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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예술원, 문제가 있다면 바꾸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47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예술계 원로들을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어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이참에 문제가 있다면 눈 질끈 감고 개선하면 어떨까 싶다. 대한민국예술원 말이다.

끼리끼리 회원·문학상 선정 지적 #폐지론은 성급, 실태 먼저 살피자

예술원이라는 데가 있는 줄도 모르는 현실에서 무슨 일인가 싶으실 텐데, 소설가 이기호의 단편소설 한 편에서 최근 예술원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격월간 문예지 악스트 7·8월호에 발표한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라는 제목의 소설 형식 글에서 이기호는 “급격한 시대 환경의 변화 속에서 무책임한 예술원 해체 및 회원 구성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 급증하는 추세”라고 주장하며 개혁을 촉구했다. 한 달 180만원인 예술원 회원 수당을 없애고, “아는 사람끼리 나눠 먹는다는 오해를 살 소지”가 있는 상금 1억원의 예술원상을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상으로 바꾸자고 했다.

이기호는 ‘내부에서의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문학 바깥, 청와대에 예술원 개혁과 예술원법, 관련 대통령령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냈다. 이런 이기호의 움직임에 이시영 시인, 이순원 소설가가 가세해 페이스북 등에 적극 동의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며 예술원 개혁을 한껏 공론화하는 모양새다.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이들의 예술원 개혁 요구가 궤변인 것만은 아니다. 예술원이 공적 있는 예술가를 우대하고 창작지원을 한다는 본래 목적과 동떨어져 친교 집단화됐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이기호는 쓴다. 지금처럼 기존 회원들의 동의(재적 회원 3분 2 이상 출석, 출석 회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를 받아 새 회원을 선출하는 방식에서는 누군가 반대하는 사람은 회원이 될 수 없다고. 반대로 누군가는 기존 회원들과의 친교만으로도 회원이 될 수 있다고.

예술원상을 끼리끼리 나눠 먹는다는 주장은 소명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상금 5000만원이던 시절 예술원상은 끼리끼리 나눠 먹는 정도가 아니었다. 회원들이 돌아가며 타 먹었다. 2007년 관련 규정이 바뀌어 예술원 회원은 상을 못 받게 돼 있다. 바뀐 규정에 따른 2008년 이후 수상자들은, 적어도 문학 분과에서는 원로급에 돌아갔을지언정 받을 만한 분들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문학에 정답은 있을 수 없고, 각자의 이념 지향과 취향에 따라 안목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체로 문학상 수상자가 서로 다른 안목들 간의 설득과 타협의 결과라는 점을 감안하면 끼리끼리 해 먹는다고 단정 지을 일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멀게는 분단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가파른 이 땅의 이념 대립이 1970~80년대를 거치며 문학판에 고스란히 반영됐다는 점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이른바 우리의 진보 문인과 보수 문인은 아직도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 예술원은 주로 보수 문인들로 구성돼 있다. 입회가 좌절된, 진보 진영의 굵직한 문인들 주변에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할 말은 더 있다. 이기호는 프랑스나 미국에서는 우리 예술원에 해당되는 단체의 회원들에게 정액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지만 이웃 일본의 사례는 놓쳤다. 2016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작성한 ‘대한민국예술원 발전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에 따르면 일본 예술원에서는 회원들에게 매달 300만원가량의 수당을 지급한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원에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회원 선출을 둘러싼 추문은 옮기기 민망할 정도다. 선생님들 정말 왜 그러세요, 넘어가기 어렵다. 하지만 일부의 예술원 폐지 주장은 너무 나간 것 같다. 한 문학평론가의 의견처럼 문제가 있다고 다 없앤다면 뭐가 남아나겠나. 개혁을 전제로 예술원을 뜯어보자. 지극히 어렵겠지만, 회원들이 직접 나선다면 모양새가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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