신입생 부족 사태를 겪는 지방 대학들의 거센 반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정원 확대를) 수도권에 몰아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갑을 문화 개선됐지만 서열 문화 여전”

안기현 전무는 “중장기적으론 수도권 공장 총량 규제를 풀어 반도체 업계의 입지 여건을 개선해줘야 한다. 그것도 어렵다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를 확대 적용해야 한다”며 “일단 (인력 공급에) 숨통을 틔워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특성화고부터 대학 학부·대학원 등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반도체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 보다 세밀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원한 반도체 설비 업체의 한 임원은 “반도체는 고난도의 설계나 공정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유틸리티 가동도 중요하다”며 “하지만 장비나 부품은 아무리 잘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사실 대기업이 ‘갑질’ 하는 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서열 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기술 개발도, 심리적 자부심도 함께 필요하다. 우리 같은 협력업체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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