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 여성 프레임" vs "풍자"···'여혐' 논란 부른 쥴리 벽화

중앙일보

입력 2021.07.31 11:00

업데이트 2021.08.01 15:56

“처음 그림을 봤을 때, 너무 저급하다고 생각했다. 영부인이 장래희망인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과 교제하며 꿈을 이룬다는 것이 저 벽화의 서사인데, 그 내용이 사실상 성희롱이 아니면 무엇이냐.”

30일 지워졌던 '쥴리 벽화' 문구에 한 유튜버가 다시 문구를 써 넣어 서점 직원이 락카로 지운 모습. 이해선 인턴기자

30일 지워졌던 '쥴리 벽화' 문구에 한 유튜버가 다시 문구를 써 넣어 서점 직원이 락카로 지운 모습. 이해선 인턴기자

최근 종로구 일대를 지나다 ‘줄리 벽화’를 처음 봤다는 대학원생 이모(28)씨의 말이다. 이씨는 “김건희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성적인 ‘문란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건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여성 혐오’라고 생각한다”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성의 과거에 성적 프레임을 들먹이는 것이 통하는 사회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30일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흔든 벽화에서 ‘쥴리의 꿈! 영부인의 꿈!’ ‘쥴리의 남자들’과 같은 문구는 사라지고, 웃고 있는 금발 여성만 남았다. 결국 문구는 가려졌지만, 한국 사회 내 ‘여성혐오’ 불씨를 키웠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참한 여성 프레임” vs “풍자일 뿐”

온라인으로 벽화를 접했다는 대학생 김모(23)씨는 이번 논란이 남성이 주류인 정치판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김씨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뒷이야기가 정치적 의제처럼 공개적으로 오르내릴 수 있는 건 정치판 자체가 남성이 주류인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남성이 주류인 공간에서는 여성 혐오적인 발언이 나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면서 "정치권에서 여권 증진에 힘을 쓴다고 하지만 그들의 네거티브 속엔 여성혐오가 내재화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벽화가 여성에게 ‘참한 여성 프레임’을 씌웠다는 비판도 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전형적인 참한 여성, 성녀 프레임을 강요했다고 볼 수 있다”며 “사회적으로 두드러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 이력을 판단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지속해서 문제가 됐던 이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쥴리 벽화는 개별적 사안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젠더 감수성의 부재를 보여준다”며 “흰 페인트로 덮었다고 하지만 연도별로 남성의 이름이 있고, 마지막은 윤석열 전 총장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여성이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을 노리는 전형적인 꽃뱀 프레임을 씌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벽화는 그저 ‘풍자’일 뿐이라는 의견도 많다. 이날 벽화 근처를 지나던 직장인 김모(46)씨는 “사람마다 느끼는 게 다를 것 같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심한 면도 없지 않아 있다”며 “윤석열이 쥴리가 아니라 했으니 신경 안 쓰면 되지 않으냐. 풍자는 풍자일 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도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쥴리 벽화, 여성 혐오인가’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글에는 “이게 왜 도대체 여성 혐오인지 모르겠다, 선택적 혐오를 멈춰라” “그냥 풍자면 반응을 안 하면 되지 않냐.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달라” 등 댓글이 달렸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성향 유튜버들이 친정부 지지자가 '종로를 시끄럽게 하는 극우 유튜브 OUT' 이라는 포스터를 붙이자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해선 인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성향 유튜버들이 친정부 지지자가 '종로를 시끄럽게 하는 극우 유튜브 OUT' 이라는 포스터를 붙이자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해선 인턴

여성계 “쥴리 벽화는 여성 혐오” 한목소리

여성계는 잇따라 ‘여성 혐오적 표현을 멈춰달라’고 촉구하는 상황이다. 여성가족부는 이날 오전 논평을 내고 “최근 스포츠계와 정치 영역 등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관련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성 혐오적 표현이나 인권 침해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한국여성변호사회도 “정치적 자유를 넘은 개인의 인격권에 대한 공격이자 침해”라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대상자가 여성이란 이유로 비하 받거나 조롱받는 방식으로 폄하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벽화를 바로 철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누군가 추측할 수 있는 특정인을 대상으로 모욕적인 내용을 서울 한복판 길가에 그림과 글로 전시하고 있는 건 대단히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내용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여성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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